“역학으로만 보면 총선에서 야당이 유리하다.”

역리학자인 송인창 대전대 동양문화연구소 소장은 1일 “역학으로만 본다면 임진년(壬辰年)엔 정부ㆍ여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텃밭이었던 부산에서 야당이 약진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국주역학회와 학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송인창 교수는 “임진년은 하늘의 기운인 천간(天干)과 땅의 기운인 지지(地支)가 모두 물을 상징한다. 물은 흘러야만 한다. 그러나 임진년을 운세로 살펴보면 천간은 고장지(庫藏地)에 갇히는 형세다”고 말했다. 고장지란 재물을 보관하는 창고다.

주역으로 정치 운세를 볼 때 천간은 정부ㆍ여당을, 지지는 야당과 국민을 상징한다. 물이란 흘러야 제 역할을 하는 법인데 고장지에 갇힌 물은 썩기 마련이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임진년을 상징하는 용은 예측을 불허하고 변화무쌍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송 교수는 “용이 못된 이무기는 심술만 남아서 남의 일에 훼방만 놓는 심술꾸러기란 말이 있다”면서 “이무기가 생기면 올해 한 해가 편안하지 못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가 시끄럽게 된다”고 풀이했다.

임진년에서 진(辰)은 동남쪽을 뜻한다. 송 교수는 “임진년에는 동남방에서 문제가 많았다. 최근 정치권을 살펴보면 강원과 부산에서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김정길 전 의원, 문성근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로부터 임진년엔 동남쪽에서 사건이 많았다. 1952년 5월엔 공산당 포로들이 거제도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1592년 4월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이 부산을 점령했다. 몽골 침입으로 피해가 극심했던 1232년엔 대구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불에 탔다. 주역으로 정치를 풀이하면 야당이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약진할 운세라고 풀이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4ㆍ11 총선이 야당이 아닌 여당에 유리하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 중앙회장은 지난해 말 “우리나라는 축인(丑寅) 간위방(間位方)으로 목(木)을 중심으로 국운이 이어진다”면서 “임진년에는 물이 많은데 큰물은 마른 갑목(甲木)이 흡수하지만 을목(乙木)은 물에 잠겨 있어 흡수하지 못한다”고 풀이했다.

지간 순서상 갑목이 첫째고, 을목은 두 번째다. 정치권에 맞춰 해석하자면 갑목은 정부ㆍ여당인 한나라당을, 을목은 야당을 상징한다. 각종 악재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렸지만 백 회장은 “국운상 갑목이 길하다”고 말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유리할 것 같지만 한나라당이 더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송 교수와 백 회장이 주역으로 풀이한 총선 예측은 반대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송 교수는 “주역에 나온 점괘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에 따라 주역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송대 정이천은 주역을 의리학적으로 해석했고, 소강절은 수를 바탕으로 상수학적으로 풀이했다. 주자가 의리학과 상수학을 아우르는 해석의 정통을 제시했지만 정약용은 주자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주역 해석은 상징적이라 결과를 단정할 수 없다.

“세상을 항상 음양론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세상엔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역술로 본 운세가 좋더라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주가 좋더라도 선거에서 떨어질 수 있고, 운세가 조금 나쁘더라도 주위 사람의 운에 따라 당선될 수도 있다. 천지 만물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건 주역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다. 운세를 타고날 순 있지만 운명까지 결정되진 않는다.”

송 교수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사주를 봐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데 적중률이 높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생년월일과 생시를 통해 길흉을 점치는 사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일까?

“아니다. 분명히 사주로 타고난 운세가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하는 사람, 즉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고 싶어하는 사람, 즉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잘 맞지 않는다. 사주가 만들어지던 시절은 신분제가 엄격했던 가부장적인 농업사회다. 가족보다 개인이 중심인 현대사회에 적용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 낡은 틀만으론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을 수 없다.”

송 교수는 “정치인에겐 자신의 사주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참모의 사주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사주를 통한 운세를 능력과 도덕으로 바꿨을 때 오히려 당락을 알아맞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운세가 좋은데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과 운세가 나쁘지만 당선된 사람을 잘 살펴보면 궁합이 맞고 능력 있는 아랫사람을 거느렸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정치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역술을 통해 상담하는 건 도움이 되지만 역술로 풀이해낸 운세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4ㆍ11 총선에서 야당이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야당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 옛 선현이 그랬듯 역술을 통해 미래를 점치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송 교수는 “미래를 알려준다는 역술인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굿과 부적이 만병통치약이라면 미신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역술 시장은 호황이고 굿과 부적도 느는 게 현실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