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전시회에 출품된 박근혜-안철수를 모델로 만든 크레이 작품.
대선이야 12월에 실시되는 데다 당장 4월에 총선이 있는데 무슨 대선 레이스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총선을 바라보는 대선 유력 주자들 마음 속에는 이미 대선을 염두에 둔 치열한 경쟁의 막이 오른 상태다. 그만큼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비상하다.

먼저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까지 완주하느냐 못하느냐가 총선 결과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 지금이야 여당의 독보적인 주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총선을 책임지는 처지에서 그 결과가 나쁠 경우 당장 보수진영에서 후보교체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총선 의석 획득 수 마지노선을 120석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이하의 참패로 귀결되는 성적표가 나온다면 책임론에 따라 박 위원장에 대한 당 안팎의 공격은 커지게 된다. '박근혜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부터 스멀스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 친박진영이 이번 총선 결과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다.

당내에서 박 위원장과 각을 세우며 대항마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정몽준 전 대표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본인 선거(서울 동작을)가 우선이다. 패배하면 정 전 대표의 정치적 공간은 사라진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단 7선에 성공한 뒤 당내에서 박 위원장의 대안으로 남아 있어야 차기 꿈을 이어갈 수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경우 지난 9일 문수사랑 등 지지모임들이 모여 만든 국민통합연대가 정식 발족하면서 여권의 대선주자로서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이번 총선과는 상대적으로 연관성이 적지만 여권의 추이를 지켜보며 '장외의 고수'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어 주목된다.

安·文·孫, 총선의 함수관계

야권은 좀 더 복잡하다. 일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슬슬 시동을 걸고 있는 눈치다. 기부재단 이사장에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대행을 앉히면서 전통적인 야권 세력에 대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안 원장 자신이야 관계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그를 지지하는 팬클럽인 '나의 꿈, 철수의 꿈, 수많은 사람들의 꿈'(나철수)이 지난 9일 출범식을 갖고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 총선에서 '나철수'는 안 원장 지지를 밝히며 득표전에 나서는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범식에서 당장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만들고 안 원장을 영입해서 제3의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자"는 주장도 이어졌다.

실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경쟁에서 탈락한 주자들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서 안 원장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나철수 등 안 원장 외곽단체가 힘을 보태며 선거전을 지원할 경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 이어 제3의 정치세력으로까지 발돋움할 수 있다. 상당수가 국회 등원에 성공한다면 안 원장의 직접적인 관여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이 안 원장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설 것은 분명하다. 경쟁 주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신경을 쓰고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재단이사장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경우는 자신의 총선 결과가 당연히 대선 향배에 맞닿아 있다. 부산 사상구 출마를 선언한 이상, 고배를 마신다면 대선 꿈도 함께 날아간다. 아무리 지금 일부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을 제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해도 총선에서 패배하면 모두 물거품이 된다.

문재인
또 노무현 전 대통령 거점인 부산 경남(PK) 지역에서 본인만 당선되고 문성근 최고위원 등 다른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대거 낙선 대열에 끼일 경우도 정치적 위상은 크게 실추된다. 자신의 당선은 물론 PK 지역에서의 야당 약진이 이뤄져야 대선레이스가 더욱 탄탄해진다.

현재 민주통합당의 친노세력 내부에서는 PK지역의 절반 가량인 20석을 최대 목표치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임종석 사무총장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10여석을 얻으면 대성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이유에서 경쟁주자들은 민주통합당의 PK지역 총선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아직 총선 출마에 대한 명확한 뜻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직전 출마지인 경기 성남시 분당을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원래 새누리당 텃밭지역인 이곳에 또다시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대선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또 이곳에서 다시 당선된다 해도 정치적 위상이 급부상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이득이 크지 않는 도박을 벌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불출마를 선언한 뒤 전국 순회를 하면서 직계 의원들을 포함한 민주통합당 출마 후보를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안 원장과 문 고문에 비해 지지율이 뒤처져 있는 손 고문 입장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안 원장과 문 고문이 상처를 입는 결과가 나와야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접할 수 있다.

여러 이유에서 자력으로 야권의 단일 후보가 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PK지역에서는 문 고문을 위시한 친노 세력의 움직임이 둔화해야 하고, 안 원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무소속으로 나서는 후보군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성적이 나오는 게 손 고문에게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된다. 같은 편이면서도 흔쾌히 지원하기 힘든 복잡한 정치 방정식이 이들 야권의 세 후보에게 적용되고 있다. 가히 야권의 대선 삼국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동영 정세균 의원도 야권의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와 있지만 단일 후보라는 열매를 따기에는 힘이 부치는 게 사실이다. 호남을 떠나 서울 강남을과 종로 출마를 각각 선언한 이들 두 의원은 자신의 선거를 이겨놓은 뒤 야권 삼국지를 바라보다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있는지 따져보는 게 현실적이다.

여기에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 등 또 다른 야권주자들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이번 총선에 임하고 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두관 경남지사 등 또다른 예비후보군도 총선 지원을 명분 삼아 민주통합당 입당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18대 대선을 8개월여 앞두고 치러지는 19대 총선이 이렇듯 여야 주자들에게는 대선의 첫 관문이 되고 있다.

野, 불뿜는 '대선 삼국지'

안 원장과 문 고문, 이들을 뒤쫓는 손 고문의 삼각구도는 총선 결과에 따라 힘의 기울기가 재조정되겠지만 대선까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안 원장의 독주 속에 문 고문과 손 고문이 한참 뒤처져 쫓는 형국이었지만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문 고문이 치고 올라오면서 일부 조사에서는 안 원장을 제치는 것은 물론, 새누리당 박 위원장과의 맞대결에서도 이기는 결과까지 나타나 문 고문 진영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6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고문은 처음으로 양자대결 시 박근혜 위원장을 0.5%포인트 차( 44.9%, 박근혜 44.4%)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자대결 시 안 원장과의 지지율 격차는 2%포인트 이내(안철수 21.2%, 19.3%)로 좁혀졌다.

두 조사결과 모두 오차범위에 속하는 근소한 격차이지만 박 위원장과의 맞대결 조사에서 이겼다는 점은 향후 안 원장의 지지층을 상당부분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 후보 중 손 고문이 아직 힘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기회는 남아 있다. 문 고문에 비해 비(非)노무현계와 수도권·호남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안 원장과 견줬을 땐 검증된 후보라는 점에서 재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야권 세 후보중 누가 나와도 여당의 박 위원장을 이길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경우 야권 지지층에서는 이들 3인방에 대한 재평가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과 장관, 도지사를 두루 지낸 손 고문이 검증된 후보라는 안정감 면에서 우위를 보일 수도 있다.

야권은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 시너지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린 바 있다. 세 사람이 '경쟁적 협력자'가 돼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론'이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 등에서 주전 선수의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입된 선수를 말한다. 세 사람이 상호 신뢰를 유지하면서 대선 레이스에 임하되, 야권의 단일 후보를 정하는 건 국민 선택에 맡기라는 얘기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안 원장은 무당파·중도층의 지지세를, 문 고문은 전통적 야권 세력에 기반하고, 그 틈새에 손 고문이 위치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들 세사람이 이번 총선에서부터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여권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문·손' 3인 경쟁체제에서 나타날 시너지 효과가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의 최대 무기가 될 것이란 얘기다.

與, 朴이 아니면 누구?

야권 삼국지를 바라보는 여당의 입장은 답답하다. 박근혜 위원장 외에 딱히 두드러지는 후보군이 없어 페이스메이커는커녕 경선을 치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에서 참패해 박 위원장이 정점에서 내려오는 상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100~120석의 의석 획득이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박 위원장을 직접적으로 끌어내릴 상황도 조성되지 않는다. 박 위원장이 대세론을 앞세워 계속 완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지도부에 속했던 한 인사는 다른 가정을 내놓는다. 그는 "지금이야 박 위원장이 대세론을 형성하면서 독주하고 있지만 총선에서 지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조성된다"며 "갑작스런 권력이동 바람이 보수진영 하층부에서부터 불기 시작해 상층부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위원장의 대안이 누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만일 총선 참패로 박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이 하락하면 보수진영의 지지층이 야권처럼 제3의 인물에게 확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박 위원장으로서는 일단 총선에서의 새누리당 선전이 급선무다. 따라서 이런 문제가 이번 공천과정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객관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현역 의원들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이뤄내면서 공천 혁명을 이루겠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현실은 거리가 있다.

대선을 바라보는 박 위원장 입장에서는 한 석이 아쉬운 상황이다. 공천 혁명을 통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지와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인사들은 "공천을 주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새누리당 출신 인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여권 지지표가 분산돼 상대적으로 야당 후보들이 유리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박 위원장이 경계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대선이 적어도 1,2년 가량 남았다면 박 위원장은 의석 수에 지금처럼 매달릴 필요가 없다. 측근을 중심으로 한 단단한 '박근혜 당'으로 만들면 그뿐이다.

하지만 총선이후 석달이 지나면 여당 대선후보 경선이 있고, 그 6개월 후는 대선이 실시되는 정치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박 위원장 입장에서는 원내의 정 전 대표, 장외의 김 지사, 보수대연합을 앞세워 호시탐탐 정치권 중앙으로의 진입을 노리는 박세일 전 의원과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여기에 아직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언제든 '깜짝 등장'을 선언할지 모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생각하면 이번 총선결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권의 대선레이스는 총선 국면에서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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