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우먼파워의 현주소"여성이 사장까지 해야한다" 이건희 회장 수차례 강조여성 공채 1기 김정미 상무 동기 중 첫 임원 발탁 등 올 여성임원 33명으로 늘어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유리천장은 경제학 용어로 여성이 성차별 때문에 고위직을 받지 못하는 현상. 삼성그룹의 2012년 신규 임원 인사를 보면 여성 아홉 명이 임원이 됐다. 삼성그룹이 여성 공채를 시작한 지 20년이 흘렀는데, 1기 가운데 임원이 된 여성도 생겼다. 포춘코리아는 최근 호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성 경영인을 중시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여성이 임원으로 끝나서는 자신의 역량을 다 펼칠 수 없다. 여성이 사장까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 임원들 얘기를 듣고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움을 유연하게 잘 이겨냈다는 것이 느껴지고, 유연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은 능력도 있고 유연하다. 경쟁에서 질 이유가 없다.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8월 서초동 사옥에 여성 임원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간담회에는 삼성그룹 최초 여성 부사장인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과 심수옥 삼성전자 부사장, 이영희 삼성전자 전무, 조은정 삼성전자 상무, 김유미 삼성SDI 전무, 윤심 삼성SDS 상무,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등이 참석했다.

여성 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삼성그룹에 여성 임원 아홉 명이 새로 생겼다. 한 명은 부사장, 나머진 상무였다. 특히 세계적인 기업 삼성전자에서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생겨 재계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인사로 삼성그룹 내 여성 임원은 총 33명으로 늘었다.

이건희 회장은 오래 전부터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삼성전자 가전제품 담당 임원과의 간담회에서 여성 간부가 없다는 사실을 질책했다. 냉장고를 살지 말지를 결정할 사람은 모두 주부인데, 관련 부서에 여성 간부가 한 명도 없이 어떻게 소비자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느냐는 의미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했던 1993년. 이 회장은 여성 경영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강조했다. "남녀 차별을 두지 않겠다. 여자에게도 남자와 똑같이 일도 주고 승진도 똑같이 시켜야 한다." 이 회장은 "선진국은 남자, 여자가 함께 뛰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면서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으로 국가적인 인적자원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삼성그룹은 여성 인력을 강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1992년에 국내 최초로 여성 대졸 공채를 시행한 삼성은 1993년부터 남녀 고용 차별을 없앴다. 이때 여성 공채 규모는 500명이었고, 전체 모집 규모에서 10%를 차지했다. 2년 뒤인 1995년부터는 채용 기준과 시기를 통합해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공채하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에는 5만 6천여 여성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전체 인력 가운데 25% 이상으로 여성 근로자 비율이 국내 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올해는 삼성이 여성 공채를 실시한 지 딱 20년이 되는 해. 여성 공채 1기로 삼성에 입사한 제일모직 김정미 상무는 동기 가운데 첫 임원이 됐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김성홍 커뮤니케이션 부장은 "이번 인사는 오래 전부터 추구해온 여성인력 차별 철폐 원칙이 꽃을 피운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 경영인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가 2010년 위민 매터(Women matter)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여성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남녀 평등, 기회의 균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배제하고 재무적 관점으로만 따져도 여성 경영의 가치는 눈에 띈다.

매킨지는 일단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6개국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 기업 279개사 경영 실적(2007~2009년)을 비교ㆍ분석했는데, 여성을 임원으로 배치한 기업은 여성 임원이 없는 기업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41%포인트나 높았다. 세전 이익 역시 여성 임원에 친화적인 기업이 56%포인트가 높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삼성그룹에 여성 부사장이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이 뉴스가 될 정도로 한국에선 여성 경영이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은 대졸 여성 고용률이 61%로 OECD 국가 평균 82%보다 낮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이 임원이 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10년 말 기준으로 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에서 여성은 임원 가운데 총 4.7%라고 밝혔다. 여성 경영을 강조하는 삼성전자조차 임원 1,760명 가운데 여성은 불과 34명(1.9%)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제비영리기구 카탈리스트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여성 임원 비율이 무려 39.5%였고, 스웨덴(27.3%)과 핀란드(24.5%)는 20% 이상, 남아프리카공화국(15.8%)과 미국(15.7%)은 10% 이상이었다. 한국의 여성 경영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턱없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종숙 연구위원은 "조직에서 성공한 여성의 롤 모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취욕도 줄고 낮은 지위에 만족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이 여성 CEO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 뒤 다른 기업에서도 여성 경영에 관심을 가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위원은 "국내 최대 그룹이기 때문에 삼성이 여성 경영에서도 다른 기업에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지난달 2일 삼성생명 서초 사옥에 '서초2 삼성 어린이집'을 열었다. 보육 교사 19명이 여직원 자녀 142명을 보살핀다. 어린이집은 삼성의 여성 경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 회장이 어린이집 증설을 직접 지시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서초동 사옥에 처음 출근했을 때, 예고 없이 '서초1 삼성어린이집'을 방문했다.

당시 어린이집 운영자가 "자녀를 맡기는 여직원의 만족도가 높지만 수용에 한계가 있어 대기순번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하자 이 회장은 어린이 집을 추가로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삼성그룹 내부에선 이 회장의 첫 행선지가 어린이집이라는 사실이 여성 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회사 사옥에 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도 한국에선 보기 드물다. 근로복지공단이 조사한 결과 2010년 어린이집 설치의무 사업장 576 곳 가운데 보육시설이 설치된 경우는 31%에 불과했다. 보육시설을 갖춘 사업장은 총 179곳. 현행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이거나 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인 직장은 의무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보육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제재가 없는 게 현실. 한 기업 관계자는 "부지 마련, 주차장 마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또 어린이 안전사고가 날 경우,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어 사실상 어린이집 설치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고 해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생명의 어린이집 운영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은 1997년 삼성 SDS에 어린이집을 연 뒤 현재까지 어린이집 20개를 운영해 어린이 2,600명을 보살피고 있다.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어린이집도 현재 2,600㎡(800평)에서 9,300㎡(2,800평)로 확충할 계획이다. 공사가 끝나면 삼성전자 어린이집은 수용인원(600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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