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시련 딛고 인간 승리
미국프로농구(NBA) 뉴욕 닉스의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24ㆍ191cm)은 지난달까지 그저그런 D리그(NBA 하부 리그)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NBA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16일 새크라맨토를 100-85로 꺾을 때까지 7연승을 이끌어내는 동안 포인트가드로서 경기당 평균 24.4득점 9.1어시스트 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황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활약에 흥분한 미국 언론은 '린은 이미 NBA에서 활약하는 가장 유명한 아시아계 선수다','샤킬 오닐이나 르브론 제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더 큰 임팩트를 줬다'며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광기를 뜻하는 단어 '인새너티(insanity)'에 린의 앞 글자 '엘(L)'을 갖다 붙인'린새너티(Linsanity)'란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기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미 프로풋볼리그(NFL) 덴버 브롱코스의 쿼터백 팀 티보(25)와 비교하기도 한다. '농구광'인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관심을 나타내며 박수를 보낼 정도다.
린의 '황색 돌풍'은 아시아인 연습생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해기에 좀체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중국의 야오밍은 228cm라는 큰 키를 바탕으로 NBA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왕즈즈(216cm), 멍크 바터얼(211cm), 이지안리안(213cm) 등도 한결같이 210cm가 넘는 '꺽다리'들이라 그나마 관심의 대상이었다.
'꿈의 무대' NBA는 대부분 '농구 엘리트 코스'를 거친 선수들의 경연장이다. 농구 명문 대학을 거쳐 드래프트를 통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데뷔한다. 연습생 출신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린은 대만계 중국인 이민 2세대다. 1970년대 중반 미국에 이민 온 부모 밑에서 태어나 '린슈하오(林書豪)'란 이름으로 성장했다. 학창 시절 동양인인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버드대 시절 어떤 관중으로부터 "달콤새콤한 돼지 자식"이라는 야유까지 들어야 했다. 황색 피부를 돼지에 비유해 인종 차별을 한 것이다. 묵묵히 참았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던 2010년에는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했다. 인생의 쓴맛을 봤다.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NBA 썸머리그에 댈러스 매버리스의 초청 선수로 참가했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마침내 NBA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다. 댈러스 매버리스는 물론 LA 레이커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등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 린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골든 스테이트를 선택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9일 골든 스테이트는 린을 방출했다. 웨이버로 공시되자 3일만에 휴스턴 로케츠가 손길을 내밀었다. 이도 잠시. 프리시즌 2게임에 나가 약 7분을 뛴 것이 전부였는데 12월27일 또 한번 웨이버로 이적 시장에 내놓았다. 이번엔 뉴욕 닉스가 달려 들었다. 주전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주저앉아 부랴부랴 백업 멤버로 뉴욕의 유니폼을 입혔다.
린은 지난 5일 뉴저지 네츠전에 처음 출전해 팀의 2연패를 끊더니 시나브로 7연승을 이끌었다.
린은 시련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참고 또 참고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었다.
이재상기자 alexei@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