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기자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 '박근혜당' 변신… 야 '노무현계가 장악'
보수 vs 진보… 영남 vs 호남 넘어… 새로운 전선 등장
여당의 고민은 친이계 반발 무마
야당의 고민은 옛 민주당세력 처리
중진 경합지구도 골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신청이 마무리됨에 따라 4ㆍ11 총선의 여야 후보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전체 245개 지역구에서 새누리당은 15일 마감 결과 974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3.98대 1을 기록했다. 4년 전 18대 총선 당시 1,171명이 신청한 것에 비하면 적잖이 낮아진 수치다. 새누리당의 인기 하락과 맞물려 있다.

새누리당보다 먼저 공천 신청을 마감한 민주통합당에는 713명이 찾아와 2.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486명이었던 4년 전에 비하면 46.7%나 늘어났다. 단순히 공천 신청 수치만 비교해 보더라도 여당은 하향세, 야당은 상승세라는 분위기가 읽혀진다.

이들 총선 공천 신청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양당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예전처럼 한나라당 대 민주당, 보수 대 진보, 동쪽(영남권) 중심 대 서쪽(호남권) 중심 등 전통적인 여야의 승부처를 뛰어넘는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박근혜 대 노무현'의 대결 양상이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에 의해 친박계가 대거 공천에서 배제된 만큼, 이번 공천 과정에서는 친박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지역구에 뛰어들었다. 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직간접적으로 연이 있는 정치 신인들이 대거 공천 신청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가히 '박근혜 당'으로서의 면모 일신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7일 국회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실로 찾아온 한명숙 민주통합당 신임 대표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4·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개방형 국민경선 제도(정당의 총선 후보를 일반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뽑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대표와 문성근 최고위원이 지도부를 틀어쥔 상태에서 노무현재단이사장인 문재인 상임고문이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상승세를 보이자 친노무현계의 기세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를 두고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과 천막당사로 이전해 박근혜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른 한나라당의 싸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술 더 떠 호사가들은 "살아있는 박근혜와 돌아간 노무현의 재대결"이라고 살을 붙인다.

새누리당은 "여자와 1대1로 싸워서 이기는 남자를 봤느냐"고 농담 섞인 전망을 내놓는 반면, 민주통합당은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 삼국지도 모르냐"고 맞받아 친다.

비유야 어떻든 간에 박 위원장을 위시한 친박 세력과 노 전 대통령의 가치 승계를 강조하는 친노 세력의 한판 승부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여성 당수들의 격돌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16일 공천 신청을 마감한 뒤 "새 세상을 만들 사람을 제대로 공천한다면 국민 선택을 받을 것"이라며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낼 것인가 사람을 통해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번 총선은 과거냐 미래냐를 선택하는 선거로 생각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갖고 싸울 사람이냐, 새 세상을 만들 사람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분히 노 전 대통령의 가치 계승을 앞세우는 민주통합당 친노 세력을 겨냥한 언급이다. 물론 여권 내부적으로는 친이세력에 대한 단절 의미도 내포돼 있다는 말이 있지만, 방점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재협상 무산을 전제로 폐기 주장을 펴고 있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등 야권 세력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명숙 대표도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실패에 대한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난폭 음주운전으로 인명사고가 났다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침묵으로 도운 만큼 모르는 척, 아닌 척 숨지 말라"고 박 위원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사상 유례 없는 여성 당수들간의 총선 맞대결이란 점도 관전자들에게는 흥미 있는 또 다른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부산ㆍ경남(PK)지역이 최대 격전지가 될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의 텃밭인 PK지역은 노 전 대통령의 향수가 가장 진하게 배어있는 곳이란 점에서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친박 VS 친노 격전지 승부

공천 신청은 마감됐지만 양당 모두 아직 공천 확정자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라 본선 대진표를 언급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야 모두 유력 후보들이 두드러진 곳들이 적지 않아 여야의 관심 지역에 대한 얼개가 얼추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그 많은 공천신청자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된 경력을 기재한 후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대선후보 경선 캠프 경력을 포함해 박 위원장과의 인연을 강조한 후보는 70여명에 달했다. 더구나 전체 245개 지역구 중 '나홀로 공천'을 신청한 곳이 15군데에 이르는데, 이중 9명이 대표적 친박 인사들이다.

이들 친박계가 모두 공천을 받는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의 후보가 본선에 나설 것이란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도 한때 '폐족'(廢族ㆍ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는 자손)이란 자조적 말까지 들었던 친노계가 참여정부와의 연관성을 앞세워 공천 신청 대열에 나섰다. 713명의 후보가 적어낸 대표 경력 중 '노무현'이나 '참여정부'라는 말을 언급한 사례가 131개로 가장 많았다. '김대중'은 29개 '박원순'은 26개였다.

참여정부 장관급 출신으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외에 이상수 장하진 이치범 김영진 장병완 조영택 이용섭 전 장관(급) 등이 나섰고, 청와대 참모 출신으로는 윤승용 유인태 이해성 박남춘 전해철 전 수석비서관과 양정철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김인회 김경수 전 비서관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참여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으로 무소속으로 남아있던 김두관 경남지사가 16일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이들의 선거 지원을 약속했다. 친노의 전진 배치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서대문갑은 친박 이성헌 의원과 486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출신 우상호 전 의원이 네 번째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또 새누리당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권영진 의원은 열린우리당 출신 우원식 전 의원과 서울 노원을에서 세 번째 격돌을, 새누리당 대변인 황영철 의원은 강원 홍천ㆍ횡성에서 열린우리당 출신 조일현 전 의원과 네 번째 대결을 펼칠 공산이 크다.

광주 서을에서는 박 위원장의 입 역할을 했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김영진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대구 수성갑에서는 열린우리당 출신 김부겸 민주통합당 의원이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

또 서울 도봉갑에서는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인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씨가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해 새누리당 신지호 의원과 일합을 겨룰 가능성이 크고, 서울 성동갑에서는 새누리당 진수희 의원에 맞서 열린우리당 출신 최재천 전 의원이 재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공천 경쟁도 본선 버금

외양상으로는 친박 대 친노의 대결 구도이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양상으로 가는데 걸림돌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 위원장이나 한 대표가 공천자 확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란 점은 짐작할 수 있지만 공천 탈락 예상자들의 집단 반발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적당히 달래거나 걸러서 공천을 정해야 하는 복잡한 정치적 함수가 얽혀 있다.

크게 보면 새누리당은 친박에 맞선 친이계의 마지막 항거다. 벌써부터 공천 탈락은 정치 보복이라고 외치고 있다. 실제 이들 중 일부는 "공천을 안 줄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면서 "보수 표가 분산되면 야당 후보가 될 텐데 그래도 탈락시킬 것이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통합당도 친노계와 시민사회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것을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구 민주당 세력들이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박지원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이들이 세 규합에 나서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새누리당에서 서울 양천갑은 친이계인 김해진 박선규 두 전직 차관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 외에도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포함돼 있어 실제 공천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 서울 중구도 나경원 전 의원의 아성인 듯 보이지만 신은경 전 KBS 앵커가 뛰어들면서 결과 예측이 어렵고, 종로도 조윤선 의원에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경쟁을 벌인다. 또 경기 파주에서는 친박 황진하 의원 대 친이 류화선 전 시장이 재격돌했다.

텃밭인 영남권은 친이계와 친박계의 다툼이 더 심하다. 부산 수영에서는 친박 유재중 의원과 친이계인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부산 진을은 친박 이종혁 의원과 이성권 전 청와대 비서관 및 이수원 전 총리실 비서관, 대구 중남은 친박 배영식 의원과 친이계 박영준 전 차관이 맞붙어 있다.

민주통합당도 비슷한 상황이다. 친노 세력에 맞서 구 민주당 후보들이 중심이 돼 "최소한 적절한 비율의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어려울 때 당을 지킨 게 누구냐"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 외에 새누리당의 이색 경력자로 분류되는 1984년 LA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하형주 동아대 교수와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 MVP 출신인 김유동 전 OB베어스 선수, 정미홍 전 KBS 앵커와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 문대성 IOC 선수위원,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이 예선을 통과해 본선까지 이를지 여부도 관심사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변호를 맡는 황희석 변호사와 여균동 영화감독의 생존이 궁금하고, 김상현 정대철 이용희 전 현직 의원들의 아들도 모두 아버지의 옛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해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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