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지난 20일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시작으로 4·11 총선 공천 신청자들에 대한 면접심사에 착수했다. 새누리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가 공천 면접을 하고 있다. 추천위원회 는 이날 부산·울산·경남 공천신청자 210명 중 현역의원을 제외한 179명을 대상으로 8시간 동안 면접을 한다.
● 새누리당, 탈락자 무소속 출마땐 표 분산 야당만 유리
일부 친이계들 박세일당 갈 가능성

● 민주통합당, 구 민주당 세력 친노 득세에 불안감
낙천시 집단행동 가능성… 진보표 분산 우려

여야 공천 탈락자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신청자들에 대한 면접이 계속되고 있는 과정에서 이들의 집단 이탈 조짐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단수 후보 신청 지역이 많거나 이번 선거에서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ㆍ경남(PK)지역에서부터 공천자를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먼저 공천 작업에 들어간 민주통합당은 22일 부산 사상구에 문재인 상임고문, 부산 북구ㆍ강서구을에 문성근 최고위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을 부산 진을에 각각 공천을 확정하면서 이른바 '문ㆍ성ㆍ길'트리오를 앞세워 동진(東進)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히고 있다. 또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구을)과 김영춘(부산 진갑) 전 의원에 이어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구갑)을 일찌감치 공천 확정자로 선포하면서 적진의 표밭을 누비게 할 태세다.

민주통합당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 등 공심위원들이 지난 20일 영등포당사에서 서울 지역 공천 신청자들에 대해 심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통합당은 이날 영남지역 1차 공천자 40명을 확정, 발표한 데 이어 김해을 등 10곳에서는 국민경선을 거쳐 후보를 확정키로 하는 등 발 빠르게 총선전에 임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20일 부산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의 공천 심사 작업에 착수했다. 이달 말이면 1차 공천자가 확정 발표된다.

여야 모두 PK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245개 지역구의 공천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지만 예년과는 다른 문제가 있어 생각보다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있다. 바로 낙천자 처리 문제다. 낙천자들의 정면 대응 움직임은 매번 총선 공천 때마다 있어왔지만 이번은 좀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유독 격전지가 많은 데다 특히 PK지역의 경우 새누리당의 텃밭 지역에 민주통합당이 강력한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아무리 영남 텃밭이라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안심할 수 없는 곳들이 적지 않다. 우위가 뒤바뀐 곳도 있고, 우세한 곳이라도 접전 끝에 신승(辛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곳들이 많다. 따라서 불과 몇십, 몇백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집토끼' 단속 급선무

이런 형국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집토끼' 단속이다. 새누리당은 보수 표를 더욱 견고히 단속하는 게 급선무이고, 민주통합당은 진보 표가 달아나지 않도록 대문을 단단히 잠그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희망연대 비례대표 의원 출신 새누리당 송영선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4·11 총선 공천에서 대구ㆍ경북(TK) 전 체 지역을 비례대표 의원들의 공천 배제에 대해 반발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여야의 낙천 예상자들이 볼멘 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여야 지도부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부분 개혁 대상에 포함돼 낙천이 우려되는 여야 공천 신청자들의 목소리는 한가지다. "나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나가겠다. 그럼 당의 지지 표가 분산돼 박빙의 승부에서 상대 당이 무조건 이기게 될 것"이란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여야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공천을 안 주자니 협박성 발언이 현실화해 상대 당이 유리해질 것이 우려되고, 그렇다고 공천 개혁 대상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에게 총선 출마권을 주자니 전체 공천 개혁이란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마땅한 해법이 있을 수 없는 난제에 대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득세를 하다 보니 친이계가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공천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지도부나 공천위를 향해 계속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사인을 보내고 있다. 당 지도부가 공천 탈락 시 해당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받았지만 법적 효력은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들먹이며 협박

영남권 한 전직 의원 A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해당 지역에서 의원을 지낸 데다 오랜 표밭 갈이로 지역에서의 인지도는 단연 높다. 하지만 친박계가 아닌 데다 상대적 고령이란 점에서 공천위 측이 선뜻 높은 점수를 줄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최근 당사를 찾았다. "현지 여론조사 결과에서 높은 지지율이 나오고 있는 나를 낙천시키면 무소속으로 나갈 것"이란 엄포도 함께 내놓았다.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가 김진표 원내대표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한명숙 지도부에 '김진표 불출마'를 공식요청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이날 공심위는 김진표 원내대표의 불출마를 지도부에 요 청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그가 무소속으로 나오면 새누리당 후보와 유력 야당 주자가 삼파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보수 표가 갈린다고 보면 야당 주자가 유리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A씨는 "어차피 지역에서는 내가 무소속으로 나가 당선돼도 새누리당에 재입당할 것으로 알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내가 혹시 무소속으로 나오더라도 나를 찍거나 새누리당 후보를 찍거나 매일반이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현 의원 B씨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낙천이 되면 박세일 전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또 다른 중도보수 신당인 '국민생각'에 합류할 생각이다. 국민생각이 아직은 신생 정당이라 파괴력이 크지 않지만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낙천자 이삭줍기'에 성공한다면 총선 구도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더구나 수도권은 민주통합당에게 전반적으로 뒤지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간의 표라도 이탈한다면 보수진영은 필패다. B씨는 이런 이유에서 일단 국민생각으로의 이탈을 무기로 윗선에 공천을 달라고 이야기를 넣고 있다.

영남 텃밭의 무소속 표 분산 우려에 이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보수 신당의 비대화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새누리당 공천위의 걱정이다.

큰 틀에서 보면 친박계 득세에 푸대접을 받을 것이 우려되는 친이계 공천 신청자들이 대부분 A,B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가슴 한 구석엔 '정말 내치면 부활의 작당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걱정도 비슷하다. 집안 분위기가 좋으니까 오히려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이런 문제가 더 복잡하다. 벌써부터 내부 세력간 충돌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도부, 온건파 견제

친노ㆍ시민사회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구 민주당 계열이 움츠려 들고 있다. 특히 진보 색채를 강하게 띠려 하는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고유의 정체성과 조금 거리가 있는 관료 출신 등 온건파들이 탐탁지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재협상 무산을 전제로 폐기 주장을 하고 있는 강경파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당 공천심사위는 일각에서 제기된 김진표 원내대표 등 특정 인사 배제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강경파들이 친노세력 등과 손잡고 온건파나 구 민주당 세력을 밀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

온건파 수도권 인사들은 마땅한 탈출구가 없다. 무소속으로 나오면서 개혁ㆍ진보진영의 표를 달라고 하기에도 적당치 않고, 그렇다고 민주통합당보다 더 이념적으로 왼쪽에 위치한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에 몸을 기탁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박세일 전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생각'에 힘을 합할 수도 있지만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별반 손해가 아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구 민주당 세력 중 동교동계에서부터 이어져 온 정통 진보ㆍ개혁 진영 인사들이다. 이들이 낙천 시에는 집단 행동에 들어갈 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계세력을 자처하면서 친노에 밀린 정통 친 DJ계임을 앞세워 호남 지지층의 표심을 파고 들면 나름대로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친노냐 친DJ냐'로 전선을 만들고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친노 위주의 지도부 구성에 불만이 적지 않은 이들이다. 이런 상황을 호남 출신 유권자들도 모르지 않는다. 감성적 접근이 의외로 파괴력을 나타낼 수 있다.

진보표 분산땐 여만 유리

또 이들 중 일부는 통합진보당 쪽에 합세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진보성향 지지층과 젊은 표심이 일정 부분 통합진보당에 힘을 보탤 게 분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지명도가 있는 구 민주당 인사가 진보계열 정당 후보로 나설 경우 여야의 박빙 승부가 펼쳐지는 곳이라면 진보 표 분산으로 인해 무게추가 새누리당으로 기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같은 메시지가 계속 상층부로 전달되고 있다. 민주당 친노계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대목이다.

여야 지도부의 방법은 하나다. 잠재적 적군에 대한 선별 공천으로 세 약화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전 의원 등의 공천을 배제했다. 이들은 장외의 이수성 전 총리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등과 손잡고 민국당을 창당해 한나라당에 맞섰다. 결과는 참패였다.

지금 새누리당이 바라는 시나리오도 이것이다. 친이계 중에서도 최대한 선별해 공천을 주면서 잠재적 적군이 조직화하지 못하도록 내부 분열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가령 이재오 의원이나 홍준표 전 대표 등 낙천 시 큰 일을 도모할지 모를 까다로운 인사들은 공천을 주되, 이른바 '중간 보스'급 이하들을 쳐 내는 방법이다.

민주통합당도 17대 열린우리당 시절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일부가 이탈하더라도 당시 원내 교섭단체 의석(20석)도 획득하지 못하고 '호남의 자민련화' 했던 한화갑 대표의 옛 민주당처럼, 내부의 잠재적 적군을 무력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즉 호남의 상징적 인물은 공천을 주되, 나머지는 내치고 수도권에서도 갈 곳 없는 온건파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방법을 구상할 수 있다.

또 낙천자들의 마지막 도피처도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세력을 자처하면서 나서는 방법이다. 지금도 일부 무소속 후보는 아예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 사람'이란 슬로건을 앞세워 표밭을 누비고 있다. 이들의 파괴력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다만 한 표라도 여당 보다는 야당 측 손실이 더 크다.

이탈을 무기로 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상당수 공천 신청자의 전략이 성공할지, '자해공갈' 수준에 머물지는 장담키 어렵다. 여야 지도부는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달래기도, 때로는 힘으로 압박하기도 하면서 마지막 수판알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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