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정치권 '복지 공약' 공방기획재정부"정치권 공약 이행하는데 해마다 43조~67조원… 국가 부도 위기 빠진다"정치권·시민단체·학계"정부의 공약별 비용 산출… 근거 밝히지 않고 왜곡… 법인세 인하로 세수 부족"

지난 21일 오전 국회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실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정책쇄신분과회의에서 이양희 비대위원이 정치권의 복지공약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에만 340조원을 쏟아 부으면 재앙이다." "복지 예산보다 세수 감소가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정부가 정치권 복지공약을 비판하자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는 4ㆍ11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복지 공약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이구동성으로 정부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발끈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은 헷갈린다. 여당이 앞장서 복지 정책을 약속하는데 정부가 제동을 거는 이유는 뭘까? 돌아선 민심을 돌리기 위한 복지 정책을 위해 5년 동안 무려 340조원이 필요하다는데 사실일까?

340조원 vs 계산 착오

기획재정부는 20일 열린 복지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정치권 복지 공약을 이행하는데 해마다 43~67조원이 더 든다고 밝혔다. 재정부 추산대로라면 차기 정부는 5년 동안 복지예산에 최대 340조원을 사용해야 한다. 올해 국가 예산 325조 4,000억원을 넘어선 금액. 기획재정부 김동연 제2차관은 "복지 공약이 다 받아들여지면 디재스터(재앙)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보수 세력은 정부 편을 들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처럼 대중 인기에 영합한 복지 정책에 국가 살림이 거덜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세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면 국내총생산(GDP)의 33% 수준인 국가 채무가 2050년에는 137%로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현재 445조원대인 국가 채무가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800조원대로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보수 세력은 국가 채무가 GDP 대비 120~160%인 이탈리아와 그리스처럼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계는 정부 발표에 반발했다. 민주통합당 복지특위는 무상 급식ㆍ보육ㆍ의료, 반값 등록금 등 3+3 공약을 실행하려면 해마다 10조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었다. 정부가 추산한 연 43~67조원과는 4~6배 이상 차이가 있다. 기획재정부는 민주통합당 무상의료 공약에 8조원, 새누리당 반값 등록금 공약에 2조원, 사병 월급 인상 공약에 1조 6,000억원이 든다고 밝혔지만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계산과 달랐다.

진보 세력은 정부가 공약별 비용 산출 근거를 밝히지도 않은 채 복지는 퍼주기란 왜곡된 인식을 심었다고 비난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 확대라는 현실 때문에 복지 공약을 만드는데, 정부가 복지공약은 재앙이란 식으로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야당은 재정건전성 문제는 복지 정책 때문이 아니라 부자 감세 등으로 세수가 줄어든 탓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법인세율을 내렸다. OECD 회원국 법인세율 평균 인하율은 0.3%포인트인데, 한국은 무려 3.2%포인트나 내렸다. 선진국은 법인세 인하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가 미약하다고 판단해 재정 지출을 늘렸지만 한국은 법인세를 대폭 인하한 탓에 세수 부족에 시달렸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살펴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감세로 줄어든 세수는 약 66조원 이상이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감세가 없었다면 3+3 공약을 실천할 예산이 확보된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는 앞으로 여야 복지 공약에 대해 구체적인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사안별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복지 공약에 실제로 340조원이 필요한지 단정할 수 없지만 정부와 정치권 가운데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하거나 계산을 잘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여야 反MB만이 살길

기획재정부가 작심하고 20일 복지공약을 비판하자 김황식 총리까지 국무회의에서 걱정스러운 상황이라며 거들었다. 이튿날 새누리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은 '정신 나간'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발끈했다. 김 위원은 "그렇게 정력을 낭비할 시간이 있으면 경제에나 신경을 쓰라"면서 "정당 역사상 총선을 앞두고 시비를 거는 건 처음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날인 22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선거를 앞두고 재정 뒷받침이 없는 선심성 공약에 걱정이 많다.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 젊은 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기획재정부 발표에 눈총을 보냈지만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권 복지 공약에 선심성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 성향인 국민은 헷갈린다. 정부와 여당이 정반대 입장에서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개편된 새누리당은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심이 대통령과 정부로부터 이탈하자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정부와 차별화만이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살 길이라고 판단한 듯 보인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커졌다는 이유로 야당 못지않게 복지 공약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여당을 등지면서까지 복지 공약에 제동을 거는 이유는 뭘까?

정부가 국가 재정 건전성을 정책 1순위로 삼고 있어 복지 지출 확대를 억제해야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2008년 이후 국가 부채는 130조원 이상 늘었다. 국민 사이에선 정부가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다 결국 국가 빚만 늘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여당 공약을 비판해서라도 균형재정만큼은 지키겠다는 자세다.

정치권 공약은 예나 지금이나 선거를 앞두고 마구 쏟아졌다가 입법 과정에서 걸러지거나 폐기되곤 했다.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복지공약으로 국민 기대 수준을 높여선 곤란하다.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지만 정치권도 선심성 복지공약을 자제해야 한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