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북한접촉설' 등등…북한과의 대화 '적극 구애' 임기말 성공적 마무리 포석남북 신뢰 결여·입장차 커 실질적인 효과는 '의문'

이명박 대통령과 임태희(오른쪽) 전 대통령실장.
집요하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은 한결같이 싸늘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에 벌어지고 있는 신경전과 힘겨루기의 모양새다. 이명박(MB)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접근이 구애에 가까울 만큼 조바심을 내는 반면, 북한은 냉담하다 못해 화풀이까지 하는 모습이다.

얼마전 불거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북한 비밀접촉설'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비밀접촉설'은 임 전 실장이 2월 2~4일 베이징을 방문해 주중 북한 대사관 고위급 인사와 접촉했다는 내용이다. 임 전 실장이 북한문제 전문가 겸 사업가인 유모씨와 동행, 북한 측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문제에 유연한 입장을 보여주면 서로 운신의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요지의 얘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 전 실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대한배구협회장인 임 전 실장이 웨이지중 신임 세계배구협회 총재를 베이징에서 만난 게 와전된 것"이라며 "완전한 해프닝"이라고 부인했다. 박 대변인은 "두 사람이 만난 곳이 베이징 외교1블록이고 근처에 북한대사관이 있는데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게 오해를 샀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임 전 실장의 북한 접촉설을 둘러싼 의문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임 전 실장이 노동부 장관 시절이던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비밀회동해 정상회담 추진 문제를 논의한 전력도 의혹을 키웠다.

무엇보다 북한의 갑작스런 대남 공세가 의문을 부추겼다. 북한의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지난 2일 느닷없이 6ㆍ15선언을 이행할 것 등을 요구하는 9개 항의 대남 '공개질문장'을 발표했다. 묘하게도 발표 시점이 임 전 실장이 베이징에서 북한측과 접촉했다는 소문과 일치하는 때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정통한 북한 소식통은 임 전 실장의 '북한 접촉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전해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임 전 실장이 직접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측근들을 만나거나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과 접촉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임 전 실장과 동행한 인사가 주중 북한 대사관 참사관에게 MB정부의 대북 제안을 전했고, 이것이 평양에 보고된 후 '거부' 입장이 임 전 실장에게 전달되면서 별반 소득없이 귀국했다는 것이다. MB정부에서 금강산관광이든, 개성공단 문제든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기대하는 수준에 못 미치고, 일부 사안은 실현 가능성이 적어 거절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북한의 대남 '공개질문장' 발표는 당시 남한 정부에 대한 북한의 '뿔난'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임태희 미스터리'가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일행이 1월 초 방중 과정에서 북한 측과 접촉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재발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9일,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와의 만찬을 이유로 하루 더 체류했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당시 이 대통령이 하루를 더 묵은 것은 동행한 인사와 북측 관계자와의 접촉 때문이라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남북 관계자들은 6ㆍ15 남북공동선언(2000년)과 10ㆍ4 남북공동선언(2007년)에서 합의한 대북지원 이행에 대해 논의를 하였으나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서로 앙금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고 한다.

북한은 이 대통령이 귀국한 다음날인 12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남북관계가 더는 수습할 수 없는 완전파국이 됐다"며 현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후 남북관계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임태희 전 실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북한과 접촉을 시도한 데는 적잖은 의문이 따른다. 한미 외교가에서는 지난 10일쯤 방한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국장의 행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즉 CIA 국장이 방한하기 전 남북관계에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남북한ㆍ미 3국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임 전 실장이 급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공동 프로젝트'와 관련해 청와대와 외교가에서는 일반적인 대북지원을 넘어 통 큰 '한국판 마샬플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MB정부 입장에선 '남북경협'을 기본 축으로 북한이 강조하는 6ㆍ15 남북공동선언과 10ㆍ4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에 상당히 부합하고, 미국은 북핵을 제어하는 조건(반대급부)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활용할 수 있다는 배경에서다.

하지만 '임태희 카드'는 남북 간에 기본적인 신뢰가 결여된 데다 경협, 또는 대북지원에 시각 차가 크고, 북미 간에는 북핵에 대한 입장 차가 워낙 커 제대로 활용도 못한 채 폐기됐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이에 앞서 MB정부는 러시아를 통해 대북 관계개선을 모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중앙아시아 3국 순방을 하던 중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마침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과 접촉했다. 이후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프로젝트가 부각되면서 남북 간에 해빙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후속조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발레리 수히닌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가 "북한의 새 지도부는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사업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며 3국의 가스관 프로젝트에 다시 불을 지폈는데 활성화될 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MB정부가 '북한'에 전력하는 데는 국정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국면전환을 꾀하려는 측면이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여러 국정 프로젝트가 시비거리에 오르고 공약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데다 각종 친인척 비리로 레임덕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대북관계 변화를 통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을 누그러뜨리고 추락한 지지율을 끌어올려 1년 남은 임기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과연 MB정부가 북한을 지렛대 삼아 국면전환에 성공할 지, 또한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