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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태극기(3월 6일) '청 속국 거부' 저항정신 고스란히 담겨

"청과 친하고, 일본과 결합하고, 미국과 연합하라." 일본 주재 청 참사관 황준헌은 조선이 러시아를 막으려면 친중국(親中國)ㆍ결일본(結日本)ㆍ연미국(聯美國)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을 때 황준헌은 조선에 청 국기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청 관리 마건충은 청 국기를 본받아 조선 국기를 만들라고 강요했다. 마건충은 임오군란 때 대원군을 연행했던 인물. 그는 조선 국기도 파란색 바탕 삼각형에 용을 그린 청 국기처럼 만들라고 지시했다. 청 국기에 새겨진 용은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 하지만 조선 국기에는 발톱이 하나 적은 사조룡(四爪龍)을 그리라고 주문했다.

마건충의 강요에 발끈한 고종은 청 국기와 전혀 다른 태극기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옥색 바탕 사각형에 태극원을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그리고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를 태극기에 배치했다. 외세 간섭에 시달렸던 구한말 태극기에는 청의 속국임을 거부하는 저항 정신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종은 1883년 3월 6일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고 공포했다.

태극기는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 박영효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사용됐다. 혹자는 박영효가 메이지마루(明治丸)호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혹자는 마건충이 태극원과 팔괘를 도안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종이 태극기 모양과 색깔까지 지정했다는 사실이 일본 신문 시사신보 1882년 10월 2일자를 통해 알려졌다.

음양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ㆍ발전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미국인의 눈길을 끌었다. 북태평양 철도회사 수석엔지니어 에드윈 해리슨 맥헨리는 태극기를 보고 "단순하지만 효과적이고 소박하지만 매력적이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맥헨리는 태극마크를 회사 상징으로 삼았고, 태극마크를 단 열차는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했다.

태극기가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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