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부산·경남 문재인·문성근 바람막기 전략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현재의 야당이 스스로 자신을 폐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분들인데 그분들이 다시 모여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에 대 해 계속 말을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기록 딸 정연씨 美아파트 구입
새누리당, 연일 의혹 제기

민주통합당 "부관참시"라며 새누리당 반대세력 결집해
'반 이명박' 역풍 작용 가능

'친노(친노무현) 폐족(廢族)'논란이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폐족'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후손이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일족을 말한다.

참여정부 임기 마지막인 2007년 12월 정동영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참패한 직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현 충남지사)가 칼럼을 통해 "우리(친노)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등장해온 '폐족'이란 말이 총선판에 부각된 것이다.

4ㆍ11 총선을 앞둔 '폐족'논란은 역설적이게도 민주통합당에서 시작됐다. 한명숙 대표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격에 대해 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이 지난달 20일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권은 범죄비리 세력이며, 멸문지화를 열 번은 입었어야 할 '역사적 폐족'이어야 한다"고 비판을 퍼부었던 것.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진정 국민만 바라보겠다면 먼저 군사정권 시절 총으로 위협해 빼앗은 정수장학회를 국민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이같은 공세는 '집권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공세를 펼쳤다가 곧바로 후퇴하면서 '이명박 정권 심판'으로 공격포인트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곧바로 새누리당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친노세력 전체에 포문을 열었다. 박 위원장은 당시 방송기자클럽 토론회를 통해 "그 분(친노)들 스스로가 '폐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분들인데, 그 분들이 다시 모여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는 것, 이것이야 말로 심판의 대상"이라고 일갈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하고도 이제와서는 "폐기해야 한다"고 말을 바꾸고 있는 '폐족'들이 어떻게 현 정권 심판의 주체가 되겠느냐는 주장이다.

이같은 공세에는 현 민주당 지도부가 대거 요직을 담당했던 참여정부와 각을 세워나가겠다는 전략이 담긴 듯하다. 친노세력이 주축이 된 현재의 야당은 참여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입장이다.

다분히 친노세력들이 대거 출동, 격전지로 부각된 부산 총선판을 의식한 전략적 측면이 강한 공세다. 친노세력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세는 결국은 문재인 이사장과 문성근 최고위원이 일으키고 있는 바람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에 맞서는 카드로 참여정부를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친노 폐족'용어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에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발끈'하고 나섰다. 문 이사장은 박 비대위원장의 '아킬레스 건'과 같은 '정수장학회'문제를 들고 나왔다. 문 이사장의 공격 포인트는 '정수장학회 장물론'.

그는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와 관계가 없다고 밝힌데 대해 트위터에 "장물을 남에게 맡겨놓으면 착한 물건으로 바뀌나. 머리만 감추고 '나 없다'하는 모양을 보는 듯 하다"고 꼬집었는가 하면, 박 위원장이 정수재단이사장으로 10년간 2억5천만원 가량의 연봉을 받았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장물에서 얻은 과실은 어떻게 하나"라는 글을 올렸다.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은 정수장학회 사건을 "조폭이 다이아반지를 강탈하고 대를 이은 지 50년이 지났다고 해서 '법대로 처리하자'고 말할 수 있나"면서 "내 손가락에 끼고 다니다 탈이 나자 비서 손가락에 끼워주고 '나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비꼬았다.

민주당의 공세는 일면 효과를 발휘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전선은 민주당이 그려온 '이명박 = 박근혜'도식을 통한 '정권심판론'이 밀려나고 대신 '친노 폐족 vs 박근혜' 프레임으로 옮겨졌다. 민주당과 문 이사장은 새누리당의 '폐족'공세에 '정수장학회 장물론'으로 박 위원장의 도덕성을 공격했는데, 결과적으로 박 위원장을 선거의 핵심부로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이같은 프레임은 최소한 부산ㆍ경남에서는 민주당에 득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박 위원장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여권의 넘볼 수 없는 대권 후보 1순위. 특히 영남권에서는 압도적인 파워를 지니고 있다.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를 보고 새누리당에 투표해달라"는 호소가 먹히는 형국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영남권에서 어떻게든 '이명박'을 끌어들여 '실정'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박근혜'를 건드린 것이다. 박 위원장의 '친노 폐족'공세에 '정수장학회 장물'로 응수한 것이 일단 패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이 친노들이 대거 전면에 나서 민주당 부산지역 공천과 관련, 논평을 통해 "실로 폐족들의 부활"이라고 공세를 이어간 것도 이같은 계산에서이다.

새누리당은 그러면서 '친노 폐족 = 부패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최근들어 새누리당은 연일 '부패 친노세력의 정치부활 시도'를 규탄하면서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록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뉴저지 아파트 구입자금과 관련한 의혹까지 연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전략이 이번 선거의 승패가 갈린 부산ㆍ경남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반(反) 이명박 세력을 끌어들일 만한 이슈는 아니라는 점에서이다. '역풍'으로 작용할 소지도 충분하다.

당장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부관참시(剖棺斬屍)'라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총선이 임박한 지금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함께 내사종결된 정연씨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수사에 나서는 것은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면서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분히 '노무현 향수'에 기댄 반격이지만 반(反) 새누리당 세력의 결집을 기대할 만한 이슈다. "아 참,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지"라는 기억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부관참시'공세는 2009년 5월 23일 당시의 기억을 불러와 지지층에 '반 이명박'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휘발성이 큰 사안이기도 하다.

'폐족'에서 '부관참시'까지 거론되면서 불거지는 '노무현 향수'가 부산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김경국 국제신문 정치부 부장 thrkk@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