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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1호]유리천장 깨트린 여성 1호

최근 여성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기업 임원과 국가기관 고위직 진출은 물론,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검찰이나 군 등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첨단ㆍ신분야에서도 전문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등 전 분야에 걸쳐 ‘여성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자가 감히!’ 남녀 평등 시대라고? 하는 성차별은 우리 사회에 상존한다. 흔히 여성이 성차별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유리천장’이라고 부른다. 유리천장을 깨트리고 ‘여성 1호’로 기록된 각계각층 여성들은 시대의 선구자로 요즘에도 주목을 받고 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새누리당 박근혜(60)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지난달 27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지지율 32%로 1위를 차지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은 22%로 2위,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8%로 3위에 올랐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와 안철수, 박근혜와 문재인의 양자대결에선 각각 40%대 지지율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첫 여성 총리 출신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걸림돌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많아 한 대표가 이끄는 민주통합당 인기가 새누리당을 앞서기 때문이다. 사회운동가 출신인 한 대표는 2000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2001년 초대 여성부 장관이 됐다. 2003년엔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2006년엔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한국 정당 역사에서 첫 여성 당수는 박순천(1898~1983년)이었고, 여성 공직자 1호는 임영신(1899~1977년)이었다. 교사로서 3ㆍ1운동에 참가했던 박 여사는 1963년 민주당 총재가 됐고, 1965년엔 윤보선 전 대통령과 경쟁에서 이겨 단일야당인 민중당 대표를 맡았다. 1950년부터 다섯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박 여사는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 등에서 줄곧 야당지도자로 활동했다.

박 여사와는 정적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상공부 장관에 임영신을 임명했다. 여성으로 첫 장관이 된 임영신은 이듬해인 1949년 안동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제헌 국회의원이자 여성 국회의원 1호로도 기록됐다. 상공부 장관 시절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을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느냐’는 뒷말이 나오자 임 장관은 간부들을 소집해 “앉아서 오줌을 누지만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 이상으로 활동했다. 내게 결재를 받기 싫으면 사표를 내라”고 호통쳤다.

금녀의 벽을 허문 여성

삼강오륜을 강조했던 조선에서 태어난 이 땅의 여인에게 법조계는 금녀의 벽과 같았다. 법조계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여성 선구자는 이태영(1914~1998년) 여사였다. 1952년 여자로는 처음으로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이 여사는 1954년 여성 변호사 1호가 되고 나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한국 최초 여성 판사가 된 황윤석(1929~1961년) 판사는 32세의 나이로 요절해 아쉬움을 남겼다.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한 조배숙(56), 임숙경(60)은 1982년 여검사 1호로 검찰에 첫발을 내디뎠다. 여검사로 활동하던 이들은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조배숙 변호사는 민주통합당 3선 국회의원으로 4ㆍ11 총선에 전북 익산을에 출마할 계획이다. 임숙경 변호사는 2006년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일했다.

남성의 독무대였던 외무부에선 1956년 첫 여성 직업 외교관을 배출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전성국은 7년 동안 외무부에서 일하다 1962년 주일 대표부 부영사가 돼 외국에서 근무한 첫 여성 외교관으로도 기록됐다. 김경임(64) 외교안보연구원 본부대사는 1978년 외무고시에서 첫 여성 합격자가 됐고, 이인호(76) 서울대 명예교수는 1996년 첫 여성 대사가 돼 핀란드에서 일했다.

제4부로 불리는 언론계에선 장명수(70) 한국일보 전 사장이 여성 1호로 손꼽힌다. ‘장명수 칼럼’으로 유명한 장 전 사장은 이름을 내건 칼럼을 쓴 첫 여기자. 1998년 여성 최초로 중앙 일간지 주필이 되더니 이듬해인 1999년엔 여성 1호 중앙 일간지 사장이 됐다. 한국일보를 넘어 한국 언론을 대표했던 장 전 사장은 지난해 모교 이화여대로 돌아가 이화학당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전쟁을 겪었던 군에선 21세기가 돼서야 여성 장군이 나왔다. 양승숙(62) 전 국군사관학교장은 2001년 어깨에 별을 달았다. 금녀의 벽을 깨부순 양 장군은 전역 이후 가슴에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17ㆍ18대 총선에서 논산ㆍ금산ㆍ계룡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이인제 의원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인제란 벽에 막힌 첫 여성 장군은 4ㆍ11 총선에선 출마를 포기했다.

유리천장을 깬 선구자

여자가 무슨 공부야? 여자가 사업은 무슨? 이런 편견을 깨트린 여성 선구자도 많다.

김점동(1876~1910년)은 1895년 만 19세의 나이로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현 존스홉킨스대)에 최연소 입학해 의학과 천문학을 전공했다. 1900년 한국 여성 최초로 서양의학 여의사가 된 김점동은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에서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다 1910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환자를 돌보는데 헌신했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진 못했다. 김점동은 남편(박유산) 성과 세례명(에스더) 때문에 박에스더라고 불렸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김활란(1899~1970년)은 1931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첫 여성 박사가 됐고 1946년엔 이화여대 총장이 돼 첫 종합대 여성 총장이란 명예까지 얻었다. 그러나 김활란은 1937년부터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 일제를 대신해 징병ㆍ징용 동원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친일파로도 손꼽힌다.

3남 1녀의 어머니이자 사업가 아내였던 장영신(76) 애경그룹 회장은 한국 최초 재벌 총수다. 장 회장은 1970년 막내아들을 낳고 병원에 누워있다가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으며 업무를 시작했던 그는 비누를 만들던 애경유지를 종합생활용품, 석유화학제품, 유통업, 레저산업, 부동산 관련 회사를 갖춘 오늘날의 애경그룹으로 키웠다.

직장에선 임원이 되면 별을 달았다는 말을 듣는다. 재계 30대 기업과 금융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1월 123명이었던 여성 임원은 올해 148명으로 늘었다. 1호가 나오면 2호, 3호는 쏟아지기 마련.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과 심수옥 삼성전자 부사장은 총수 일가가 아닌 일반인 최초로 대기업 여성 사장 후보로 손꼽힌다.

최근엔 여성 최초를 넘어 한국 최초로 기록된 여성도 있다. 이소연(34)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은 2008년 우주선을 타고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다녀왔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이 연구원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했으나 이 연구원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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