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에서 맞는 노을은 설렘이다. 석양에 마음이 동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와 조우한다는 일종의 신호다. 노을이 내리면 수천년 흔적의 신전 사이로 나일강에 기댄 일상이 눈에 박힌다.
밤이 이슥해져 배가 룩소르에 정박하면 이방인들은 하나둘 선상에 올라 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이곳 맥주의 이름도 '룩소르'다. 룩소르의 단상은 거대한 노천 박물관 안에 모든 것들이 들어선 느낌이다. 맥주 한잔 들이키는 뱃머리 너머로 룩소르 신전이 조명을 받아 빛을 낸다. 수천 년 동안 석상으로 자리를 지켜온 람세스 2세와 함께 하는 한 잔의 술은 다가서는 취기부터가 다르다.
룩소르는 오랫동안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고 '테베'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땅이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룩소르를 '황금이 산처렴 쌓여 있고, 백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라고 칭송했다.
최고 신전의 위세를 지닌 카르나크
위세로만 따지자면 동쪽 카르나크 신전이 이집트의 신전 중 최고의 반열에 올라 있다.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된 공간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 스펙터클한 광경은 영화 속 장면들을 뛰어넘는다. 신전 안 높이 23m 기둥은 134개나 늘어서 아득한 숲속을 연상시킨다. 정교하게 솟은 오벨리스크나 양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들도 특이하다. 이곳에서 파라오들은 신들의 재가를 받는 취임식을 가졌다. 이 참배 길은 도심에 위치한 룩소르 신전까지 2km 가량 이어져 있다.
서쪽, 왕들의 계곡으로 불리는 지역은 피라미드를 닮은 바위산 계곡 아래 파라오들의 무덤이 늘어서 있다. 해가 솟기 전, 이미 커다란 열기구들이 강 서쪽 위를 독수리처럼 맴돌았다. 세인들이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많은 왕들의 무덤은 숱한 도굴에 착취당했다.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을 갖췄던 투탕카멘의 유물들은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무덤의 내부는 카이로 박물관에서 봤던 진귀한 보물 못지않게 눈을 현란하게 만든다. 벽화에 새겨진 그림이나 조각들은 섬세하고 색감이 또렷하다. 왕들의 계곡에서 연결되는 이나 멤논의 거상 역시 그 규모로 감동을 증폭시킨다.
뱃길따라 이어지는 세계유산들
세계문화유산인 아스완까지는 긴 뱃길이지만 크루즈에서의 일상이 지루하지는 않다. 뱃길 곳곳 고대 유적들은 자취를 드러냈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한다. 악어와 매의 신이 공존하는 콤옴보 신전은 뱃길 선착장 바로 옆에 위치했고, 매를 숭배하는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역시 마부들의 마차를 타면 부리나케 연결된다.
아스완의 나일강은 좀 더 다채로운 사연들을 쏟아낸다. 아스완은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나일강 살인사건'의 실제 무대다. 돛단배 펠루카가 오가는 강 위의 단상은 호사스럽고 운치 넘치지만 이곳 아스완 지역의 과거는 아프다.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거대한 인공호수 니세르호가 사막안에 등장했고 20여개의 신전과 무덤은 수몰됐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신전인 필레 신전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아스완 시내로 들어서면 역이 있고 바자르가 들어선 차분한 풍경이다. 바자르 한 가운데에서는 이집트 전통빵인 '에이쉬'를 즉석에서 구워팔고 은세공품이나 향료들을 진열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고대 왕국의 위용이나 웅장했던 유적들과는 별개로 산 자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일상이다.
<여행팁 >
기타정보=카이로에서는 메트로, 택시가 대중적이나 룩소르에서는 택시 외에도 마차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 마차를 타기 전에는 반드시 인원수, 팁을 포함해 얼마인지를 미리 흥정해야 한다. 이집트를 여행할 때는 반팔 옷과 함께 얇은 긴팔 옷을 가져가면 편리하다. 챙 넓은 모자와 얼굴을 두를 수 있는 스카프 등도 필수다. 달러를 가져가면 현지 환전소나 호텔에서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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