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학 출신 탈북자 조명철 새누리당 후보.
4ㆍ11 총선에 나서는 여야 후보자들이 모두 확정됐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물론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 국민생각과 진보신당 등 군소정당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당들이 적잖은 홍역을 치렀다.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거나 다른 당으로 이동했고, 일부는 아예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친정 정당'에 도전장을 내기도 했다.

이렇듯 공천 과정도 혼탁했지만 여야가 가장 민감하게 주시하는 선거 구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유례없는 혼란상이 연출됐다.

흔히 정권 말기의 경우 '현정부 심판론'이 최대 이슈로 제기된다. 여당은 수비형으로 일관하고 야당은 정부 실정을 꼬집으며 공세전을 펴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한나라당'을 한 세트로 묶어 집중 공격했다. 여기엔 한나라당 관계자가 연루된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사건,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문제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때맞춰 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 자파 몫을 더 확보하려는 내분 양상이 빚어지면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주장이 이어지면서 '참여정부에서 시작한 사업을 이제 와서 반대한다'는 여당 공격에 시달렸다.

이어 '해적기지'발언이 이슈화했고 나아가 이정희 공동대표의 서울 관악을 선거구의 야권 단일화 경선과정에서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 사건도 터졌다. 야권연대는 금이 갔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도덕성을 앞세우던 진보진영의 기세는 꺾였다. 더 이상 야권이 '정부 심판론'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는 서울 강남을 지역구에서 FTA문제를 놓고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와 치열한 논리 대결을 펼치게 됐다.
투표일을 보름 여 앞둔 지금 이번 선거 구도가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면서 결국은 보수와 진보의 한판 승부인 이념적 대결장으로 요약되고 있다. 정권심판론이 실종된 상태에서 총론이 보혁 대결로 굳어진 이상 각론은 정책 대결로 갈 수 밖에 없다. 현정부의 주요 정책이나 차기 정부에서 핵심적으로 진행해야 할 정책 등을 놓고 보수와 진보로 나뉜 여야가 서로 자신들의 주장과 방향이 옳은 것임을 강조하려 애쓰고 있다. 같은 정책을 놓고 좌우측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황이다.

여야는 여기서 FTA 등 상호 충돌하는 정책을 놓고 상대방 공격에 효과적인 선수들을 줄다리기 게임의 전면에 내세웠다. 상대의 아킬레스 건을 집중 공략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슈를 부각하려는 이른바 '이슈 부머'들의 전면전이다.

보수와 진보의 선명성 대결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얼마 전 까지 여야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빚었던 한미 FTA와 제주해군기지 건설, 원자력발전소 확충 문제, 청와대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와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한 BBK 문제 등으로 압축될 전망이다. 여기에 단골 메뉴인 북핵 문제와 경제 양극화 문제, 그리고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한 각종 공세 등도 불을 뿜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선대위 출정식에서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직격했다. FTA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야당을 지적한 것이다. 두 사업 모두 참여정부에서 시작됐기에 당시 총리를 지낸 한명숙 대표와 장관직에 있던 정동영 정세균 상임고문이 상황에 따라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 공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이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화영, 전혜숙 후보의 4·11 공천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 위원장을 집중 공격할 태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독재정치를 부각하면서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을 박 위원장과 연결할 생각이다.

한명숙 대표는 선대위 출정식에서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져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겨울공화국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장을 과녁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야 이슈 부머들 포진

인물 공격에는 저격수가 있듯이 정책 공격에도 상대의 실정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자신의 진영에게 유리한 문제를 이슈화하는 '이슈 부머'들이 있다. 여야 지도부는 이 같은 인물들을 골라 주요 선거구에 내세우거나 비례대표 후보에 배치했다.

먼저 새누리당은 FTA 전도사로 불리던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서울 강남을에 배치했다. 이전 정권 때와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의 대항마로 나서게 한 것으로 FTA 문제를 적극 부각하라는 박 위원장의 특명인 셈이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인 전순옥 후보는 노동 복지 분제를 이슈화하는데 큰 역할을 할것으로 보인다.
경남 진해에는 김성찬 전 해군참모총장이 공천을 받았다. 다분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됐던 '고대녀' 김지윤씨의 해적기지 발언과 관련한 파장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기지 건설 반대를 고리로 안보 문제를 이슈화하겠다는 심산이다.

부산 해운대ㆍ기장을에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가 후보자로 정해진 것도 북한 문제가 이슈화할 것에 대비한 포석이다. 더구나 탈북자들의 북송 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북한 내부의 실상을 알리면서 보수진영의 결속을 꾀하려는 판단도 들어있는 것 같다.

이밖에 문대성 IOC 선수위원이 부산 사하갑에 배치된 데에는 지난 정부에서 두 번이나 실패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번 정권에서 성사시켰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들어있다.

민주당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부산ㆍ경남지역에 대표적인 참여정부 인사를 포진시켰다.

부산의 문재인 상임고문과 문성근 최고위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이른바 '문성길 트리오'는 경남 김해갑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과 함께 PK 지역의 친노 부활이란 절대적 과제를 떠안았다. 열린우리당 출신인 김영춘(부산진갑) 장향숙(부산 금정) 전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인 최인호(부산 사하갑) 후보의 공천도 같은 맥락이다.

4.11총선 후보자 등록 신청이 시작된 22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인천시남동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남동갑, 남동을 선거구 후보자들이 후보등록을 하고 있다.
또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신경민 대변인이 서울 영등포을에 배치된 것은 현정부의 언론 정책을 집중 비판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고, 경기 의왕ㆍ과천에 송호창 변호사가 공천된 것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 박원순 시장 선거 캠프 대변인 등을 역임한 경력에 따라 시민사회세력과의 연결 고리를 두텁게 하자는 셈법이다.

비례대표 집중 배치

이 같은 이슈 부머들의 배치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 더욱 노골화했다.

새누리당은 1번에 민병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을 앉혔다. 이공계 배려에다 원전 문제를 대비한 포석이다. 4번에는 탈북자 출신 조명철 전 통일부 통일교육원장이 자리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와 함께 북한 문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쌍포'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17번에는 필리핀 귀화자인 이자스민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이 올랐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누리당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총선 이슈화를 위해 더욱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인선을 했다.

1번에는 유신정권 때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누이동생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가 배치됐다. 박근혜 위원장의 아킬레스 건인 박 전 대통령 시절의 어두운 면을 부각해보자는 심산이 들어있다.

7번에 오른 배재정 전 부산일보 기자는 아예 맞춤형 저격수다. 박근혜 위원장을 둘러싼 가장 큰 공격 포인트인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하라는 특명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상임고문의 추천으로 배 전 기자가 포함됐다고 한다.

13번에 오른 장하나 당 제주도당 대변인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목소리를 내 달라는 취지이며, 백군기 전 특전사령관을 8번에 앉힌 것도 새누리당의 안보 이슈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1992년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에 연루돼 박노해씨와 함께 검거됐던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3번 배치는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노동 분야의 이슈를 주도해달라는 뜻이 담겨 있고, 남윤인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의 9번 부여도 여성문제와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결 고리 등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21번 임수경 전 방송위 남북방송교류 추진위원과 30번 이재화 변호사의 경우는 각각 북한 문제와 이 대통령을 겨냥한 BBK 문제에 대한 이슈 부머로 분류된다.

군소정당 중에서는 통합진보당이 '가카의 빅엿'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던 서기호 판사를 14번에 배정함으로써 법조 문제를 본격 제기할 태세다.

이들 여야 각당의 이슈 부머들은 자신과 관련된 이슈를 사회적으로 적극 부각시키면서 상대당에 대한 공격과 자기 당에 대한 방어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전선(戰線)이 형성되지 않은 이번 총선의 승부는 소총수 격인 이들 이슈 부머들의 활약 여부에서 갈릴 것이란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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