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존의 의미가 이해가 간다. 영국이 만든 계획 도시인 뉴델리 이전부터 델리는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땅이다. 델리 자리에 있었던 도시만 7개인데 그중 5개가 외부민족에 의해 세워졌다. 잦은 흥망의 역사 때문에 '델리를 점령하는 자, 곧바로 델리를 잃는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뉴 델리를 건설해 델리를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영국은 겨우 16년만 이곳에서 주인행세를 했을 뿐이다.
옛 영국의 흔적은 라즈쁘라빠띠 바반으로 불리는 대통령 궁이나 국회의사당 등에서 선명하게 엿보인다. '왕의 길'로 통하는 라즈파트 일대는 영국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됐고, 가로등 위에 범선 등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나 엠베세더 관용차들이 늘어선 풍경들은 여지없이 서양의 한 곳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디아 게이트를 지나는 이 대로를 따라서 인도 공화국의 창건일 등에는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옛 풍경이 어우러진 찬드니 촉과 빠하르간지
흥미로운 것은 이 퍼레이드의 종착점이 올드 델리의 레드포트라는 점이다. 레드포트는 올드 델리가 수도였던 시절 무굴 제국의 왕궁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외곽은 붉은 벽돌로 철벽같이 둘러싸여 있다. 성의 입구이자 구권력의 상징인 라호르 게이트까지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게이트를 지난 골목은 찻타촉이라는 장신구 상가가 들어선 일상의 풍경이다.
델리의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함께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은 빠하르간지다. 뉴델리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어떻게 보면 배낭족들의 아지트와도 같다. 골목 가득 게스트 하우스와 환전소들이 몰려 있고 덩치 큰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하루 종일 서성거린다. 인도 북부나 남부로 향하는 버스들도 이곳 빠하르간지 초입에서 출발한다. 1박 2일 넘게 달릴 버스를 기다리는 청춘들은 퇴색한 복장에 얼굴만은 달뜬 표정이다. 국적도 민족도 피부색깔도 제각각인 이들은 분위기만큼은 닮아 있다.
빠하르 간지의 4층 노천 식당에서 바라 보는 풍광은 더욱 낯설다. 식당 안은 대낮인데도 히피 복장의 젊은이들이 반쯤은 벽에 몸에 기댄채 차를 홀짝 거리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아래 골목은 시장 풍경이다. 온갖 좌판대가 늘어서 있고 사이클릭샤를 타고 번잡하게 사람들이 오간다. 뉴델리 지역은 사이클릭샤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느리게 흘러가는 사이클 릭샤를 흔하게 볼수 있는 곳은 이곳 빠하르 간지 일대다. 최근 공항에서 뉴델리역까지 고속 공항철도가 개통된 것을 감안하면 이런 오래된 풍경은 희귀하면서도 반갑다. 빠르게 변화되는 문명과 옛것들이 아직까지는 이질감 없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종교를 넘어선 세계문화유산들
델리 전역에 널려 있는 세계문화유산 유적에서도 공존의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델리를 대표하는 유물은 꾸뜹 미나르다. 1193년 델리의 마지막 힌두 왕국을 무너뜨린 직후 이슬람 군주에 의해 세워진 탑은 높이가 73m에 달하고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 아프가니스탄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미나르 옆에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도 들어서 있다. 힌두교 사원을 부순 위에 이슬람 모스크가 들어선 형국인데 사원 가운데 오파츠라는 쇠기둥은 15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녹이 슬지 않은 신화적인 사연을 지니고 있다.
델리에서의 공존은 사람과 골목과 건축물들에서 끊임없이 발견된다.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이질적인 풍경에도 안정감은 느껴진다. 지난한 세월에 기반을 둔 고도는 그렇게 묵언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행정보
가는길=델리까지 아시아나 항공등 직항편이 운항중이다. 한국에서 약 8시간 소요. 인도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공항에서 뉴델리역까지는 공항열차가 다닌다. 시내에서의 이동은 여행사를 통해 승합차량을 대여해서 이동하는 게 편리하며 델리에서 일반적인 교통수단인 오토릭샤를 이용할때는 흥정을 하고 타야한다.
음식, 숙소=인도에서는 빵이 일상적이다. 서민식에 속하는 짜빠티나 고급에 속하는 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빵들은 카레와 곁들여 먹으면 맛이 좋다. 델리의 저렴한 숙소는 빠하르간지 일대에 몰려 있다. 깔끔한 숙소는 뉴델리의 코넛 플레이스 근처에 있다. 인도관광청(www.incredibleindia.co.kr)에서 현지 상세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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