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독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유진 벨(1868~1925년). 그는 성과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 자신을 배유지라고 불렀다. 배유지는 광주와 목포에 학교를 세우고 광주 최초 병원인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설립했다.

자기 업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특별귀화자 1호 인요한(53)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겸 가정의학과 교수는 배유지의 외증손자다. 인요한의 미국 이름은 존 린튼. 그의 집안은 미국식 성 린튼에서 첫 음절을 따서 인씨를 자처했다. 인요한 교수는 1993년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119 응급구조 체계의 산파 노릇을 했고, 유진벨재단 이사장인 형 스티븐(62ㆍ한국명 인세반)과 함께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전개해왔다.

인 교수의 할아버지는 선교사 윌리엄 린튼(1891~1960년)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린튼은 자신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 인돈이라고 불렀다. 인돈의 아내이자 배유지의 딸이었던 샬럿은 인사례로 불렸다. 전주 신흥고와 기전여고 교장이었던 인돈은 한남대학교 전신인 대전대학을 설립했다.

인돈 선교사의 아들 인휴(1926~1984년)는 검정고무신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미국 이름은 휴 린튼. 군산에서 태어난 인휴는 한국전쟁 당시 군인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고, 섬과 벽지를 돌아다니며 교회를 200곳 이상 개척했다. 1960년대 순천 일대에 물난리 때문에 결핵이 유행하자 인휴는 부인 로이스 린튼(한국명 인애자)와 함께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웠다. 이런 까닭에 요한과 세반 형제는 어릴 때 순천에서 살았다.

순천 촌놈과 전라도 촌놈을 자처하는 인요한 교수는 그동안 몇 차례 귀화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제지를 당했다. 한국에서 40년 이상 의료 봉사하면서 살았지만 아들이 조국인 미국 국적을 지키길 바랐다. 인 교수는 3월 21일 한국에서 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뒤 한국과 미국 국적을 동시에 갖게 됐다. 어머니의 뜻을 거르지 않으면서 한국사람이 된 셈이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된 인 교수는 “인생에서 제일 기쁜 날이다. 전라도에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성장했는데 제가 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다”면서 “저는 조상을 잘 만나서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동안 받은 감사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적 때문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는데 드디어 한국인이 돼 매우 기쁘다고 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