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엔 '익살·해학' 치중 '재미' 부여해 동적 변화줘'화투-가족' 외로움 떨치는 동질감 가져바둑, 그 자체로 미학적 우리의 인생과도 같아인사동 장은선갤러리서 4일부터 전시

“움직임으로 대중과 교감”

전시를 앞둔 지난 28일, ‘화수(畵手, 화가와 가수의 줄임말)’를 자칭하는 조영남씨 집을 찾았다. 주거 공간과 미술 작업실로 나뉜 강남의 저택에는 곧 선보일 작품들과 정리되지 않은 물감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전시를 위해 최근까지 작업을 했거나 늘 미술을 가까이하는 생활의 흔적들이다.

인상적인 것은 서재다. 그랜드 피아노가 중앙에 놓여 있는 서재에는 책들이 빼곡한데 문학서와 철학, 역사 책이 대부분이고 미술 관련 서적은 당당히 한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손길이 깃들고, 오랜 시간을 머금은 책들은 피아노와 조응하며 이 공간의 주인을 떠올리게 한다.

조영남씨는 음악(대중가요) 하는 입장에서 미술을 ‘딴짓’이라고 하지만 딴짓도 상당한 내공을 지녀 본업(음악)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딴짓은 미술뿐 아니라 문학,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재는 그의 딴짓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창이다.

서재를 가로질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거실에서 오는 4일부터 인사동 장은선갤러리에서 전시될 작품들을 만났다. ‘조영남표’를 특징하는 화투, 바둑, 태극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고유한 양식은 여전한데 ‘변화’가 눈에 띈다. ‘움직임’이다. 특히 최근작인 ‘가족여행’ 연작에서 두드러진다. 말과 소, 자동차, 사슴 등이 화투를 수레에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작품들.

‘언덕 위의 달’
“그동안 내 그림은 정적이면서 익살스럽고 해학적인데 치중한 것 같아. 움직이는 느낌을 넣고 대중에게 재미도 주려고 했지.”

그는 사실과 환상을 교차시킨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한 앙리 루소(1884~1910) 작품을 패러디한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그의 ‘가족여행’ 그림은 흰 말이 자신과 이웃을 태우고 가는 루소의 ‘쥐니에 신부의 마차’ 작품을 떠올린다. 그런데 ‘가족여행’ 작품에선 가족이 화투로 환치됐다.

그는 화투가 지닌 놀이성,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 속성이 가족이 함의하는 의미들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화투는 놀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이를 하는 호모루덴스다. 한국인은 심심풀이로 화투를 하는데 심심풀이란 뭐냐. 외로움을 떨쳐내는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외롭지 않기 위해서다. 가족은 이런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개인사에 빗대 ‘가족여행’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꿈’ 을 상징하기도 한다며 작품은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너스레를 풀어놨다.

'어디로 흘러가는가'
작품 연작은 화투의 변이와 세련된 화려함을 보여준다. 그가 “일본에서 나왔지만 완전히 한국화된, 놀이문화에 동양 사상까지 담긴 독특성이 한순간에 와 닿았다”며 화투에 매료됐던 이유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바둑판, 바둑알이 팝아트적 조형미를 보여주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동양의 변주곡’, 우리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라‘ 등도 눈길을 잡아끈다.

“바둑은 그 자체가 매우 미학적이다. 몬드리안, 칸딘스키의 점, 선, 면보다 훨씬 예술적이다.”

그는 여기에 철학적 담론까지 덧붙였다. “바둑은 공자식으로 말하면 삶이 살아 볼 만한 의미가 있는 한판의 놀이이고 노자식으로 말하면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해 주는 것인데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

그밖에 서정적 추상성이 돋보이는 회화와 꼴라주 작품, 조각 등도 전시의 격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극동에서 온 꽃’
조영남씨는 예술 속 ‘재미’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과 '덧있음'을 해학적으로 풀어가는 식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전시 제목을 ‘多情多感(다정다감)’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따뜻한 정과 감동 그 이상의 표현을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했다.

조영남 작가의 예술성과 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전시는 4월 21일까지 계속된다.

02)730-3533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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