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1950~1953년)과 임진왜란(1592~1598년)은 닮은 점이 있다. 침략을 당한 조선과 남한이 육전에 약했지만 해전엔 강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명과 미국이란 외세의 힘을 빌렸다는 공통점도 있다. 내부적으로 볼 땐 해군을 통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셈이다.

임진왜란에서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한 일본은 판옥선과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 해군 때문에 승리 일보 직전에서 물러서야만 했다. 한국전쟁도 임진왜란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북한은 서울을 지나 낙동강 근처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남한은 백두산호를 앞세워 부산 앞바다에서 북한 병력 수송선을 격침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판옥선과 거북선은 널리 알려졌지만 백두산호를 아는 이는 드물다.

백두산호는 대한민국 해군이 마련한 첫 전투함. 미국이 1949년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해군 장병이 앞장서 전투함 구입 운동을 펼쳤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 초계정이었던 USS PC-823을 샀다. 왕년에 독일 잠수함을 공격했던 USS PC-823은 하와이에서 3인치 포를 장착한 뒤 태평양을 건넜다.

백두산호는 1950년 4월 10일 진해 해군기지에 입항했다. 해군 제1전대에 배치된 백두산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 오후 오륙도 인근 대한해협에서 정체불명인 선박을 발견했다. 이 배는 전투병을 부산 인근에 침투시키려던 북한 수송선. 백두산호는 26일 0시 30분 적선을 공격했다.

포탄 35발을 쏜 3인치 주포에 고장이 나자 침몰하던 적선도 반격을 시도했다. 당시 장포사였던 전병익 중사와 조타수였던 김창학 하사는 적탄에 맞았지만 적함이 침몰하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백두산호는 12월 6일 시작된 흥남 철수작전에도 참가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