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누가 하든 끝날 때만 맞추는 무대였다. 약속되는 것은 멜로디가 아니라 리듬이었다. 선율은 자기 마음대로 하다 끝을 맞추는 식이다. 그게 누구든 특정 리듬으로 연주를 시작하면 '아, 이제 끝냅시다'하는 싸인을 받은 걸로 알고 마무리 지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대화의 양식이다. 각자 자신의 얘기를 하다, 누군가가 주제어를 제시한다. 자기 얘기를 더하고 싶은 사람이 솔로로 치고 나가면 타인들이 배려해 준다. 이런 화학적 반응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므로 미리 시간을 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방식도 있었다. 모두 시계를 앞에 두고 봐가며 하다, 약속한 시점에 끝내기도 했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 방식이 더 미학적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프리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미학적 선택의 기로 같은 것이라도 있었던가? 천만에. 답은 단순 명쾌하다.

프리 재즈건, 영역을 확산한 프리뮤직이건, 프리는 '돈'이 안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단언한다. 생활이 안 되는데 계속 한다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는 최고의 행복이라고. 힘들게 살아가며 그 길을 택하는 사람에게도,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 사람에게도, 그 점은 진실일 것이라 믿는다.

나는 도저히 그럴만한 상황이 못 됐다. 돈도 안 되는데, 외국서 보름이고 한 달이고 머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재즈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로서는 가정을 지켜야 했다. 국내 활동에 충실했던 이유다. 악기를 직접 들고 다녀야 한다는 점도 현실적으로 큰 이유다. 김대환씨의 경우 큰북과 심벌 등 덩치 큰 악기들을 다 들고 다녔다.

30대 초반 이후 일본, 미국 등지의 해외 연주 기회를 중시하게 된 것은,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가장 큰 이유다. 저 같은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지켜가는 것은 박재천-미연 부부뿐이다. 공사판의 일용직 노동을 해 가면서까지 자신의 예술을 지켜가는 재천씨, 불굴의 정신이 부럽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현실적 요구를 떨쳐버리지 못한 데 대한….

이후 대여섯 번 신촌에서 사물놀이의 김덕수씨도 참여해 대여섯 번 가졌다. 선생과의 마지막 무대는 제천 - 미연 트리오와 종로의 사랑방 같은 무대에서 완전 즉흥으로 가졌던 자리다. "옛날 종로의 카페식 극장에서 하던 그 퍼포먼스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자"며 먼저 제의한 재즈 평론가 남무성의 구상이 이뤄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프리 재즈다. 물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진짜 재즈가 밀려난다는 현실은 그 다음이다. 진짜 재즈가 설 곳이 없다 보니, 훨씬 근본주의적인 프리 뮤직을 하는 사람들은 내몰리듯 지하로 은둔한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진짜 문제는 음악의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나의 선택? 프리 재를 하자는 제의만 온다면 장소와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고 OK다. 문제는 프리 뮤직에서 요구하는 철학적 구성이 최고치로 실현될 수 있게 음악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철학적이란 무슨 말이냐? 콜트레인의 속사포 같은 테크닉 (sheets of sound) 같은 것만 탐닉할 것인가? 언어를 초월한 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마이클 브레커처럼 앙상블의 조화를 구현할 것인가?

음학(音學)적인, 즉 음 자체에 대한 탐색과 접근이 궁극적 과제로 남는다. 즉 프리 뮤직도 앙상블 내에서 악기 간의 리듬의 조화처럼 전체적 아름다움의 경지를 추구할 때, 미학적 성취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나의 미학적 선택이다.

그러나 강태환씨에게는 영적 접근이 우세하다. 두서너 음을 동시에 내는 것 같은 초절 기교 자체에 그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음학적인 사람은 자신의 소리를 다 궤뚫는 것은 물론, 타인의 입장에 서서 분석한다. 대체로 동양 음악인들은 영적인 면이 강한 법이다.

지금 모든 일들을 돌이켜 보면, 강태환씨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그가 양식적 탐색의 결과로 도달한 '프리 뮤직'이란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장르다. 요즘 관점으로 보자면 굉장히 무모한 동시에 굉장한 도전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덕에 음악은 정체하지 않는 것이다.

10여년전 뉴욕의 빌리지뱅가드 클럽에서 연주할 때, 프리 재즈의 거장 파라오 샌더스와 대기실에서 만난 적 있다. 얼핏 안면이 있던 내게 먼저 인사하더니 슬슬 강태환씨 이야기를 해 왔다. 외국의 프리 재즈 뮤지션들은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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