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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색출 빌미로 불법연행·고문 자행… 독재정권 파수꾼으로

역대 정권 불법사찰… 무슨 일 있었나
특무대 적발 간첩사건중 90% 조작 10% 침소봉대
박정희 정권 중앙정보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 악명
90년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 중앙정보부 창설 아홉돌 파티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역대부장들. 왼쪽부터 김계원, 김형욱, 김종필, 김용순, 김재춘.
4ㆍ11 총선을 목전에 앞두고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이 승패에 영향을 미칠 커다란 변수로 떠올랐다.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사찰 정국을 활용해 총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하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도 사찰 피해자라며 MB 정부와 선긋기로 방어막을 폈다. 민간인 사찰하면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을 떠올렸던 국민은 불법 사찰의 주체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란 사실에 의아해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주목하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벌어진 정치 사찰에 대해 되짚어본다.

특고와 특무대

사찰(査察)은 정치적 감시를 뜻하는 단어. 권력 특성상 사찰은 고문과 탄압으로 이어지곤 했다. 국민을 감시하는 사찰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했다.

일제는 1911년 특별고등경찰부란 이름으로 비밀정치경찰을 양성했다. 특고와 고등경찰로 불린 특별고등경찰부는 일본인 경찰과 헌병, 그리고 조선인 밀정을 두고 항일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막았다. 특고 출신 친일파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경찰 조직을 장악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특무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무대의 모체는 육군정보국 정보처 특별조사과. 대공 업무를 맡았던 특별조사과는 1949년 방첩대로 개편됐고, 1950년 직할 특무부대(특무대)로 독립했다. 이승만 대통령 사조직처럼 움직였던 특무대는 간첩 색출을 빌미로 정치 사찰을 일삼았다. 특무대장 김창룡(1920~1956년)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만큼 위세가 당당해 제2인자로 행세했다.

  •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김창룡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곤했다. 오죽하면 '특무대가 적발한 간첩 사건 가운데 90%는 조작이고 10%는 침소봉대했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믿었던 김창룡은 권력을 남용하고 군 지휘계통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1956년 암살을 당했다. 특무대 이름은 1960년 방첩부대로 바뀌었다.

무소불위 중앙정보부

방첩부대가 도맡았던 정치 사찰은 1961년부터 중앙정보부의 몫이었다. 5ㆍ16 군사쿠데타 주역인 박정희와 김종필은 정보 장교 출신. 이들은 모든 정부수사를 총괄하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김종필이 지휘했던 중앙정보부는 5ㆍ16 이후 7개월 동안 용공분자 3,000여 명과 폭력배 4,000여 명을 체포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을 들었던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대통령에게만 고개를 숙였고, 어떤 국가 기관보다 위세가 당당했기에 '국가 위의 국가'란 평가를 들었다. 김형욱이 수장이 된 1963년부터 중앙정보부는 독재정권의 파수꾼으로서 정치 사찰과 함께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중앙정보부는 인혁당 사건(1964년), 동백림 사건(1967년) 등을 조작했고, 야당 정치인의 내연녀를 찾는 등 뒷조사에도 열을 올렸다. 70년대엔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대학생을 색출하고자 대학에 첩자를 심었다.

중앙정보부는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다. 12ㆍ12 군사쿠데타 주역인 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안기부와 함께 경찰과 보안사도 앞장서 사찰에 나섰다. 서울대를 비롯해 전국 각 대학에선 운동권 학생을 감시하는 프락치들이 활동했다. 경찰과 보안사는 각계각층 인사를 감시했었다.

보안사 민간인 사찰

50년대 악명을 떨쳤던 특무대는 1960년 이름을 방첩부대로 바꿨다. 간첩 검거에 앞장섰던 방첩부대는 육군보안사령부(1968년)와 국군보안사령부(1977년)를 거쳐 국군기무사령부(1991년)로 개칭했다.

윤석양 이병이 1990년 10월 민간인 사찰 기록을 폭로하면서 보안사가 정치인과 학계ㆍ종교계ㆍ언론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찰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상훈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조남풍 보안사령관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보안사는 1991년 이름을 기무사로 바꾸면서 정치 사찰 중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기무사는 총선에 개입한 사실이 1992년에 드러나 체면을 구겼고, 지난해엔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군사독재가 끝난 1993년부터 고문 사건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불법 도청 등은 여전하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경찰 사직동팀이 사찰의 주체였다. 사직동팀은 1999년 옷로비 사건을 은폐ㆍ축소하는 과정에서 야당 정치인 부인을 불법 사찰하고 권력 실세에게 비밀리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00년 7월엔 경찰이 운동권 출신 정계ㆍ언론계 인사 575명을 불법 사찰했다는 사실도 발각됐다.

안기부 X파일

  • 영화 ‘FBI의 대부 후버’
경찰 사직동팀과 함께 안기부 미림팀도 불법 사찰로 구설에 올랐다. 도청을 위해 생긴 미림팀은 호텔과 식당 등에서 정계ㆍ관계ㆍ재계 고위 인사 대화를 불법 감청했고,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대화를 도청했다. 삼성그룹이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검찰 고위 간부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이 2005년 7월에 밝혀졌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을 통해 불법 도청과 정경 유착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은 경악했다. 안기부 X파일을 계기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전 안기부) 불법 도청ㆍ감청 사실도 드러났고, 임동원과 신건 전 국정원은 구속된 뒤 실형 선고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국정원 직원이 대통령 후보감으로 손꼽혔던 정치인을 사찰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과 은폐 의혹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모체는 1998년 공직자 비리를 감찰할 목적으로 생긴 조사심의관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공직자 암행 감찰 기능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넘겼다. 그러나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관련 촛불 시위가 열리자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감찰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만들었다.

'암행어사'로 불렸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사실은 2010년 6월 알려졌다. KB국민은행 협력업체인 KB한마음 김종익 사장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 이른바 쥐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영장도 없이 KB한마음을 압수수색했고 김 사장에게 회사 지분을 처분하라고 협박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지시설이 쏟아졌지만 검찰 수사에선 불법 사찰만 입증됐다. 불법 사찰에 연루돼 대법원 판결을 앞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4일 민간인 불법 사철 증거 인멸 입막음용으로 상관에게서 현금 5,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이 청와대 지시로 이뤄졌는지 속단할 순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 이상돈 비상대책 위원이 5일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다면 사퇴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폭발력이 커지고 있다.

美 FBI 종신국장 후버, 대통령까지 좌지우지… 푸틴, 소련 KGB출신
■해외선 어떤일이

민간인 불법 사찰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최근까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같은 일반 행정부처 소속이 아니라 정보기관들이 그 일을 맡았다.

미국의 경우, FBI(연방수사국)은 국가 안보를 위해 국내 정보를 다양하게 수집한다. 국가안보를 위해하는 범죄단체가 아닌 순수 민간인이나 언론인,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정보수집은 일단 불법적일 가능성이 높다.

종신 FBI 종신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1895~1972년)는 정치인과 경제인, 언론인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정치 사찰을 일삼았다. 만 29세였던 1924년 FBI 국장이 돼 죽을 때까지 무려 48년 동안 FBI를 통솔했던 그는 각종 사찰 정보로 대통령마저도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후버 국장을 해임하려던 역대 대통령들도 그로부터 정적에 대한 각종 사찰 자료를 받고선 마음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매카시즘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았던 후버 국장은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간첩으로 몰고자 22년 동안 전화를 도청하고 우편물을 검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버 국장은 말년에 백악관 지시에 복종하지 않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겐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닉슨 대통령의 측근들은 후버 국장이 사망한 다음달인 1972년 6월 노련한(?) FBI를 배제한 채 야당이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다 발각됐다. 당시 대통령은 FBI로부터 수사권을 뺏어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또 다른 정보기관 CIA에 넘겼고, 닉슨 대통령은 "진상을 조사한 결과 백악관 관련자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짓말이란 증거가 나타나자 닉슨 대통령은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정치사찰도 주로 국내정보국 MI5가 맡았다고 한다. MI5 최초 여성국장이었던 스텔라 리밍턴은 2001년 회고록 '공개된 비밀'에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지시로 광산노조 지도자를 사찰했다는 사실을 폭로, 파문을 일으켰다. 대처 전총리는 재임 당시 복지혜택 축소 등을 놓고, 야당인 노동당과 각 분야 노조와 크게 대립했다. 정보국 MI5는 또 반핵 운동가, 사회 운동가 등을 미행ㆍ도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CIA에 해당하는 영국 정보기관은 MI6이다. 영화 007의 소재가 바로 MI6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프랑스도 불법 사찰 문제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국내중앙정보국(DCRI)을 창설할 때 자신도 정치 사찰의 희생자였다며 DCRI를 사찰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직 언론인이 쓴 책 '대통령의 책자'는 DCRI가 사르코지 대통령을 위해 정적을 감시하는 사유물로 전락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소련 공포정치의 산실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는 해외 정보를 취급하는 1국과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2국으로 구성됐다. KGB 2국은 민간인 사찰과 함께 고문과 탄압도 서슴지 않아 악명을 떨쳤다. 내달 취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당선자도 독일 주재 KGB 요원 출신이다. KGB는 구 소련 붕괴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해외정보국(SVR)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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