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성바실리 성당 앞에서 마스레니짜 축제가 열린다.
혁명의 역사가 숨 쉬던 도시의 밤풍경은 신비롭다. 어둠이 내린 뒤 도심을 가로지르는 모스크바 강변을 달리면 숱한 성당과 공공 건물, 스탈린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장식한다. 러시아의 상징인 모스크바는 정치 문화의 수도로 오랫동안 질곡의 세월을 지켜왔다.

여행의 첫발은 대부분 '혁명의 상징'인 에서 시작된다. 광장 입구, 원색 돔이 특이한 성 바실리 성당은 이반 대제가 감동해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짓지 못하게 건축가의 눈을 뽑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예전에는 붉은 군대의 출병식과 전승퍼레이드가 이 광장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성당 뒤편으로 레닌 묘지(맙즐레이 레니다)와 명품 백화점이 마주보고 위치한 모습은 세월의 변화상을 실감케 한다. 광장 옆 크렘린 궁에는 새해아침 사람들이 몰려와 소원을 빈다는 스파스카야 탑, 차르의 대관식이 치러지던 우스펜스키 사원 등 20여개의 종루와 사원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봄을 마중하는 '마스레니짜' 축제

매년 봄이면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는 '마스레니짜' 축제가 열린다. 태양을 의미하는 '블리느이'라는 팬케이크를 구워 먹고 짚으로 만든 인형인 '주젤로'를 태우는 전통축제다. 광장에 쏟아진 인파들은 염소뿔이 달린 모자를 쓰고 다니며 신나는 일주일을 보낸다. 마스레니짜 축제는 길일에 결혼하기 위한 젊은 남녀가 서로의 반쪽 연인을 찾아 나서는 시기다. 신혼부부들이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할 수 있고 독신남성들이 프로포즈를 감행하는 요일도 정해져 있다. 150여개의 다민족으로 구성된 러시아의 중심도시에서 펼쳐지는 전통축제는 화합과 소통의 의미가 크다.

아르바트 거리의 음악가
하지만 이런 전통의 모습은 변해가는 도시에 남겨진 추억의 단면일 뿐이다. 에서 마네지 광장,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으로 향하면 모스크바의 신세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이어진다. 짙은 화장에 피어싱을 하고 여유롭게 담배를 피는 여인들의 모습과 흔하게 마주치게 된다.

거리로 나서면 변화의 체감 진폭은 더욱 커진다. 모스크바의 낭만의 공간인 아르바트 거리는 홍대앞과 대학로를 한 묶음으로 만들어 놓은 느낌을 전해준다. 자동차 통행을 막으면서 보행자의 천국이 된 길가에는 고려인 3세로 자유를 갈망하는 록을 불렀던 빅토르 최를 기리는 벽돌집도 들어서 있다. 러시아의 유명시인 푸슈킨의 부부 동상도 이곳에 자리잡았다. 예전 모스크바에서는 발레곡, 교향곡이 주를 이뤘지만 70, 80년대를 거치면서 재즈, 록, 포크 음악이 음성적으로 생겨났다. 당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는 록 그룹이 활성화됐으며 재즈는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됐다.

옛 것과 새 것이 혼존하는 거리

트베르스카야 거리 등 도심 번화가로 접어들면 상황은 빠르게 변질된다.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의 네온사인은 라스베이거스의 한 골목을 지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스크바에만 카지노가 수십개나 되며 기차역에도 슬롯머신이 버젓이 비치돼 있다. 집회가 자주 열리던 혁명광장역 가판대에서는 플레이보이 잡지가 진열돼 있으며 일부 나이트클럽에서는 스트립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과 크렘린 궁 뒤편에 남아 있는 무명용사 묘 등 모스크바의 '잔상'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도심 한가운데에 2차 대전 당시 이름 없이 쓰러져간 군인들을 추모하는 불꽃은 타오르고 근위병들이 24시간 지키고 서 있다. 이곳은 모스크바 신혼부부들이 혼인신고를 한 뒤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붉은 광장
모스크바의 유일한 고지대인 레닌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모스크바는 잿빛이다. 잿빛 도시를 장식하는 것은 다양한 광장과 동상들이다. 혁명의 주인공들보다 도드라지게 거리에는 차이코프스키, 푸슈킨, 톨스토이 등 예술사를 뒤흔든 인물들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콤소스카야, 아스바스카야, 혁명광장 등의 지하철역 역시 작은 동상으로 채워진 역사가 이채롭다.

방사선으로 뻗어있는 도시는 메트로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밤이 이슥해 지면 사람들은 보드카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랜다. 이곳에서 40도가 넘는 보드카는 기본이며 일부 보드카는 90도를 넘기기도 한다. '러시아에서 4000km는 거리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 이하는 술도 아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념품가게에서 전통 목각인형 '마뜨로슈가'를 기웃거리다가도 달리트레야차코프 미술관에서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인 일리야 레핀의 그림을 감상할수 있는 곳이 바로 모스크바이기도 하다.

혁명, 전통, 예술이 숨쉬던 도시는 뿌연 스모그와 피어싱한 신세대들의 활보 속에 또 다른 계절을 맞고 있다. 변화의 진폭에 있어서만은 이방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한 혁명의 도시에 서면 긴장감과 당혹스러움이 묘하게 교차된다.

<여행메모 >

무명용사 묘의 근위병
가는 길=대한항공, 아에로플로트 러시아 항공이 인천 모스크바간 직항편을 운항하며 9시간30분이 소요된다. 입국시에는 비자가 필요하며 공항이 혼잡해 입국 수속을 마치는데 꽤 시간이 소요된다. 세르메체보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승용차로 40분 걸린다. 시내 주요 거리와 관광지는 메트로로 잘 연결돼 있다.

기타정보=러시아는 화폐단위로 루블을 사용하며 달러를 가져 가면 거리 곳곳의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모스크바 시내 교통체증이 서울보다 심해 시내에서 시간 약속을 했다면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것이 좋다. 거리의 표지판은 아직 영어 표기가 안 돼 있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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