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폭 계보

한국의 폭력조직은 근대화의 산물이다.

1930년대 일제의 토지 수탈로 생계를 잇기 어려운 지방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할 일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주먹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조폭들은 상인들로부터 갈취한 '보호비'가 주 수입원이었다.

50∼60년대 정치 주먹

해방 이후 1950년대는 주먹과 정치가 결탁한 시대였다. 동대문 일대를 장악한 이정재는 자유당의 2인자 이기붕과 손을 잡았고, 명동을 장악한 이화룡은 친민주당 성향을 보였다.

자유당 정권은 1958년 '충정로 도끼사건'을 빌미로 이화룡의 명동파를 와해시켰고, 5ㆍ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혁명재판을 통해 이정재를 사형에 처하는 등 조폭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5.16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주먹들은 60년대 후반 경제성장 과정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 시기 주먹계를 장악한 이는 이화룡의 행동대장이었던 신상현이다. 그는 '신상사파'를 조직해 서울의 명동과 충무로, 을지로 일대를 장악했다.

70년대 호남 주먹

1970년대에는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호남의 주먹들이 대거 상경해 무교동 일대에서 오종철과 박종석이 '범호남파'를 형성했다. 자연스럽게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신상사파와 충돌했다. 1975년 사보이호텔에서 열린 신사상파 신년회장을 오종철파 행동대장 조양은이 급습해 피로물들이면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듬해인 1976년 번개파 행동대장이었던 김태촌은 범호남파 두목 오종철을 습격해 불구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조양은과 김태촌은 앙숙이 됐고, 각각 양은이파와 서방파를 조직했다. 양은이파와 서방파는 광주에서 올라온 이동재가 결성한 OB동재파와 함께 전국 3대 조폭으로 군림해왔다. 지방 대도시에는 부산 칠성파, 대구 동성로파, 대전 옥태파 등의 조폭들이 할거했다.

이들은 대형 유흥업소의 운영권을 차지했고, 주류 도매, 건축자재 공급 등으로 부를 축적했는가 하면 채권ㆍ채무관계에 개입해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12ㆍ12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는 1980년 조양은과 김태촌 등 조직폭력배를 감옥과 삼청교육대에 집어넣었다. 1986년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조폭끼리 칼부림이 심해지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21세기 스마트 조폭

검찰과 경찰이 꾸준히 조폭 특별단속을 실시하자 조직폭력배는 칼부림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조폭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폭력을 휘두르기보다 부동산 개발 등 합법적인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조양은과 김태촌으로 대표되는 칼잡이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