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그룹 대표최근 '…의 문화보국' 출간 음식은 단순 먹거리 넘어 그 나라 문화 총체적 집약한식 고급화 해야 전파 가능 '국제 공모전' 제안 정부가 나서야 할 때

조태권 광주요 그룹 대표는 우리 민족의 문화가 녹아 있는 한식이야말로 한류의 근본이고 미래 한국의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무대에 '한류' 바람이 거세다. K-POP을 비롯한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 뿐만 아니라 미술.무용의 순수예술, IT.금융 같은 경제, 전통문화와 한국음식에 이르기까지 분야가 광범위하고 파급력도 확산되고 있다.

국가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국력도 신장된 것을 말해주는 현상으로 누구든 뿌듯해할 만하다. 그런데 한발 물러서 한류 바람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잠깐 유행처럼 스쳐갈 것처럼 기반이 취약하거나 단기적, 비전략적 접근으로 경제.문화적 효과가 미미한 사안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해 한류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큰 과제이다.

여기 '한식'이야 말로 한류의 근본이고 미래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최근 <조태권의 문화보국>이란 책을 펴낸, 한식 전도사로 유명한 조태권 광주요 그룹 대표이다. 조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류 부흥을 위해 3일 발족한 '한류문화진흥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한식에는 우리 민족의 문화 전체가 고스란히 녹아있어요. 우리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한 '한류'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양재동 광주요 사무실에서 조태권 대표를 만나 한식이 지닌 가치와 미래, 문화 경제적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광주요 서울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지런히 진열된 광주요 명품 도자기들이 내방객을 먼저 맞는다. 이어 고전 풍속도가 그려진 벽지를 지나 조태권 대표의 방에 들어서니 또 다른 도자기들과 책들이 조화롭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호탕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조 대표 옆에 그의 저서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책에 대한 반응부터 물었다. "(책)나온 지 한달도 안돼 2쇄 인쇄에 들어갔어요. 지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반응이 좋습니다."

조 대표는 책을 내기까지 3년 반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강연과 방송 출연, 식당을 직접 운영하며 한식을 알려온 그가 굳이 책을 낸 이유가 궁금했다.

"가업으로 광주요를 물려받으면서 도자기를 알아야 했어요. 문화 소비자에서 문화 생산자가 되니 책임과 안목이 필요했죠. 중국, 일본, 유럽의 영국,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등의 도자기를 이해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의 역사를 알게 됐고, 음식이 도자기에 담겨 나올 때 '문화'가 된다는 것도 인식했어요. 음식이, 한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문화의 총합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책을 냈습니다."

음식이 문화의 총합체라니, 그에게 좀 더 설명을 요구했다. "한 나라의 음식은 맛 이전에 문화입니다. 음식을 담는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는 식당의 분위기와 식기, 식사 예절 이런 것들에 E라 평가가 달라지죠. 19세기 말 미국 부호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크루즈여행을 하면서 프랑스를 방문해 식당 '르 그랑 베푸'에서 프랑스 음식을 맛보고, 프랑스 문화를 느끼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프랑스 문화가 세계로 펴지게 됐죠. 식당은 음식부터 인테리어, 미술, 음악, 서빙 등 그 나라 문화가 총체적으로 집약돼 있어요. 한식도 고급화를 통해 세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계탕죽
한국 문화를 알리는 매개는 많다. 그럼에도 조 대표가 한식을 문화 매개의 첨병으로 삼은 것은 한식이 지닌 의미와 경제적 가치를 고려한 것이다.

"문화는 의식주에서 생겨나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음식문화에요. 한식에는 민족의 문화 전체가 고스란히 녹아있죠. 한식의 고급화를 완성시켜야 서구에 우리 문화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우리 문화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는 '문화보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식의 현실, 한식의 세계 수준은 어떠한가? 조 대표는 한식의 무한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진단한다.

"서구 열강이 15세기부터 해양무역을 통해 음식과 음식문화를 발전시킨데 반해 우리는 중세 이후 1천년간 한반도에 갇혀지냈고 시민계급의 성장도 없어 귀족은 집안문화, 종가집문화에 머물렀고, 서민들은 끼니를 때우는데 급급하는 완전히 이질적인 두 집단으로 존재했죠. 한식이 제대로 설 자리도, 대접받을 위치에 있지도 못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식은 단절되고 값싼 음식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지금도 6,500원의 족쇄에 묶여 한식은 값싼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이래서는 한식 세계화, 한국 문화 전파는 요원하죠."

조 대표는 한식은 서민적이라는 잘못된 인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급문화가 없으면 대중문화도 없는데 한식을 계속 서민음식으로만 여기면 결국엔 남의 문화가 고급문화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닷가재 떡볶이
그러면서 강 대표는 한식의 고급화, 수직적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문화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한식을 고급화하자는 것은 '상징적 음식, 상징적인 식당'을 운영하자는 것으로 한식이 세계적으로 이렇다고 인식될 만한 상징성을 구축하자는 겁니다. 비싼 한식이 팔리면 다음 단계의 한식이 나옵니다. 가격도 다양화해지죠. 중요한 것은 거듭 말하지만 고급 음식을 통해 고급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 브랜드도 함께 올라가게 되죠"

실제 조 대표는 2003년 전국 각지의 전통 한식 명인들을 섭렵한 끝에 개발한 메뉴로 고급 한식당 '가온'을 열었고, 이보다 아래 단계인 '낙낙'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은 건물 임대차 문제로 2009년 문을 닫았지만 베이징에서는 성업중이고 올해 안에 다시 열어 한식 고급화, 세계화의 장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한식 세계화는 조 대표만의 열성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 민간이 혼연일체가 돼 나서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한식 세계화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조 대표는 지난 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류문화진흥을 위해 발족한 '한류문화진흥자문위원회' 회의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나파 밸리 만찬
"한류 진흥 방안과 관련해 참석자들마다 개별적인 견해를 밝혔는데 한류를 하나의 종합문화로 인식하고 좀 더 큰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얘기 했어요. '문화란 무엇인가' 부터 정리하고 한류를 하기 위해서 우리정체성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가 등등. 음식은 단순히 음식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 음식에 맞는 그릇과 음악, 건물이 모두 한 세트에요. 문화는 따로 가지 않아요. 모든 게 조화를 이뤄서 가야 한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조 대표는 정부의 한식세계화 정책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명분으로 중구난방으로 정책을 추진해 예산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한식 세계화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제안했다. 즉 "정부가 나서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참여하는 국제 공모전을 열어 세계인이 한식을 재해석하게" 하고 그 결과물을 활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조 대표는 정부와 기업들이 고급 한식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국내에 고급 한식당을 만들고 외국인들이 한식을 체험하게 해 한식의 국제적 위상을 정립하고 대기업은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장점을 활용해 세계적인 도시에 최고급 수준의 한식당을 만들어 '일품 한식'의 이미지와 맛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세계 외식업 총시장 규모는 5,000조원에 이른다. 일본은 오는 2020년도까지 전 세계 인구 중 일식인구를 20억명을 만들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4,800억 달러 규모로 560조원에 달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의 연간 매출을 훨씬 웃도는 액수다.

조 대표는 지난 시대 기업 정신이 산업보국이었다면 21세기 글로벌 문화전쟁 시대의 화두는 '문화보국'이라고 말한다. 문화전쟁에서 무기는 문화, 그중에서도 음식문화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다.

"음식에는 민족의 문화 전체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지면 민족의 동질성이 와해됩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죠."

조 대표는 음식문화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지키고 가다듬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과제라며 음식문화로 문화보국에 정진해 갈 것임을 다짐했다.

한식 풀코스 "원더풀!"
●음식칼럼니스트 초청 '美 나파밸리 만찬'
어회샐러드→→

조태권 회장은 오래전부터 한식 세계화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려고 하던 차에 2007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세계적 와인 산지 나파 벨리에서 유명 와이너리 총수들과 미식분야 기자들, 음식 칼럼니스트들을 초청해 한식의 정수를 선보였다.

이를 위해 조 대표는 광주요의 청자 접시, 백자 사발, 불고기용 내여루 자기, 밥그릇, 국그릇 등 도자기 1,000여 점을 준비하고, 고급스런 한식 재료들을 동원했다.

만찬은 전채로 어회 샐러드와 화이트 와인이 나왔고, 두 번째 코스에는 게살과 생선, 김치 꼬치에 생선육수와 달걀흰자를 입힌 삼색전과 화이트 와인을 선보였다.

세 번째 코스는 바닷가재와 떡볶이를 곁들였고, 네 번째 코스에는 쇠고기 등심을 숯불에 구운 등심구이를, 다섯 번째 코스는 홍삼과 전복, 오골계와 송이, 한약재 등의 재료로 만든 을 제공했다. 후식으로는 삶은 밤을 꿀과 잣가루로 버무린 밤초와 감초, 대추 등 약재로 우려낸 약차를 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까지 한국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지, 이렇게 다양한지, 그리고 와인과 이렇게 잘 어울릴지 상상도 못했다며 극찬을 하였다. 만찬에 참석한 그곳 오피니언 리더들은 한식의 등장에 세계적인 음식이 탄생했다며 감탄했다.

이날 행사는 미국 언론뿐 아니라 국내 일간지 몇 곳에서 대서특필 되면서 정부의 한식 세계화 정책으로 이어졌고, 고급 한식집들이 곳곳에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