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실에서의 강태환(앉은 사람), 박재천(왼쪽), 미연(오른쪽)
2011년 3월 선생이 자기 음악의 정수라며 최종적으로 정리한 12곡의 녹음을 끝냈다. 삼청동 녹음실에서 작업을 마친 그 앨범은 레이블 '오디오가이'로 발매된다. 두 번 째 솔로 앨범인 셈이다. 이 작품은 선생으로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나름의 숫자 매기기 작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작품에 처음으로 제목을 붙였으니. '소레화'란 곡이다. 실제로 솔, 레, 파의 세 음만으로 이뤄진 첫 디스크의 네 번 째 곡인데 음악적 효과가 몹시 특이하다. 자신의 울부짖음으로 영혼을 구원하고자 했던 흑인의 정신을 되짚어 간다는 의미가 있다.

첫 째 디스크의 다섯 곡, 둘 째에 네 곡이 모두 솔로다.

'강태환의 절망'이라. 틀린 말이 아니다.자. 현실적으로 비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크다. 궁극적으로 볼 때 그것은 진짜 재즈맨의 숙명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자신만의 작품, 자기만의 해석을 겸비해야 하는….

그러나 선생의 음악은 달리 말하면 컨템포래리의 이상이기도 하다. 동시대에 인기 있는 유행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 것들을 모두 종합했다는 의미에서, 재즈의 이름 아래 구현될 수 있는 음 현상 모두를 포괄한다는 의미에서의 폭 넓은 컨템포래리이다.

선생이 특별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전위 음악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음악계는 커다란 손실을 자초하는 셈이 된다. 음악사적으로 보아 김순남 - 윤이상 - 강석희로 압축되는 한국의 창작 음악사(史) 서술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강태환은 스스로 곡을 만들어 끊임없이 연습하는, 말하자면 작곡가적 연주가다. 굳이 택하라면 결국은 작곡가다.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끊임없이 변주돼 가며 생성되는 것이 강태환의 음악이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우리의 산조가 보여준 발전 논리이기도 하다.

강태환은 그러므로 '현대 음악 작곡가'다. 작곡하며 본인이 재현할 수 있는 그 같은 능력은 굳이 비기자면 파가니니 정도일 것이다. 악보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고 재연, 연주되고 있는 유일한 음악가다. 나는 선생이 언젠가는 '현대 음악 작곡가'로 규정될 것이라 확신한다.

클래식 평단과의 괴리는 분명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현대 음악과 대중 음악이 소통 불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선생은 작곡가란 렌즈로 봐야 한다. 물론 작곡가 중심의 문화가 일천한 한국 상황에서 쉬 성사될 일은 아니다. 비슷한 경우로, 일본은 우리 시각으로 보면 재즈 타악 주자 쯤으로 불릴 도가시 마사히코를 작곡가로 분류한다. 현대 음악에서 작곡이란, 근본을 항상 의식하는 과학자적 정신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그의 음악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서너 명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재즈를 단순히 대중 음악으로 분류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한국 문화 정책은 재즈에 대한 오해를 여실히 반영한다. 내가 거기서 받은 지원이라면 재즈로서가 아니라 2008년에 발표한 국악적 앨범 '조상이 남긴 꿈'이 선정돼 2010년 기금을 받은 것이 전부다.

"이쯤에서 끝냅시다." 가끔 내가 선생께 하는 말이다. 연습을 그만 하자는 말이겠지만, 더 밀고 가면 고독한 프리 뮤직을 그만 두자는 말로도 들릴 법 하다.

꿈이 있다. 선생, 나와 미연의 연주를 영화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제목을 단다면 가칭 'The Trio'로 생각하고 있는데 셋이 연주하며 속으로 벌이는 음악적 갈등을 주제로 잡았다. 세 명이 평소대로 즉흥 연주 하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응답 - 동조 - 반복하는 장면에 추후 대사를 넣는 거다. 서강대 메리홀에서 연주를 펼치고, 그 광경을 고정된 카메라 9~10대로 찍어 편집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 된다. (의도대로 이뤄진다면 재즈 버전 '매트릭스' 촬영 기법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여기서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할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 식으로 갈거야"(강태환) - "나도 고집은 있어요"(박재천) - "어머, 또 붙었네"(미연). 굳이 말하자면 강태환은 독재자, 미연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관자, 나는 조정자 정도로 그려진다면 좋겠다..

얼굴, 악기, 손에 각각 1대씩의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영상을 얻어 낸다면, 보기 드문 프리 뮤직 무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편집을 잘 해 완성되면 세계의 독립영화제 쪽으로 출품하고 싶다. 얼추 그렇게 그림은 나오는데, 문제는 제작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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