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새 지도체제 구축을 위한 경선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양측의 후보군이 물밑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새로 구성되는 지도부는 각각 자당의 대선 후보 선출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는 점에서,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에 대한 정가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새누리당은 9일 원내대표 경선과 15일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지만 비상대책위원장의 독주 체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선출되는 당내 투톱 지도부가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친박계가 당 전체를 사실상 좌우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당 대표와 원내 대표라는 핵심자리에 모두 자파 소속 의원들을 앉히며 박 위원장을 위한 완벽한 진용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당내에서는 박 위원장의 사당화(私黨化)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모두 독식할 경우 이 같은 논란은 가열될 것이고 이는 박 위원장의 지도력에 상처를 내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두 자리 중 하나는 비박 진영에게 양보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이 경우 원내대표는 비박 진영에서, 대선 후보 경선 룰 개정과 관련한 실질적인 키를 쥐고 있는 당 대표는 친박계 측에서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황우여
새누리당의 대세가 친박이라면 민주통합당의 주도권은 친노(親盧)가 쥐고 있다. 당내 세력 구도상 친노의 단합 여부에 따라 6월 전당대회 당 대표는 물론 대선 경선에서도 자파 소속 후보의 옹립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권의 경우 현재 구도로는 새누리당은 친박계 원내대표가, 민주당은 친노계 이해찬 전 총리가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들이 올 여름을 지나며 치러질 당내 경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범위는 여야가 조금 다르다. 여당은 박 위원장이 주도하는 상황이기에 관리형 대표에 가깝다. 또 친박 내부에도 사령관을 자임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야당의 경우 친노 중에서도 대선 주자가 복수로 거론되는 데다 비노(非盧) 진영에서도 후보가 적지 않아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정가는 황 원내대표보다 이 전 총리의 움직임에 일단 눈길을 고정하고 있다.

"문재인이냐, 김두관이냐"

민주당의 6월 전당대회 결과는 아직 안개 속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박지원 의원과의 당 대표-원내대표 역할 분담론에 따라 당 대표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을 뿐 다른 후보군은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친노의 대표성을 갖는 이 전 총리가 나선다고 할 때 같은 친노 진영에서 도전장을 낼 후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범친노군에 속해 있지만 상대적으로 직계 그룹과는 조금 색을 달리하고 있는 문희상 원혜영 의원 정도가 출마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민주당 내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는 486그룹에서는 우상호 당선자가 간접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정세균 고문 계로 통하는 신기남 당선자, 손학규 고문 계로 분류되는 조정식 박병석 신학용 의원 등도 출마를 검토할 수 있다. 또 다선 그룹에서는 이미경 김영환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무게감을 견줘볼 때 이 전 총리를 추월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6월 중순께 이 전 총리를 당 대표로 하는 민주당 지도부가 새롭게 구성된다고 가정하면 이 때부터 사실상 이 전 총리의 구상대로 경선 룰과 일정 등이 짜여지면서 본격적인 대선 경선레이스가 불을 뿜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이 전 총리는 같은 친노계인 문재인 상임고문을 대선 후보로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지원 의원을 원내대표로 후원한 것도 충청(이해찬)-호남(박지원)-영남(문재인) 지역 연합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문 고문이 대선 주자로서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갔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문 고문은 부산ㆍ경남지역의 총선 승리를 이끌지 못해 상처를 입었고, 막말 파문으로 전체적인 민주당 총선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나는꼼수다'의 김용민 후보를 직ㆍ간접적으로 도운 의혹으로 인해 중도ㆍ개혁적인 이미지에도 손상을 입었다. 여기에 '이-박 역할 분담론'에 지지 의사를 표했다는 이유에서 당내 비노 진영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 같은 악재들이 겹치면서 최근 문 고문의 지지율이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이 전 총리 입장에서는 같은 친노 진영의 다른 후보를 염두에 둘 수도 있는 국면이다. 이 경우 대안은 김두관 경남지사다. 문 고문이 주춤거리면서 상대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김 지사지만, 아직은 대선주자 지지율이 전국적 인물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김 지사가 이를 여하히 돌파하느냐에 따라 킹 메이커를 자처할 이 전 총리에게 적극적인 후원을 받을 수도 있다.

문 고문과 김 지사의 장외 경쟁도 관전 거리지만 이 전 총리가 두 후보 중에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대세가 기울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경선 끝까지 양측과 등거리 전략을 유지하다가 여론조사 지지도가 기우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아 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전 총리와 결을 달리하는 주자군인 손학규 정세균 정동영 고문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 상대 후보와 경쟁을 벌이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당의 분위기를 친노 주자에게 맞추려는 이 전 총리와도 또 다른 장외의 혈투를 벌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서로 킹메이커

새누리당은 민주당과 상황이 정반대 격이다. 대선 후보는 위원장이 독주 채비를 마친 상태이지만, 오히려 킹메이커 자리에는 저마다 손을 들고 역할을 맡으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보가 복수이며 킹메이커가 단수로 거론되는 민주당에 비해 새누리당은 후보는 단수인데 킹메이커가 복수로 거론되는 것이다. 따라서 친박계 사이에서 누가 진짜 킹메이커인지 쉽게 분간이 안 된다.

15일 실시될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는 친박계로 수도권 중진인 원내대표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출마를 선언한 심재철 유기준 원유철 의원 등이 뒤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친박의 지원을 등에 업은 황 원내대표를 뛰어 넘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

박근혜
만일 이번 전당대회에서 황 대표 체제가 구성될 경우 표면적으로는 '관리형 대표'이지만 실질적으론 박 위원장을 지원 사격하는 공조직 탄생을 의미한다. 사실상 '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당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외적인 박 위원장 지원 사단이고 실질적인 조종탑은 친박 내부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친박 내부에서는 원로그룹이 적잖은 힘을 행사한다. 그 중 김용환 상임고문과 전 의원이 각자의 공간에서 박 위원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김 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장관을 역임하면서 박 위원장과는 오랜 연을 맺은 사이다. 또 서 전 의원은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 소속이던 현정부 초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력이 있어 박 위원장에게는 이 부분이 빚으로 남아 있다.

이에 따라 황 원내대표가 당선될 경우 황 대표-김 고문-서 전 의원의 3대 축이 당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박 위원장을 위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가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친박 내부의 실세 그룹으로는 이번 총선 공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최경환 의원이 새로운 핵심으로 떠올랐고, 유정복 현기환 의원도 박 위원장의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실무자 그룹에서는 최 의원이 좌장 역할을 자임할 것으로 점쳐진다.

민주통합당 당권과 원내대표 합의설의 주인공인 박지원(왼쪽)의원과 이해찬 상임고문. 옆엔 문재인 고문.
하지만 이들은 야당과 달리 킹메이커가 아닌 사실상 박 위원장을 추대하기 위한 전체 친박의 감독 역할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비박 주자들은 비박 진영에서 배출될 것이 유력한 원내대표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상대적으로 친박 위주의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이주영-이한구 의원간 3파전이 유력해 보이지만, 당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있는 친박계가 원내대표를 비박 진영에게 내주기로 의견을 모아갈 경우 중도ㆍ쇄신파인 남 의원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이다.

따라서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 비박 주자들은 남 의원이 당선될 경우 그를 상대로 당내 경선 문제에 대한 각자 주장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친박 위주로 구성될 차기 지도부 내에서 비박 원내대표의 공간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비박 주자와 신임 원내대표와의 결속력도 떨어져 상징적인 측면 외에 현실적인 파급력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역대 정치사에서는 고인이 된 김윤환 전 한나라당 의원이 가장 족적을 많이 남긴 킹메이커로 기록돼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정회 의원이던 그는 5공 정권에서 6공 정권 창출에 기여했으며, 이후 민정계의 상당 부분을 김영삼 전 대통령 쪽으로 서게 해 그를 당선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15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를 옹립시켰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한테 패하며 킹메이커로서 첫 실패를 맛봤다. 이후 16대 총선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해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파란만장한 정치 여정을 끝내야 했다.


서청원
남경필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