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장외의 유력 주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한 정치권 본격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안 원장은 알려진 대로 이번 학기 서울대에서 강의를 마치는 대로 다음 학기는 강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 6월초 1학기 수업이 모두 끝나도 학기 잔무 처리를 위해 10여일 정도가 더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대충 6월말부터 안 원장은 사실상 자연인 신분이 된다. '정치인 '로의 변신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중립지대에 머물고 있는 안 원장이 이르면 6월말 대선 출마를 위한 정치 선언을 하더라도 당장 여야 특정 정당으로 소속을 정할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은 여야 기성 정치에 신물 난 중도층의 절대적 지지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안 원장이 정치 선언과 함께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을 선택하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당분간 장외 중립지대에서 여의도 정치권을 향한 날 선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데 주력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치권의 장외 관전자로서 평론만 할 수는 없다. 적어도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안보관이나 경제 정책, 이념적 노선이나 사회ㆍ문화정책의 큰 방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차기 정권이 온 힘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비책은 뭔지 밝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 원장은 학교 일정을 끝내면서 상당 시간을 정치적 과외 수업에 할애할 것이 분명하다. 이어 정치적 상황 변화와 여론 추이 등을 지켜본 뒤 여와 야의 중간 지점, 진보와 보수를 가로지르는 적절한 지점을 선택하는 정치적 줄타기에 나설 것이 유력하다.

예상 범주 벗어나지 않을듯

여기까지는 안 원장의 행보가 어느 정도 짐작되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가 내놓은 해법들이 정치권이 예상하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에 지지층도 ' 식 정치적 소신'에 대해 별다른 동요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달라진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선 과정에서 야권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건지, 독자 노선으로 단일화 없이 완주할 건지, 현실성이 크진 않지만 새누리당으로 입당해 심판을 받을 건지 등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대목이다.

물론 안 원장 지지층의 상당수는 야권 선호층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들 지지층에서는 당연히 야권 단일 후보 경선을 거쳐 새누리당 주자와 겨루길 희망하고 있다. 실제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재까지는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안 원장의 정치 성향이 '비(非) 새누리당'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적 대 적 관계로까지 치부할 정도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정치권 진입을 앞둔 안 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의외의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그는 아직 50대 초반의 나이다. 단순 나이를 생각하면 5년 뒤 대선에서는 50대 후반, 10년 뒤 대선을 생각하면 60대 초반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15년 뒤인 21대 대선에서도 60대 후반의 나이가 된다. 그가 평생을 걸어서 한번 승부를 벌여야 하는 대선전이 꼭 이번 연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금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 여러 선택지를 놓고 생각을 저울질 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근혜
아직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당시의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한 게 사실이다. 민주당 후보와 안 원장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승자가 결선에 나가는 방식이다.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대놓고 안 원장과의 공동정부론을 언급했다. 안 원장이 추구하는 이념적 노선과 가치가 민주당과 같기 때문에 '비 새누리당' 세력이 한데 힘을 합하자는 논리다. 당 대표로 유력한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해 민주당 내 적잖은 의원들도 이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손학규 고문은 "벌써부터 패배의식에 젖어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고, 친노 진영의 또 다른 후보인 경남지사도 "당내 유력 주자를 키우지는 않고 당 밖 인사에게 눈독을 들이는 거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안 원장이 올 가을까지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한다면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 압박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민주당 후보와 안 원장, 여기에 통합진보당 등 다른 야당의 대선 후보들이 함께 단일화 경선을 치러 명실상부한 비 새누리당 연합군 수장으로 대선에 임한다는 시나리오다.

문재인
여기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끝까지 안 원장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야 야권후보 단일화에 나설 자격이 부여되는 것이고, 본선에 나가서 패한다면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 돌아 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 원장 등 야권 단일 후보가 대권을 거머쥘 경우 야권연대 전체는 차기 정권의 제1여당과 제2여당으로 자리매김한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공동 정부가 세워질 수 있고 안 원장을 중심으로 야권이 재편될 수도 있다.

다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안 원장이 이긴다 하더라도 민주당이나 통합진보당 등 야권의 뿌리가 없다는 점에서 차기 정권은 입법부와의 관계 설정이 모호해 질 수 있다. 자칫 여권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홀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비판적 중도세력이 우군

안 원장의 절대 지지층은 여야 정치권에 비판적인 중도 세력이다. 때문에 안 원장이 여야 한쪽을 쉽게 선택하다간 자칫 상당수의 지지층이 한번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서 안 원장이 고민하는 대목은 크게 두 갈래다.

김두관
지금의 제3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이번 대선에서의 승리가 가능할까 여부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해 나선다고 가정할 경우 과연 대선 승리가 담보될까 하는 부분이다.

일단 제3의 노선으로는 야권 지지층을 모두 흡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라도 지금의 야권 세력과 손을 잡아야 현실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야권에 몸을 기탁한 상태에서 대선에 나섰다가 패배할 경우 안 원장 입장에서는 정치적 미래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당에서도 한번 승부에서 패한 안 원장을 계속 정치적 자산으로 보호해줄 리가 없다. 5년 후에는 다른 후보군들이 당 내부에서 자체 세력을 기반으로 커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안 원장이 지금과 같은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당을 택할 가능성은?

이런 이유에서 안 원장이 비록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제3의 길이란 자신만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을 계산에 넣을 수 있다. 여야 어느 쪽도 가지 않고, 단일화란 방법도 택하지 않으면서 제3의 후보로 대선까지 완주하는 방식이다. 여야 후보에다 안 원장까지 다자간 대결로 대선이 치러진다는 의미다.

이 경우 대선 승리가 쉽지 않겠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걷는 올곧은 정치인으로 국민에게 인상을 깊게 심을 수 있다. 또 차기 총선이나 대선에서 제3의 정당과 제3의 정치세력 출현을 기대하는 유권자 층에게는 신선한 인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여기엔 5년 뒤 여권주자가 야권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질 경우 여권 지지층이 오히려 중간에 있는 안 원장 지지로 돌아설 수 있다는 기대감도 계산돼 있다. 다만 이번 대선에서 야권 분열의 당사자라는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없이 대선에 나가 여야 후보와 3파전을 벌인 뒤 패하더라도 지금의 중립지대에 머물면서 같은 정치 성향의 인사들과 함께 정당을 꾸려 4년 뒤 20대 총선을 치르고 5년 뒤 제3의 길을 계속 주장하며 대선에 재차 도전한다는 시나리오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최근 안 원장장의 영입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정치적 노선이나 가치가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함께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황우여 대표도 "안 원장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안 원장이 여당과 주파수를 맞추고 나온다면 딱히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노선만 분명히 한다면 문호를 활짝 열어놓겠다는 분위기다.

안 원장의 아킬레스건은 정치 경험이 전무하고 국가 경영이란 큰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지며 국가 운영의 키를 통째로 맡겨도 되는 건지 불안해한다. 이런 결점을 메워줄 수 있는 세력이 새누리당이다.

'정치경험 전무' 큰 약점

지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여당 후보로 유력하다는 점에서 - 연합으로 대선에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필승 카드다. 집권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박 전 위원장도 이 같은 제안이 온다면 딱히 물리칠 이유가 없다.

안 원장은 그대신 차기 정권에서 국무총리 등 요직을 기대할 것이 분명하다. 그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국가 운영 경력은 이렇게 채워질 수 있고, 여기서 능력만 제대로 발휘하면 그는 5년 뒤 대선에서는 명실상부한 여권의 제1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경우 중도층의 지지는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지도자 감으로 불안해 하던 여권 선호층도 거의 대부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흡수할 수 있다. 중도와 보수층의 지지를 한번에 끌어당긴다는 것이니 안 원장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만한 카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박 전 위원장을 겨냥해 유신 독재를 비판했던 안 원장으로서는 여권으로의 전향이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아주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안 원장의 정치권 진입을 놓고 이렇게 각종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를 통해 박 위원장 등 여당 후보와 일전을 벌이는 모험을 해보느냐,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고 제3의 길을 고집하면서 차기나 차차기를 향해 뚜벅뚜벅 걷느냐, 여권으로 돌아서 국가 경영에 대한 경험을 해본 뒤 차기 지도자로서의 수업을 차근차근 밟아 가느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 안 원장이 서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를 통해 나섰다 패하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 제3의 길을 고집하며 완주한다면 미래는 기대할 수 있어도 당장 야권 분열이란 책임을 떠 안아야 한다. 여권 전향 시에는 보수층의 환영은 예상되지만 진보진영의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각각 기대치와 난관이 상존하는 선택지다. 안 원장이 정치를 포기하면 몰라도 계속 꿈을 갖고 나간다면 세 카드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 원장과 그를 에워싼 측근들의 지혜가 총동원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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