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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재즈재즈] "수수하고 친절… 곁에 있으면 편해"

강태환 <12> 김영수가 말하다
"먼저 할 테니 따라오라" 리허설도 없이 즉흥 연주
87년 재즈 페스티벌서 상상도 못할 소리의 향연
독일관객 기립박수 '난리'
"강태환은 한국 재즈의 불가사의"라는 명제는 여전히 진실이다. 그는 역사가 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믿음을 일거에 전복시켰다. 평상시는 극히 범상하다. 자신이 세계적 프리 재즈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숨긴다. 두 사실의 괴리는 우리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다가도, 황홀케 한다.

재즈 기타리스트 김영수(49)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사실을 체감했다."만나면 너무나 수수하시고 친절한 분이시죠. 기타 치는 재즈 후배라는 사실을 아시고는 제게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쉬지 않고 5시간을 연습한다는 데서 의당 느껴지는 외골수적 분위기는 전혀 없었지요."

현재 피츠버그대 재즈학 박사 과정에 있는 그가 잠시 짬을 내 들어왔다. 그리고 당시 기억을 청했다. 선(禪的)인 커뮤니케이션과도 같은 둘의 만남은 강씨의 또 다른 면을 생생히 복원해 냈다.

1990년대말 문화일보홀에서 가졌던 실험적인 재즈 콘서트에서 두 사람은 6분 동안 즉흥 연주를 펼쳤다. "먼저 할 테니 알아서 따라 오라는 말씀을 하시더니 리허설도 없이 곧바로 실제 연주에 들어갔죠." 당시 젊은 혈기에 좀 급했던가,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호흡이 긴 멜로디를 하라고. 또 음악을 내 안에서 발견하라고도. 당신은 쉬지 않고 5시간도 연습한다면서."

미국으로 유학 가기 직전이었던 2000년, 그는 강은일(가야금)ㆍ허윤정(가야금) 등 젊은 국악 주자 등과 강씨가 만든 '상상트리오'와 함께 딸기소극장에서 강씨와 한무대에 선 적 있다. 트리오의 연주 위주에, 그는 게스트로 나와 솔로로 프리 재즈를 펼쳤다. 네델란드, 독일 등지에서 재즈를 공부하던 당시 늘 보고 듣던 형식의 음악이 한국에서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양식의 연주 방식이다.

그는 재즈를 찾아 유럽으로, 미국으로 돌아다녔다. 대학생 시절, 한국 재즈의 산실인 클럽 야누스에 갔다 재즈에 빠진 청년이 택한 노선이었다. "이판근, 박성연, 조성국씨 등 우리 재즈 1세대의 공연이 펼쳐지던 그 곳에 선생님과 맺어진 연주 인연은 박재천과 펼쳤던 홍대앞 명월관 공연까지 끊이지 않았어요." 그가 LA에서 활동할 때는 강씨가 와서 그 공연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진정한 재즈를 향한 강씨의 모색 중 일부다. 강씨가 몽고의 전위 보컬리스트 사인호 남치락과 무대를 펼칠 때는 마침 귀국해 있던 김씨가 당연히 찾아 갔다. 2009년 그가 미국 장기 체류를 위해 한국을 뜨기 직전, 강씨에게 인사를 빠뜨리지 않은 것은 무척 자연스런 일이었다. "몸이 옛날 같지 않다며 부드러운 주법을 개발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은 게 바로 그 때였어요."

그가 기억하는 강씨 최고의 공연은 1987년 독일 중부 도시 뫼어스에서 열린 'Moers New Jazz Festival'이다.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방가르드 재즈 페스티벌이라 정평 나 있는 무대의 당시 순서는 사실 일본의 프리재즈를 위한 것이었다. 우메즈 가즈히토 등 일본의 최상급 프리 재즈 색소폰 주자 3명이 만드는 무대에 강씨가 합류한 형식이었다. 그나마 한국의 재즈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일본의 재즈 평론가 소에지마 테루토씨의 의도였다.

"2,000여 독일 관객들이 난리를 쳤어요. 동물의 울부짖음 등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 하던 소리가 쉼 없이 울려퍼지니, 기립 박수는 당연히 정해진 코스였어요." 그러나 일본측에서 꾸민 무대라는 근원적 한계 탓에 강씨는 응달 밖으로 나오지 못 했다. "우리 기획자가 했으면 달랐을 텐데…."

여전히, 그는 아쉽다. 앞으로도, 사그라들지 않을 아쉬움일 것이다. 그것은 한국적 특수성 때문일까, 프리 재즈라는 별난 장르가 감내해야 할 숙명일까? 이를테면 이런 것.

"선생님 옆에 있으면 편해요. 항상 음악 이야기만 하세요. 보통 한 번 만나면 두 시간 정도 함께 있는데, 늘 그 이야기죠."

김씨는 유럽과 미국을 다 안다. 독일 쾰른 음대, 스위스 베른 재즈 음대, 암스테르담 음대 등 유럽서의 재즈 공부 시기를 마친 뒤 그는 재즈의 본향 미국으로 갔다. 1994년부터 그는 흑인들과 부대끼며 재즈의 혼(soul)을 체득했다. 그 와중에 동아방송예술대 영상음악과 교수직을 지내기도 했다. 7월부터는 아이폰어플 시장에 '김영수 교수의 재즈화성학 강의' 를 시작, 향후 국내에서의 본격 활동을 가늠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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