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장후보의 정견발표를 듣고 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절반 가량은 이념적으로 자신이 중도(中道)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창간 58주년(6월9일)을 맞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에게 유ㆍ무선전화로 본인의 이념 성향을 물어본 결과 전체 응답자의 42.1%가 이같이 답했다.

자신의 이념 성향이 대단히 보수적이면 10, 대단히 진보적이면 0, 중도를 5라고 했을 때 보수(6~10)라고 응답한 층은 33.0%. 진보(0~4)라고 응답한 층은 24.9%였다. 응답자의 이념 지수 전체 평균치도 5.3으로 나타나 우리 유권자 층은 중도에서 약간 보수 쪽에 쏠려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지난해 6월 같은 방식의 항목 조사에서 '보수(28.5%)-중도(38.6%)-진보(29.0%)'로 나타난 결과와 비교하면 보수와 중도 응답층이 각각 4.5%와 3.5%포인트 상승한 반면 진보라는 응답은 4.1%포인트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진보 우위 구도가 1년 만에 보수 우위 구도로 바뀐 것이다.

이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를 중심으로 한 종북 논란과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들에 대한 변절자 발언 파문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보수 색채가 조금 진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가 가장 보수적

대선 주자의 이념 성향을 평가해보라는 질문에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점 만점에 6.7로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이회창 전 선진통일당 대표(6.4),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6.1), 이재오 의원(5.9), 김문수 경기지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5.5) 등 여권 주자들은 모두 보수 쪽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2012 승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반면 야권은 전원 진보 쪽 인사들로 비쳐지고 있었다.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3.8)가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분류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4.1)도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어 정동영 민주당 고문(4.3) 김두관 경남지사(4.5) 정세균 민주당 고문(4.6) 손학규 민주당 고문(4.9) 순이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향후 여야 대선주자 진영의 표심 잡기 경쟁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주목된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경우 중도나 진보 쪽의 정책 개발이 주효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야권 주자들은 보수 쪽으로 우(右) 클릭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안철수 원장과 문재인 고문이 유시민 전 대표에 이어 대선주자 중 두 번째로 진보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야권 단일화 경선이 치러질 경우 중간에서 오른 쪽에 있는 지지층을 어떻게 흡수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당 노선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보수에서 진보 쪽으로 새누리당(6.5)-선진통일당(5.5)-민주통합당(4.5)- 통합진보당(3.4) 순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에게는 '지금보다 약간 중도나 진보로 이동해야 한다'는 응답이 67.5%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민주당은 '지금보다 보수 쪽으로 이동해야'(23.9%) '지금의 이념 노선을 유지해야'(25.2%), 지금보다 약간 중도나 진보로 이동해야'(43.6%)란 응답이 나왔다.

제19대 국회 개원 첫 날인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국회의원 당선 축하 리셉션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인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과 관련해서는 '일부 의원이 종북 성향이라고 생각한다'(48.2%)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웠고 '다수 의원이 종북 성향이라고 생각한다'는 22.3%, '종북 성향 의원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16.7%로 나타났다. 무려 70%가 넘는 응답자가 통합진보당의 종북 성향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를 지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통합진보당의 쇄신과정을 지켜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45.2%로 많았고, 야권 연대를 파기해야 한다(27.4%)는 응답과 대선까지 지속해야 한다(19.6%)는 응답도 적잖이 나왔다. 통합진보당의 종북 의혹은 있으나 구당권파 등 일부 이념적으로 사회적 용인이 쉽지 않은 무리가 배제된다면 대선 승리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박근혜 vs 안철수 박빙

대선주자 중에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굳건히 선두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자간 대결에서 박 전 위원장은 41.1%로 1위를 달렸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2.9%로 2위,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다소 처진 10.5%로 3위에 머물렀다.

박 전 위원장과 안 원장의 지지율은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지만 문 고문은 최근 지지율이 주춤거리며 정체ㆍ하향세에 접어든 양상이다.

이어 김문수 경기지사와 손학규 고문이 2.0%로 4위, 김두관 경남지사와 유시민 전 대표가 1.6%로 6위, 이회창 전 대표와 정동영 고문이 1.4%로 8위, 이재오 의원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정세균 고문이 0.2%로 공동 10위에 처졌다.

1~3위 이외의 나머지 주자는 모두 2% 이하의 저조한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어 사실상 이들의 순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적어도 5% 이상의 지지율을 나타내야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만한 의미 있는 지표라고 분석한다. 여야 경선 레이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들 하위권 주자 중 누가 먼저 5% 근방으로 치고 오르느냐에 따라 의외로 급탄력이 붙으면서 1~3위 주자를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도 탄탄하게 선두를 유지하는 박 전 위원장은 큰 변수 없이 여당 주자가 될 것이 유력해 보이고 장외의 안 원장 역시 당분간은 야권의 대안 후보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지지율 정체에 시달리는 문 고문이다. 4위 이하 후보가 거세고 치고 올라올 경우 민주당 내부의 경선 승리도 장담하기 어렵다.

양자 대결을 묻는 질문에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안 원장이나 문 고문, 김두관 지사에게 모두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위원장이 안 원장과 대결에서는 48.2%대 45.2%로 3%포인트 차이의 근소한 우위를 점했고, 문재인 고문 및 김 지사와의 경쟁에서는 각각 57.3%대 34.1%, 68.6%대 19.5% 등의 제법 큰 차이로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4ㆍ11 총선을 전후해 1위를 되찾은 새누리당이 41.5%로 비교적 여유 있게 민주당(29.5%)에 앞섰고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통합진보당은 5.3%로 급격히 하락했다. 선진통일당도 1.9%로 의미가 크지 않은 지지도를 나타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관심사인 안철수 원장의 출마 여부를 예상하는 질문에는 출마할 것이란 응답(42.4%)이 출마하지 않을 것(30.8%)보다 다소 높았고 모름ㆍ무응답은 26.8%에 달했다. 여전히 안 원장의 출마 문제가 관심이었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계속된 그의 정치권 참여에 대한 미온적인 입장 표명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도층이 절대다수

이번 한국일보 창간 기념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이 여전히 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보수층이 지난해와 달리 진보층을 앞지른 점이 정치권이 가장 민감하게 바라보는 대목이다. 특히 정권교체를 꿈꾸는 민주당으로서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저 반여(反與) 정서에 기대기보다 모종의 방향 전환 등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야권 주자 중에서는 손학규 고문이 가장 먼저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선긋기를 언급했다. 보다 중도로 클릭 이동을 시도한 셈이다. 안철수 원장의 경우 표현은 완곡했지만 종북 성향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대다수 야권 주자들은 야권연대라는 달콤한 유혹과 통합진보당과의 결별을 통한 중원 공략이란 선택지를 사이에 두고 방황하고 있다. 겉으로는 통합진보당의 쇄신을 지켜보자는 쪽이지만 이마저도 종북 논란에 휩싸인 이석기 김재연 의원 등 구당권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새누리당은 이에 반해 콧노래를 부를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총선 승리 이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의혹에 이어 종북 논란까지 불거지더니 민주당 임수경 의원의 변절자 비하 발언 파문과 함께 계속 밝혀지는 친북 언행 등은 엄청난 호재이다.

물론 보수 편향 공세 일변도로 가다가는 역풍이 불 수 있는 점을 곳곳에서 경고하고 있어 조만간 수위 조절 등 스탠스를 재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대체적 분위기가 새누리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기존의 보수 축을 유지하면서 진보에 대한 공격보다는 종북에 대한 파상 공세를 이어가면서 복지 정책 확대 등을 통해 이념적 보수와 정책적 중도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세를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하고는 있지만 이도 역시 전통적 야권지지층의 결속은 가져올지 몰라도 중원 공략에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통합진보당 쇄신을 지켜보다 구당권파가 퇴출된 뒤 다시 손잡는 구도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칫 통합진보당 문제 해결이 지연될 경우 중도 유권자에게 야권이 통째로 외면 받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이념적 문제가 될 것이란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런 점에서 중도가 다수이고 보수가 진보보다 조금 우위에 있는 현재의 구도를 어떻게 적절히 이용하느냐가 대선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새누리당은 보수에 발을 디디고 중원으로 나아가는 목표는 분명하다. 따라서 민주당은 진보에 무게를 둔 채 중원으로 옮겨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형편이다. 만일 민주당의 이념적 스탠스 확립이 분명치 않거나 실기할 경우 야권 지지층은 한번에 안 원장에게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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