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을 모신 용문사 보광명전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지점으로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고개 가운데 하나인 저수령이 지나간다. 저수령에서 갈라진 백두대간의 곁가지인 국사지맥은 사부령으로 뻗어 내린 다음,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에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을 만나면서 막을 내린다.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와 예천군 용문면 사부리의 경계를 이루는 국사지맥 사부령에서 발원한 금곡천은 고만고만한 논밭 사이로 조용히 흐르다가 갑작스레 기암괴석과 암벽을 만나 급류를 탄다. 90도로 꺾이며 굽이도는 물돌이동 안쪽에 솟은 아담한 벼랑 위에는 멋들어진 정자가 올라서 있다. 초간정(草澗亭)이다.

초간정에 오르면 암벽 아래로 휘돌아가는 맑은 물과 하류 쪽 계곡 위로 걸린 출렁다리가 내려다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는 나이 지긋한 소나무와 참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한결 정취를 더한다. 문득 솔향기를 품은 시원하고 향긋한 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난다. 참으로 운치 넘치는 초여름 한낮의 정경이다. 별이 쏟아지는 밤의 정취도 그윽하리라.

초간정의 마루 난간 위에는 석조헌(夕釣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저녁에 낚시하는 마루'라는 뜻이다. 저녁 무렵 긴 낚싯대를 계곡물에 드리우고 명상에 잠긴 선비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는 현판 글씨다. 아마도 고기가 낚이든 말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평온한 안식에 젖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평정의 시간이었으리라. 그렇다. 초간정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인생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늑한 경승지다.

국내 최초 백과사전 저술한 권문해가 세워

조선 중기의 학자인 초간 권문해가 1582년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정자인 초간정은 당시에는 작은 초가집이었다가 1870년 중수했다.
초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선조 15)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정자로 당시에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고쳐지었지만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되어 몇 해 뒤에 재건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크게 퇴락하여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 초간정은 현판마저 사라져 버렸고 다만 정자 앞 늪에 파묻혀 있다는 전설이 이어올 뿐이었다.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어느 날 늪에서 오색무지개가 영롱하게 피는 것을 보고 그곳을 파보았더니 신기하게도 현판이 나왔다고 한다.

초간정은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벽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세워져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왼쪽 2칸에는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았고, 나머지 칸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초간정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08년 12월 26일 초간정과 주변 경관을 포함한 12,979㎡ 구역이 예천 초간정 원림(醴泉草澗亭園林)이라는 이름으로 명승 제51호로 승격되었다.

많은 문화재 품은 천년고찰 용문사

초간정 아래 금곡천을 굽이치는 계류
초간정을 세운 권문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권 20책의 목판본인 이 책은 단군 이래 선조까지의 역사적 사실, 인물, 문학, 예술, 지리, 국명, 성씨, 산 이름, 나무 이름, 꽃 이름, 동물 이름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참고한 자료는 우리나라 서적 176종과 중국 서적 15종으로 모두 191종이나 된다. 개인의 저작으로는 양과 질이 방대하고 뛰어나 임진왜란 이전의 국사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문헌이다.

초간정에서 4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용문사도 들러보자. 870년(신라 경문왕 10)에 두운선사가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당시 두운선사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서 용이 나타나 영접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용문사(龍門寺)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또한 절을 짓기 시작했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 16냥의 은병(銀甁)을 캐어 공사비에 충당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후삼국시대에 이르러 고려 태조 왕건은 두운선사의 명성을 듣고 용문사에서 잠시 머무르며 훗날 천하를 평정하면 이 절을 크게 일으키겠다고 맹세했다. 그 맹세대로 936년(태조 19) 왕의 칙명으로 용문사를 대규모로 중건했으며 해마다 150석의 쌀을 하사했다.

용문사는 대장전(보물 145호), 윤장대(보물 684호), 용문사 교지(보물 729),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자운루(경북문화재자료 169호) 등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10여 채의 당우를 거느리고 있다. 거목이 숲을 이룬 주변 경관도 그윽하며 맑고 소탈한 계곡도 때가 덜 묻은 비경이다.

# 찾아가는 길

초간정 일원에 펼쳐진 노송 숲
예천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예천읍-928번 지방도-용문면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이용해 예천으로 온 뒤에 초간정을 거쳐 용문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 맛있는 집

녹두를 갈아 만든 청포묵은 갖가지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어 간을 보강해 눈을 맑게 해주고 몸 안의 독소를 제거하는 효능이 있는데다 독특한 향을 품어 그 맛이 뛰어나다. 특히 청포묵을 채치듯 썰어 달걀지단과 당근, 청채 등 5색으로 단장하고 참기름과 양념장을 얹어 먹는 탕평채는 예로부터 귀한 요리로 꼽혀왔다. 예천읍내의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054-655-0264)은 청포묵정식과 탕평채로 명성이 자자한 맛집으로 6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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