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비박(非朴) 진영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전 대표와 경기지사, 의원 등 이른바 '비박주자 3인방'은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측을 겨냥해 경선 룰 조정 없이는 경선 불참을 언급하며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당내 경선에서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면서 이를 위한 경선준비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하지만 황우여 대표 등 사실상 친박계로 분류되는 당 지도부는 비박 진영의 이 같은 일치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12일 아무런 협의 없이 경선관리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출범시킨 뒤 13일 첫 회의를 열었다. 비록 황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 룰 논의기구 구성을 위한 비박 진영과의 회동을 공개 요청했지만 비박 진영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경기지사는 13일 새누리당 당원들에게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김 지사는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완전국민경선이 꼭 필요하다. 야권의 화려한 '3단흥행 마술쇼'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무미건조한 '1인 추대'가 아니라 완전국민경선으로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그러면서 박 전 비대위원장을 겨냥, "후보선출 규정 변경과 사당화에 대한 불만으로 (과거 이회창 총재 시절) 탈당까지 해 놓고 이제 와서 '선수가 룰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불통과 독선, 오만함의 발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이한구 원내대표
그는 "당 지도부가 '박심'(朴心ㆍ 의중)의 집행기구가 돼 있다"면서 "박심을 살피고 박심대로 밀어붙이려면 경선이 왜 필요한가. 이런 상태에서 경선을 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의원은 당 지도부의 경선관리위 출범 강행에 대해 "(비박 주자들이) 가만있든지 나가든지 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바둑을 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고, 전 대표도 현행 경선 룰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박주자 지지자 100여명이 12일 여의도 당사로 몰려가 '경선 룰 논의 봉쇄'에 항의하며 집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 비박 3인방 진영에서는 현행 룰대로라면 경선 불참을 포함해 탈당 및 분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친박과 비박 측이 경선 룰을 놓고 '강 대 강'(强 對 强) 대치를 이어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파국을 막기 위해 물밑 절충을 시도하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 이들 비박 3인방 없이 경선이 치러진다면 그건 박 전 위원장은 물론 다른 주자들 모두에게 정치적 타격이 된다.

정몽준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양측이 계속 힘겨루기를 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접점을 찾아 극적 합의라는 모양새를 만들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지역 순회 경선 가능성

황우여 대표는 14일 대선 후보 경선 룰 논의 기구를 만들기로 방침을 정한 뒤 최고위원회 산하에 경선기획단을 설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비박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긍정적 사인을 보내지는 않고 있지만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당 지도부와 만나 경선 룰과 관련해 머리를 맞댈 것으로 여겨진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어려울 경우 최소한의 경선 흥행을 위한 절충안이라도 얻어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비박 진영에서도 오픈프라이머리의 도입이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선거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점을 감안하면 현 상태로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점을 인지하고 있다.

김문수
이와 관련 친박계 내부에서는 지금의 21만여명의 선거인단을 100만명 정도로 늘려서 지역별 순회경선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정도 타협안이라면 비박 진영에서도 딱히 거부하기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행 룰 고수를 원하는 박 전 위원장 측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만 여론이 박 전 위원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마냥 현행 룰을 고집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미 친박계 내부에서도 정우택 최고위원을 포함해 일부 의원들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과 관련한 여야 TV 토론회를 열자"고 주장하고 있다.

비박 진영인 심재철 최고위원은 "런던올림픽 기간(7월27일~8월12일)을 피해서 경선을 치르려면 일정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친박을 포함해 당내에서 경선과 관련한 각종 의견이 제시되는 마당에 박 전 위원장이 무조건 현행 룰 고수를 외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모색되고 있는 것이 지역별 순회경선을 압축해 실시하는 방안이다. 16개 시도를 모두 순회하지 않고 6~7개로 경선지를 줄이면서 선거인단 수도 지금의 두 배 정도인 40만~50만명 정도로 늘리자는 또 다른 절충안이다.

이재오
이럴 경우 이들 비박 진영에서 순회 지역 숫자나 선거인단 규모에 대한 줄다리기는 벌일 수 있어도 "오픈프라이머리의 완전 도입이 아니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을 깨는 행태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

결국 경선 룰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는 시점에 다다르면 비박 진영에서는 제2의 카드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에 맞서 단일 후보가 나서는 ' 대 비박 단일 주자'와의 1대1 대결 구도다.

鄭-金 승자와 대결

비박 진영 후보는 아직 후보 단일화에 대해 "가능성은 있다"는 정도의 언급만 하고 있다. 경선 룰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론하기에는 너무 머나먼 이야기란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경선이 임박해지면 이들도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어차피 다자대결 구도라면 박 전 위원장이란 큰 산을 넘기에 역부족이다. 어쩌면 정치적으로 망신만 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때문에 비박주자들이 박 전 위원장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친박 대 비박 구도'로 전선을 단순화하는 방안뿐이다.

그럼 비박 3인방이 단일화할 경우 누가 나서게 될까. 일단 여론조사에서 조금 처지는 의원이 옹립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신 이 의원은 대권-당권 분리를 내세울 수 있고 그럼 정 전 대표냐 김 지사냐로 의견이 좁혀지게 된다.

두 사람은 1951년생으로 동갑이고 서울대 동문이다. 여론조사 지지율도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어느 쪽이 우세한지 점치기 어렵다. 다만 현 상황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정 전 대표가 우세할 수 있지만, 표의 확장성 부문에서는 김 지사가 다소 나을 수도 있다.

여론조사로 승부를 가를 경우 '-'의 대결이 일종의 여권 후보를 가르는 예선전이 될 수 있다. 이어 두 사람 중 승자가 박 전 위원장의 대항마로 나서는 경선이 여권의 준준결승이 되고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나 이회창 전 대표, 정운찬 전 총리 등과의 여권 후보 단일화가 준결승, 여기서 추대되는 후보가 보수진영의 유일한 후보로 야권 후보와 맞서는 결승전을 치르게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는 야권이 민주당 경선에 이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통합진보당 후보를 끌어들여 3자간 야권 단일 후보를 배출하는 방식에 최대한 근접하게 된다.

이 같은 단계적인 여권 후보 추대 시나리오가 적용되면 적어도 지금 경선 룰대로 치러지는 맥 빠진 '무흥행 경선'만큼은 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탈당이 마지막 변수

그러나 변수는 있다. 의원이 순순히 정 전 대표와 김 지사와의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응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 의원은 최근 친박계를 겨냥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고리로 탈당 가능성을 자주 시사한다. 물론 경선 룰 변경을 위한 정치적 압박 차원일 수도 있지만 당 내부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를 해석하기도 한다.

어차피 박 전 위원장 체제에서 이 의원의 입지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당내에서 '눈치 밥 먹는 신세'에 머무는 것보다 링 밖에서 박 전 위원장에 대한 공격모드로 전환하는 게 정치적으로 활보하는 데에는 더 편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집권할 경우 이 의원의 활동반경은 더욱 줄어들기 때문에 차제에 박 전 위원장과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미리 당 밖으로 나가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금은 잠잠해진 상태지만 만일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 요구가 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실제 이 대통령이 당과 결별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를 계기로 이 의원도 지지세력과 함께 당 밖에서 별도의 똬리를 틀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다. 비박진영이 나름대로 당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할 경우 이 의원은 당내 비주류 수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고, 비박 주자들의 연대를 이끄는 조율사 역할을 자임할 수도 있다.

비박 진영을 향해 철저히 무시전략으로 일관하는 박 전 위원장이 어떤 해법을 들고나올지 주목된다. 경선 흥행을 위해 적당히 달래면서 가던가, 지금의 강공모드를 유지하며 아예 선을 긋고 대선까지 마이웨이를 선언하던가 선택은 박 전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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