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분열, 유리한 대선구도, 당 친박체제 등 동력…’독’될 요소 넘어서야

지난달 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1차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기를 받아 흔들고 있다. 오대근기자
요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측 주변에선 '행복한 고민' 얘기가 자주 들린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 안팎 여건이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럴만도 한 것이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박 전 위원장이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의 복잡한 사정이 박 전 위원장의 선두 질주를 도와주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지난 4ㆍ11 총선 이후 박 전 위원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일보-한국리서치의 최근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도 박 전 위원장은 41.1%로 1위를 달렸다. 이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22.9%)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10.5%)과 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새누리당 주자 중엔 김문수 경기지사가 2.0%,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1.8%에 그쳤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2%), 김두관 경남지사(1.6%), 정동영 상임고문(1.4%)의 지지율도 미미했다. 양자대결 조사에서는 박 전 위원장(48.2%)이 아직 대선 출마가 불투명한 안 원장(45.2%)보다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을 뿐 다른 잠룡들과는 20% 포인트 이상 큰 격차로 앞섰다.

새누리당 사정 역시 '박근혜 체제'로 탈바꿈해 박 전 위원장의 최대 우군이 되고 있다. 19대 새누리당 당선자의 70% 이상이 친박계로 분류되면서 사실상 당내에서 '친박계와 친이계'라는 계파 구도가 사라졌다. 5ㆍ15 전당대회를 전후해 당 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을 친박계 의원들이 차지했고, 당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 멤버 9명 중 8명이 친박계 의원이다.

비박(非 박근혜) 3인방인 김문수 지사,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 등이 대선전에 뛰어들고 경선룰과 관련해 오픈프라이머리를 앞세워 불리한 지형을 바꿔보려고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일 국회 통합진보당 의정지원단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강기갑(가운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야권의 상황과 행보는 더 심각해 보인다. 박 전 위원장의 상승세를 꺽어놔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부 사정으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4ㆍ11 총선에서 연대의 힘을 보여줬던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진보당 부정선거 사태와 종북 논란으로 금이 간 상태이고 결별의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선 대선에서 진보당과의 연대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야권연대 붕괴가 자칫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공조'를 주장하는 측도 만만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이해찬 대표 체제로 출범한 것도 박 전 위원장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해찬 대표가 전략통이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따른다. 이 대표는 '버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강성 이미지에다 종북 논란에도 휘말려 있는 상태다.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투톱 체제는 올드(old)한 인상을 주어 당이나 대선 후보에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이해찬 대표-문재인 대선후보'라는 프레임은 친노(친 노무현) 색깔이 강해 지지층 결집 못지않게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가 경쟁하는 모양새도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문 고문과 김 지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할 경우 누가 되든 '노무현 사람'이란 부제는 피할 수 없고 이것이 12월 대선에서 긍정적 효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문 고문과 김 지사가 접전을 벌이는 승부가 되면 안철수 원장이 끼어들 여지는 좁아진다. 설령 야권 단일후보라는 무대가 마련되더라도 지지기반이 취약한 안 원장이 선뜻 무대에 오를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진다.

안철수 원장이 최근 야권에 취한 행보도 박 전 위원장에게 희망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안 원장은 5월 30일 부산대 강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문제에 대해 "진보정당은 기존 정당보다 민주적 절차를 중시해야 한다"며 "진보정당이 인권, 평화같은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데 이런 잣대가 북한에게만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동의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가해 진보당과 종북 논란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이는 민주당이 진보당과의 연대에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12월 대선을 앞두고 안 원장과의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안 원장이 대선에서 독자노선을 걷거나 만에 하나 새누리당과 손이라도 잡으면 대선은 박 전 원장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위원장에게 가장 강력한 맞상대인 안 원장이 야권과 거리를 두고 있는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장이 지난달 30일 부산대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이래저래 박 전 원장의 대선 독주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독주'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당내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요구에 대해 무시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오랜 기간 쌓아온 '원칙과 신뢰'의 긍정 이미지를 '독선과 오만'의 부정 이미지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비판이다. 또한 지지율 2~3%를 넘지 못하는 경쟁자들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불통'의 이미지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 전 위원장이 12월 대선까지 현재 페이스로 완주할지 여부는 스스로의 결단과 야권의 전략적인 행보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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