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0년도 넘었다. 책 '재즈 재즈'(황금가지)를 썼던 것이.

당시 '생활 속의 재즈'라는 제하로 책 속에 썼던 글에는 광고에 인용된 재즈를 쭉 모아 나름 의미를 부여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놀랄 정도로 TV 광고들이 앞다투어 재즈를 끌어 썼던 당시 정황을 해석해 본 글이었다. 작곡을 안 해도 되니 제작 단가가 싸게 먹힌다는 현실적 이점도 있었겠지만 굳이 왜 재즈였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을 발전시킨 글이었다. 사실 그 글은 앞서 주간한국에 일회성으로 게재됐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주간한국에 재즈에 대한 글을 수 차례 연재했으니 인연의 힘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로부터 너무나 더디게 배운다. 시간이 준 교훈이 실제 세계에서 이행되기를 보게 되기까지는 많은 인내가 필요할 공산이 크다. 특히 장기 변동을 요하는 문화적 사안에서는 더하다.

단언컨대 유감스럽게도 그 같은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팻 메스니가, 허비 핸콕이 내한 공연을 치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재즈 지수(指數)가 향상되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자본을 효과적으로 창출하는 문화 상품으로서 재즈의 효용성이 높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물론 자본에 편입돼 인기와 재화를 동시에 즐기는 재즈 음악인들은 언제나 있다. 있었고, 있을 것이다. 대중 소비재이기를 거부하는 한 재즈는 여전히 오독(誤讀)되고 있다. 기획자가 껄끄러워 하는, 이른바 상품성 없는 문화 현상이어서 그럴 공산이 크다. 또 각종 매체들의 시각에서 뭔가 버성김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준이다. 세계가 먼저 알아주고 그 결과물에 대해 전적인 승인을 보내는데, 정작 이 곳에서는 음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변별력이 심각하게 마모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스스로의 기준선을 허물어뜨리지 않으려는 강태환씨의 결단이 가장 큰 현실적 이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예술적 결단의 문제다. 하이데거가 자신의 예술철학론을 집성한 '숲길'에서 언급된 바, 주체의 문제다. 강씨는 현재의 한국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포기되기도 하고, 또 오인되기도 하고, 다시금 물어지기도 하는 그 곳"으로서 엄존한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 아니 결단코 "그 곳"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거의 영원한 딜레마다.

그렇다면 강씨의 낙원은 어디 있을까? 아래의 글은 거기에 대해 묻고, 답을 듣고, 강씨를 1인칭화 해서 강씨를 위해 쓴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는 음반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20여년전 발표한 솔로 앨범 'Seven Breath'를 단연 맨 앞에 둔다. 천지가 꽁꽁 얼어붙던 12월 양수리 두물워크숍에 가서 녹음 한 것인데, 나로서는 거기에 90점은 주고 싶다. 너무 추워 바닥에 이불 까는 것도 모자라 무릎에 이불을 덮어야 했던 상황에 강행된 녹음이다. 나는 원래 녹음은 길게 하지 않지만, 가능하면 원 테이크로 끝낸다는 원칙이 그토록 쓸모 있을 줄 몰랐다.

경제적으로 쫓기던 박재천이 다그치듯 제안했고, 그도 모자라 사비까지 털어서 이뤄진 녹음이었다. 때마침 공연이 없는 한산한 시기였다는 점도 한몫 했다. 당시 사정이 빠듯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기계 설비를 최소화시켜 자연스런 울림을 얻어내자는 것을 최대의 원칙으로 삼았다.

나는 단연 그 판이 최고다. 유럽까지 어떻게 소문이 퍼져 콜렉터들이 눈독 들이는 음반으로 자리잡았다. 유럽에서 어떻게 그 판을 알고 온 사람에게는 선물로 몇 장 줬다. 일본인 처를 둔 헤이그의 한 박물관 큐레이터 왈 "1990년대 초 독일의 재즈 페스티벌에서 당신 공연 보고 초청 결심하게 됐다"했는데 2008년 부르더라."

"이제야 아버지, 집으로 가나 보다."

그의 낡아빠진 패들리스 셀마 알토 색소폰보다 더 후줄구레한 케이스에 가족이 매직 팬으로 쓴 글씨다. 후미진 지하 연습실에서,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가 끔씩 치러지는 공연 뒷풀이장에서 항상 그를 따라다닌, 염원의 글이다.(사진)

"천국으로 가는 것 같어."

연주가 좋았을 때면 강씨는 동료에게 그 말을 던진다. 천국이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가 말하는 천국인지, 마일스 데이비스의 'Seven Steps To Heaven'의 천국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그가 천국을 말했을 때, 그것은 불교적 법열(法悅)의 경지에 근접하는 어떤 지경을 일컬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겠다.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 주간한국에 감사한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