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대표적 군의문사 사건인 1998년 김훈 중위 사망사건에 대해 타살로 입증되는 총기발사 실험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인을 자살로 결론내려 파문이 일고 있다. 국방부의 조처는 비단 김훈 중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군의문사에 대한 군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19일 "3월 22일 시행한 총기발사실험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기존의 자살 결론을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총기를 격발한 시험에서 모든 발사자의 오른손 손등에서 뇌관화약(바륨, 안티몬 등)이 검출됐지만,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의 검출 한계치 기준에 따르면 검출량이 낮아 "자살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권총을 쏜 사람 손에 뇌관화약이 나오면 발사자라고 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의 손에 뇌관화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으므로 "자살로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국방부와 권익위 간에 상반된 입장을 가져온 3월 22일 총기발사실험결과의 진실은 무엇인가?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경비소대(JSA) 인근 241GP(감시초소)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육사 52기, 당시 25세)의 죽음을 둘러싸고 국방부와 유족 측은 14년 간 '진실 다툼'을 해왔다. 국방부가 김 중위의 사인을 사망 당일부터 '자살'로 결론짓고 유지해온데 반해 유족 측은 다양한 입증자료를 통해 일관되게 '타살'을 주장했다. 국회(국방위원회)와 대법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최고 국가기관도 군 수사당국의 거듭된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 3월 22일 군에서 실시한 총기 실험 결과 분석자료.
지난해 말부터 국회 서종표 전 의원(민주통합당)과 국민권익위원회, 유족 측의 요구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벌여온 국방부 조사본부는 직접 '진실'을 밝히기 위해 총기실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김훈 중위 사인을 둘러싸고 최대 쟁점이던 '누가 권총을 발사했는가'를 과학적으로 가리기 위해서였다. 오른손잡이인 김훈 중위가 스스로 피스톨 권총(M9 베레타)을 격발했다면 그의 오른손에 뇌관화약 잔재물이 남아 있어야만 자살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총기 발사 실험은 3월 22일 서울 강서구 소재 특전사 공수여단 실내사격장에서 김훈 중위가 사망하던 당시 판문점 241GP의 제반 조건을 그대로 재현한 가운데 실시됐다. 실험은 4개 그룹으로 구분해 정상적인 권총 자살 자세(오른손 검지손가락 격발)를 취한 5명과 비정상적인 자세(오른손 엄지손가락 격발)로 행한 5명에게서 각각 격발 4시간 후 시료를 채취했고 정상자세, 비정상 자세로 실험한 각 1명에게서는 격발 후 즉시 시료를 채취했다. 또 김훈 중위 사망 초기 미군 군의관 등이 현장을 오고 간 주변 정황을 재현하기 위해 발사자가 4시간 동안 김 중위의 발견 당시와 유사한 자세로 대기하도록 했다. 각 실험자의 왼손 손등 및 손바닥, 오른손 손등 및 손바닥에서 채취한 시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졌다.

지난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회신한 감정서에 따르면 실험자의 격발 자세와 시료 채취시간에 관계없이 실험자 전원의 오른손 및 왼손 손등과 손바닥에서 뇌관화약 잔사인 납, 바륨 및 안티몬이 검출됐다.

그런데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또 3월 22일 실험결과에 의하면 그동안 김훈 중위 자살론자들이 법의학적 자살 근거로 내세웠던 "김훈 중위가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격발(비정상적인 자세)했기 때문에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논거도 무너지게 된다. 다시말해 김훈 중위는 스스로 M9 베레타 권총을 격발(자살)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면 국방부는 어떠한 근거로 '자살' 결론을 고수한 것일까. 국방부는 뇌관화약 잔재물의 한계치 기준을 높게 설정한 1985년 미 육군 범죄수사연구소(USACIL)의 규정을 적용해 12명 실험자의 뇌관화약 검출량이 한계치보다 낮게 나왔다며 "김 중위의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법의학자 등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총기 실험과 동떨어진 통계적 잣대로 본질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립대의 한 법의학 교수는 "총을 갖고 훈련하는 군이나 총기 사용이 통용되는 국가(사회)에서 검출 한계를 높여놓은 기준을 이번 실험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로 총기 전문가인 노여수 박사는 "USACIL을 적용한 총기 잔유물 분석 논문은 김훈중위 사건에 사용될 수 없다"며 "한국에서 김훈중위 상황을 고려해 테스트한 것이 가장 유사한 실험결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노 박사는 "논문의 많은 희생자 들은 9M베레타 피스톨이 아니라 라이플(rifle)을 사용하고, 그들이 어떻게 자살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 "경험있는 육군장교가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 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말했다. .

국과수가 실험자의 바륨과 안티몬 평균 검출량을 USACIL의 검출 한계 기준을 적용한 결과 12명의 사수 중 11명의 오른손 손등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됐다. 이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 손등에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인 결과로 국방부의 '한계치 논거'를 무색하게 한다. 아울러 종래의 실험 절차와 기준을 무시하고 가장 화약량이 많은 납(pb)을 제외시키고, 바륨,안티몬 검출기준량만 갖고 분석하는 것도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국방부가 자살 정황에 반하는 총기 실험에도 불구하고 '자살' 입장을 유지하는 또 다른 근거는 극도로 오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실험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재시험,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실험장소를 국방부가 지정했고, 오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시험 실시 수일 전부터 사격 훈련을 하지 않았고, 몇 차례 청소는 물론 사수의 손을 씻는 등 만전을 기한 국방부가 뒤늦게 "오염"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국과수가 권익위에 총기실험 분석결과(감정서)를 보낸 시점도 의구심을 받고 있다. 국과수는 총기실험(3월 22일) 후 한 달 이상이나 지나 감정서를 작성했고, 그로부터 또 한 달 후에야 권익위에 감정서를 보냈다. 통상적인 절차에 비해 오래 지체된 과정으로 일각에선 국방부가 기대한 실험결과가 나오지 않자 국과수와 분석을 놓고 조율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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