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득보다 실 더 많다" 시종일관 밀어붙이기
비박 3인방 저항 온도차 김문수 참여쪽 기울어
정몽준 "불참" 확고… 이재오 "탈당도 불사"
권역별 순회경선제 차선책으로 도입 가능성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등 지도부가 대선 후보 경선 룰을 현행대로 유지한 채 8월20일 전당 대회에서 원샷 방식으로 선출키로 결정했다. 비박(非朴) 진영 주자들이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주장하면서 최소한 경선 룰 논의를 위한 별도의 기구를 만들자는 제안을 아예 무시한 것이다.

당 지도부의 결정이라지만 이는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뜻이라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박 전 위원장이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 비박 3인방의 요구를 묵살하며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다.

친박계가 오픈프라이머리의 도입을 거부한 데다 논의의 장마저 열지 않도록 한데 대해 비박 진영은 상당히 불쾌한 모습이다. 박 전 위원장이 자신들을 경쟁 상대로 인정하지도 않은 채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식의 일방통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비박 3인방은 표면적으로는 모두 경선 불참 가능성을 시사하며 박 전 위원장 및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경선 룰의 최종 확정 마지노선인 7월9일까지 당헌ㆍ당규를 대폭 수정하자는 요구에서다. 만일 이대로 경선을 치를 경우 비박 주자들 없이 추대 형태의 경선이 치러지게 되기에 결과적으로 박 전 위원장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24일 새누리당사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문수만 참여 고민중

하지만 비박 3인방 사이에서도 속으로는 적잖은 온도차가 느껴져 주목된다. 먼저 이재오 의원이 가장 강경한 모습이다. 이 의원은 27일 한 측근 의원에게 "다 끝났네…"라는 말로 심경을 피력했다. 49박50일의 전국 민생 탐방이 끝나는 7월 초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지만 경선 참여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28일 "현 상태로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없이는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확고하지만 당 지도부의 마지막 결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은 경선 불참을 넘어서 탈당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도 2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당 지도부가 현행 경선룰에 따라 경선 일정을 확정한 데 대해 "이런 상황이라면 (경선) 참여가 어렵다"며 경선 불참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정 전 대표는 "비박 진영에서 요구하는 건 구체적인 경선 규칙을 제안했다기보다는 논의 기구를 만드는 게 순리에 맞다는 것인데도 논의기구 자체도 못 만들겠다는 발상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탈당 가능성에 대해선 "기분은 좋지 않지만 탈당은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 전 대표는 경선에 불참한 뒤 당내에 남아 비주류 수장 역을 자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비박 3인방 중 김문수 지사의 행보는 안개 속이다. 현행 룰 고수 결정이 나올 때만 해도 경선 불참 쪽으로 기우는 듯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지사 직을 유지한 채 대승적으로 경선에 참여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포스트 '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판단이 녹아 있는 듯하다.

정몽준 의원이 지난 28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위해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친박계를 위시한 당 지도부는 비박 진영의 반발과 상관 없이 현행 룰 고수 입장이 여전히 강경하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에서도 비박 진영 주자들 없이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나 안상수 전 인천시장, 김태호 의원 등 이른바 '리틀 비박 3인방'과 박 전 위원장이 함께 경선에 나가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는 마이너스 효과가 클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때문에 어떻게든 비박 3인방 중 1,2명을 경선에 끌어들이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최소한의 명분을 제시하며 비박 주자들을 설득해 후보 경선에 대한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추자는 의미에서다. 이에 따라 전국 순회경선을 5~6개 권역으로 나눠 실시하면서 선거인단 수를 지금보다 대폭 늘리는 방안 등이 절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 당 경선관리위원회(위원장 김수한)의 방침에 따르면 7월10일부터 3일간 후보자 등록을 받은 뒤 7월21일부터 8월19일까지를 선거운동기간으로 정해 12차례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하기로 돼 있다. 이어 8월19일 전국 동시 투표를 거쳐 8월20일 서울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경선 후보를 최종 선발한다는 내용이다.

"정당정치 원칙 훼손"

박 전 위원장은 오픈프라이머리 문제에 대해서는 도입이 옳지도 않고 실현 가능성도 없어서 논쟁을 벌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친박계 의원은 "오픈프라이머리는 정당정치 원칙을 훼손하는데다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의 동원ㆍ금권 선거 및 역선택 우려 등 득보다는 실만 많은 제도"라고 도입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더라도 당내 경선에서 비박 진영 주자들을 누르고 후보로 선출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박 전 위원장이 오픈프라이머리의 논의 조차 거부하는 것은 본선을 감안한 여러 정치적 이유가 들어 있다.

민생탐방 중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지난 24일 북한산 사모바위를 오르고 있다.
먼저 '예비 대선' 성격으로 치러지는 오픈프라이머리에 수많은 국민들이 참여한다면 이 제도가 갖고 있는 드라마틱한 이벤트성 요소 때문에 그간 국민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던 후발 주자들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여야가 공히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 같은 변수가 생기는 일을 막아야 할 상황이기에 박 전 위원장이 이 제도 도입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당밖의 여론조사에서 뒤져 총 합산 결과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트라우마'도 오픈프라이머리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한 요소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대화 조차 갖지 않음으로써 '사당화(私黨化)', '1인 독재정당'이란 지적을 받고 있는 점은 적잖이 뼈아프다. 더구나 이들이 경선에 불참할 경우 추대에 가까운 빈껍데기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그런데도 박 전 위원장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데에는 이들과 경선 룰까지 바꿔가며 경선을 치러봤자 12월 대선에서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들어있다.

비박 진영의 뜻대로 오픈프라이머리나 전국 순회 경선을 한다 해도 어차피 경선 초반전에 대세는 크게 기울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 경우 비박 주자들이 과연 끝까지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박 전 위원장의 손을 들어 줄 것이냐 하는 부분이 회의적이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경선 초반에 대세가 갈리면 비박 진영에서 조그만 이유라도 끄집어내 그걸 빌미로 후보단일화나 일부 후보 사퇴나 탈당 등의 일을 벌일 수도 있다"면서 "오히려 경선 전체의 모양새가 더 안 좋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다.

지금처럼 비박 진영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설령 이들의 요구를 수용한다 해도 막상 경선이 진행되면 또 다른 각도에서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하는 행태가 벌어질 것이란 이야기다. 한 인사는 "어차피 1인 정당이네, 독재네 하는 비박 진영 공세에 시달릴 것이라면 차라리 현행 룰대로 가는 게 박 전 위원장이 덜 욕먹는 길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지난 28일 오전 부산 시내 곳곳 건물과 버스정류장 등에 박 전 비대위원장을 풍자하는 캐리커처 포스터 200여장이 붙어 경찰이 내사중이다.
'리틀 3인방' 구색 맞추키

박 전 위원장의 마이웨이 선언에 대한 본선 득실 전망은 엇갈린다. 일단 이득이라고 보는 쪽은 어차피 비박 3인방이 본선에서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굳이 이들에게 예선에서부터 박 전 위원장에 대한 공격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오히려 강하게 나가면서 이른 시일 내 후보를 확정, 대선 체제로 전환하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 지게 돼 있던 4월 총선을 박 전 위원장이 나서 이겨놓은 데다 비박 주자들도 박 전 위원장의 도움으로 당선된 것이란 말하는 이도 있다. 이 때문에 비박 주자들의 주장이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란 격'이란 식의 여론도 적지 않으니 경선 룰 등에 대해 지금처럼 밀어붙여도 별반 손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 대신 정 전 대표나 이 의원은 힘들다 해도 김 지사를 경선에 참여시킨 뒤 '리틀 비박 3인방'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안상수 전 인천시장, 김태호 의원을 포함해 경선을 치르면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추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을 펴는 쪽은 아무래도 소수다. 다수는 박 전 위원장의 불통이나 독재 이미지가 강화되고 나아가서는 오만하게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최소한 대화하는 모양새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전 위원장이 타협하는 과정을 거쳤는 데도 비박 진영에서 무리하게 오픈프라이머리 등을 계속 고집하며 경선 불참을 주장한다면 그제서야 여론이 우호적으로 돌아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일방통행 식은 부정적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 밖에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민주통합당은 이미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놓고 당 차원의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박지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박 전 위원장을 향해 "민주당은 민주적인 경선을 위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데 박 전 위원장의 1인 사당화한 새누리당은 이에 대한 논의의 싹도 아예 잘라버렸다"고 공격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에게는 야당에게 좋은 공격 소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부담이다.

실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대부분 오차범위 내 등 근소한 차이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일부 조사에서는 안 원장이 4월 총선 이후 처음으로 박 전 위원장과의 양자대결에서 이기는 것으로 분석된 결과도 있다. 리얼미터의 21~22일 조사에서는 47.1%의 지지율을 나타낸 박 전위원장이 48.0%의 지지율을 보인 안 원장에게 약간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위원장으로서는 기분 나쁜 조짐인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장외의 안 원장에게 뒤쳐진 데에는 경선 룰을 놓고 비박 진영과 줄다리기를 벌이며 마이웨이를 고집한 탓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고 박 전 위원장에게 조언하는 목소리도 있다. 7월9일 이전에만 경선 룰 변경을 하며 되기 때문에 김 지사와 정 전 대표의 참여를 염두에 둔 최소한의 룰 변경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인제 의원을 누르며 국민적 흥행을 성공시켰던 2002년 민주당 경선처럼 새누리당도 최소한 몇 개 권역에 대한 순회 경선을 실시하면서 선거인단을 확대해야 비박 주자들이 경선에 참여하는 명분이 제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길이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독선적 이미지 등 부정적 요소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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