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공이메밀국수
어쩌면 매년 물어보는 것이 꼭 같은지 참 신기하다. 여름 휴가철이면 "강원도 가는데 어디 가서 밥 먹어야하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아는 대로 대답해주고 전화를 끊고 나면 "하기야 나도 길 가는 도중에 괜찮은 밥집을 못 찾아서 고생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바가지, 불친절, 터무니없는 음식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겨야 한다. 어차피 손님은 정신없이 몰려든다. 여름휴가 한철 장사하자고 시설을 늘일 수는 없다. 인원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생을 쓰면 어차피 접객이 소홀해진다. 바가지 상혼도 있지만 여름 성수기에는 현지의 생선이나 야채 등 재료 가격도 오른다. 이래저래 피차 피곤한 노릇이다.

강원도 가는 길 중간의 몇몇 음식점들을 소개한다. 미리 고백하지만, 숨은 맛집은 없다. 많이 알려진 집들 위주로 소개한다. 현지사람들이 추천하는 집들과도 다를 수 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인구가 2,000만명을 넘긴다. 홍천의 유명한 고기집의 경우, 아무리 만석이 되어도 현지 사람은 거의 없다. 어차피 대부분이 외지 관광객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현지인 소개로 보석 같은 맛집을 소개받는 경우도 있지만 평범한 집보다 더 못한 집을 소개받는 경우도 있다. 장고 끝의 악수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해 잘 버티나 싶었는데 이듬해 가면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기회와 비용은 반비례한다. 한번 갈 경우라면 안전이 최고다. 많이 알려진 집, 오래된 맛집 위주로 소개한다.

서울에서 강원도 길을 빠져나가면 요즘은 대부분 영동고속도로 아니면 서울-양평-홍천-속초를 잇는 새 길을 선택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는 '기와집순두부'가 있다. 양평 가는 새 길의 곁에 있는 오래된 집이다. 무던하게 변하지 않고 장사를 한다. 여러 명이면 순두부와 더불어 모두부를 주문하고 비지찌개를 선택해도 좋다. 가족이라면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겉절이 김치도 좋은데 맛이 단 편이다. 아침 식사를 대신해도 좋고 돌아오는 길에 한 끼를 해결해도 좋다.

기와집 순두부
서울을 미처 빠져나가기 전에 꼭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면 서울-미사리를 잇는 길의 끝부분, 하남대교를 타기 전 '디딤돌숨두부'를 권한다. '순두부'가 아니라 '숨두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황해도 식 두부'임을 의미한다.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뭉글뭉글 두부가 엉긴다. 마치 두부라는 새 생명체가 잉태되며 숨을 몰아쉬는 것 같다. 황해도 지방에서는 이렇게 만든 두부를 '숨두부'라고 한다. 내용물은 순두부와 같다. 현재 주인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황해도 숨두부'를 꾸준하게 내놓는 집이다.

올봄 100% 메밀막국수를 내놓는 집으로 횡성 깊은 산속의 '삼군리메밀촌'이 매스컴을 탔다. 하루 종일 수십 명 정도 찾던 집이 어느 순간부터 하루 800 여 명의 손님을 치르느라 노부부가 몸져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횡성은 휴가 길이라도 돌아가기 힘든 곳이다. 부근을 지나가는 경우는 꼭 한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100% 메밀면은 대단한 맛은 없다. 그 정성을 맛보라는 뜻이다.

강원도 인제의 '남북면옥'과 '서호면옥', 그리고 영동고속도로 속사IC 부근의 ''도 추천한다. '남북면옥'은 인제군 남북면에서 이름을 땄다. 시어머니-큰며느리-작은 며느리로 전승되면서 50년의 역사를 맞았다. 손님이 오면 반죽을 내리는 메밀막국수가 수준급이다. 물 막국수와 비빔막국수가 있다. 돼지고기 수육도 좋다. 다만 판매량이 많지 않아서 늦은 시간이면 주문이 불가능하다.

같은 인제의 '서호면옥'도 메밀면이 아주 좋다. 동치미도 수준급이고 메밀면의 부드러움도 대단하다. 툭툭 끊기는 식감이 아주 좋다. 최근 떠오른 집으로 식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시 돼지고기 수육도 권할 만하다.

''는 묘한 집이다. 메밀국수는 수준급이다. 손님 보는 앞에서 메밀면을 내린다. 그릇에 담아주는 것이 아니라 삶은 메밀면을 채반에 얹어서 내놓는다. 육수는 손님 취향대로 만들어 먹게 한다. 메밀국수는 원래 '공이'를 단위로 셈한다. 한 공이는 대략 4인분이다. 이 집은 '한 공이' '반 공이' 단위로 메밀국수를 내놓는다. 국수에 비하여 동치미는 별로다. 주인 할머니가 아예 "난 아무리 해도 동치미는 맛이 없어"라고 미리 고백(?)하니 뭐라 하기에도 어색하다.

남북면옥 막국수
여름철이면 오히려 산나물은 귀하다. 봄철 산에서 햇나물이 나오기 전이 차라리 산나물의 제철이다. 가을에 말린 나물들이 지천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묵나물은 거의 없고 햇산채는 한정적으로 생산된다. 공급은 일정한데 수요가 몰리면 결국 음식의 질이 떨어진다. 여름철 웬만한 산나물 식당들은 몸살을 한다. 중국산이 아니면 공급을 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오는 손님을 막을 수도 없다.

영동고속도로 하진부 IC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일식당'은 오래된 산채 전문 식당이다. 여름 휴가철에 가끔 소개를 하고 나서 불평을 듣는 경우가 있다. 나물이 귀하기 때문이다. 역시 산나물은 봄철 묵나물로 먹어야 양도 넉넉하고 산나물의 넉넉한 향기도 좋다. '부일식당'은 한때 채식전문식당으로도 유명했다. 서울올림픽 무렵 일본 TV에 "멸치도 쓰지 않는 채식전문식당"으로 소개되었다. 요즘은 꽁치도 한 토막 상에 오르고 멸치 정도는 사용한다. 된장찌개도 일품이고 나물 반찬은 계절 따라 편차는 있지만 역시 수준급이다. 오대산과 인근 점봉산 나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일식당 산채나물
삼군리메밀촌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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