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의 부인 이보라씨(왼쪽)가지난 2007년로스앤젤레스 윌셔프라자호텔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다는 이면계약서 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2007년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BBK사건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현재 충남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BBK의 전 대표이사가 8월 중에 BBK 관련 의혹을 폭로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씨가 BBK사건을 다시 꺼내든 것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 6월 김씨를 만난 한 지인에 따르면 김씨는 그동안 이명박(MB) 대통령이 가진 '힘'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BBK사건의 실체를 알리기가 두려웠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말에 이르러 '때'가 된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밝히려는 것은 주로 이 대통령과 동업을 하면서 겪은 일과 BBK 관련 각종 의혹이라고 한다.

김씨는 그동안 BBK사건을 정리ㆍ기록한 것을 책으로 내거나 재심자료, 또는 언론에 전달하는 형태로 세상에 알리겠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지인은 "씨는 BBK사건을 자세하게 정리해 놓은 상태로 7월 부인과 딸 면회 때문에 공개 시점이 다소 늦어졌다"고 말했다.

BBK사건이 주목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관련돼 있고,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18대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BBK사건은 재미동포 사업가 씨가 1999년 투자자문회사인 BBK를 설립하고 이듬해 이 대통령과 동업해 인터넷 증권사 LKe뱅크를 설립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김씨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았고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LKe 뱅크의 부회장을 맡았다.

김경준
2001년 BBK가 자본금 유용으로 등록이 취소되기 직전, 김씨는 BBK 투자금으로 옵셔널벤처스의 대표가 된 뒤 주가 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 대통령은 BBK의 등록이 취소되자 LKe 뱅크 대표를 사임했으나, 김씨는 2007년 대선 직전 주가조작에 동원돼 투자자에게 수백억원의 손해를 끼친 BBK의 실제 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의 매각 대금이 이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씨가 회장으로 있는 (주)다스에 투자돼 BBK로 흘러간 것과 관련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이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은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이명박 후보이며, BBK 게이트에 이 후보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었다.

씨가 이달에 폭로할 내용의 핵심 역시 BBK의 실제 소유주와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를 위해 BBK사건을 꼼꼼하게 기록했다는 게 지인의 전언이다.

"씨가 단단히 벼르고 있어요. 왠만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실을 밝힐 겁니다."

지인에 따르면 김씨는 수감 중 이 대통령의 선처를 기대하며 BBK사건에 관한 '비밀'을 숨겨왔는데 4년 9개월이 다가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에 분노하면서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특히 작년 10월 인권위원회에 미국 구치소에서 수감된 3년5개월의 기간을 형기에 포함시켜 달라고 진정했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영향을 주었다는 전언이다.

김씨가 BBK사건과 관련해 간직해온 비밀에 대해 김씨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유원일 전 국회의원은 "BBK가 이 대통령 소유임을 입증할 증거들로 돈이 오고 간 정황이 담긴 전표와 입출금 내역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 전 의원은 "씨가 건넨 자료를 보면 BBK사건은 김씨와 이 대통령이 '공범'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씨가 BBK사건을 기록한 내용과 자료에는 증거가 확실한 것과 보완을 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최종 공개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공개할 BBK 사건의 파급력은 어느 정도일까. 김씨의 카드를 알고 있는 지인들은 이명박 정부를 위협할 수 있고 대선판에도 영향을 줄 만큼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검찰과 청와대 일각에서는 지난 30일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특혜 논란 속에 가석방된 것이 김씨의 BBK 공세를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는 얘기가 들린다. 은 전 위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캠프에서 이명박 후보의 법률지원단장과 함께 클린정치위원회 BBK사건 대책팀장을 맡았다. 그만큼 이 대통령 쪽에서 김씨의 움직임에 신경쓰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일 김씨가 공개할 자료로 인해 BBK의 실제 소유주가 이 대통령이란 사실이 입증된다면 그 후폭풍은 가늠하기 어렵다. 임기 말 레임덕 현상마저 보이고 있는 MB 정부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김씨의 BBK사건 의혹 폭로는 대선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여당인 새누리당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세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아가 야권이 내세우는 '이명박근혜(이명박과 박근혜)' 공동 책임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면 박 비대위원장의 대선 행보는 더욱 힘들어진다.

새누리당은 8월 20일 대선후보를 확정한다. 김씨가 BBK사건 의혹을 폭로하기로 한 시점과 맞물린다. 김씨의 BBK 공세는 그 내용에 따라 파급효가 달라지겠지만 새누리당에 불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5년만에 다시 등장하는 BBK사건으로 정가의 8월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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