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왼쪽) 대통령과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간에 갈등이 고조되면서 대선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4ㆍ11 총선 공천헌금 수수 의혹이 미처 규명되기도 전에 현영희 의원의 '차명 후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누리당은 '멘붕(멘탈붕괴)' 상태에 직면한 모양새다.

더구나 '공천헌금' 문제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이 친박(친박근혜) 핵심이자 공천위원이고, 비례대표인 현영희 의원 또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외곽조직인 '포럼부산비전'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 박 전 위원장으로서는 대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다.

게다가 친박 의원 중 지난 총선 과정에서 공천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영남권과 수도권의 모 중진을 둘러싼 금품 관련 소문이 끊이질 않아 박 전 위원장의 대선가도에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

박 전 위원장 대선캠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캠프 일각에선 공천헌금 파문으로 불안하게 이어온 '박근혜 대세론'이 꺽였고, 대선 본선도 불안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전 위원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자구도에서 안 원장의 지지율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 캠프의 한 중진은 "이번 사태로 우려하는 것은 '중도층'이 (박 전 위원장에 대한)지지를 유보하거나 철회하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면서 "지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중도층 때문인데 공천헌금 문제로 중도층이 돌아서면 대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공천헌금 파문'의 당사자인 새누리당 현기환(왼쪽)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비례대표)
비상사태에 직면한 박 전 위원장 캠프는 위기를 돌파할 해법을 모색하는 한편, 수세적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는 전기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박 전 위원장 측과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는 '공천헌금 파문'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는 공천헌금 문제 이면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흔적이 뚜렷하다는 시각에서다. 다시말해 대선을 앞두고 박 전 위원장을 흠집 내기 위해 불리한 내용을 교묘하게 흘리고 부풀리면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 측은 '보이지 않는 손'의 주체로 청와대(BH)를 지목하고 있다. 법조 출신의 한 중진 의원은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여당의 대선후보가 사실상 결정된 상황에서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을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검찰이 자체적으로, 그것도 충분한 검토 없이 세상에 알리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반문했다. 그는 "그런 기관을 핸들링할 수 있는 청와대의 개입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사정기관에 근무한 전력이 있는 측근 인사도 "대선 국면에서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에게 불리한 조치를 검찰이나 선관위 같은 기관이 독자적으로 수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청와대 배후설'에 무게를 실었다.

박 전 위원장 측과 정치 전문가들이 '공천헌금 파문'의 배후로 청와대를 의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무엇보다 현기환ㆍ현영희 전ㆍ현직 의원 간에 돈 거래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과정이 미심쩍다는 것이다.

이번 '공천헌금 파문'의 단초는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영희 의원의 전 비서인 정동근씨가 5월 중순 공천헌금 비리를 선관위에 신고한 게 발단이 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제보를 받고 2개월 동안 내용을 검토한 후 7월 30일 검찰로 넘겼다"고 말했다.

검찰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대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우선 청와대 사정 부서에 구두로 알렸고, 다음날 자세한 보고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대 사안은 2일 A 중앙일간지를 통해 1면에 비중있게 다뤄졌다. 선관위에서 검찰을 거쳐 청와대에 보고된 내용이 고작 하룻만에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와 관련 선관위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검찰에 고발하고 보안을 유지했다가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가면 함께 보도하려고 했다"면서 언론 보도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검찰도 "고발장 내용은 피의사실 공표가 되기 때문에 외부에 절대 공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A 중앙지에 중대 사안이 전달된 통로는 청와대라는 결론에 이른다. 선관위 관계자도 "청와대 모처에서 새어나가서 A 중앙지 쪽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된 것 중 일부 사안은 조사가 더 필요한 상황인데 공개되면서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대선정국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을 신속하게(?)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여당인 새누리당에 타격을 주고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악재가 되는 내용임에도 말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음모론'이 회자되는가 하면, 청와대의 '의도(저의)'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저런 주장과 소문을 종합하면 청와대가 궁극적으로 박 전 위원장을 겨냥했다는 결론에 근접한다.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사안의 특성상 대선 국면임을 감안할 때 청와대라면 법집행이라 하더라도 속도를 늦추거나 공개 수위를 조절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그 반대로 나아갔다"면서 "저의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천헌금 비리가 언론에 보도된 날 선관위가 곧바로 우리당 전현직 의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차명 후원금 문제까지 공표한 것은 아무리 고유 업무라고 해도 지나친 처사"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박 전 위원장 측과 대선 캠프 관계자들은 청와대의 '의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 그 의도가 정부기관을 통해 집행되도록 한 '배후의 힘'을 주목한다. 다시말해 공천헌금 파문을 가져온 '보이지 않는 손'의 실제 '몸통'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박 전 위원장 측은 청와대의 '의도'가 궁극적으로 박 전 위원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몸통'을 이명박(MB) 대통령으로 판단한다. 대선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을 상대할만한 힘을 갖춘 이가 이 대통령 뿐이고, 박 전 위원장의 거취에 가장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대 역시 이 대통령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럴 경우 이 대통령이 '공천헌금'이라는 무기로 이 시기에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한 배경이 궁금해진다. 박 전 위원장 측과 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민심의 향배인 '여론'과 MB정부와의 차별화를 놓고 시각차가 컸던 것으로 귀결된다.

양측 간에 불협화음이 커진 직접적인 계기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거취 문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의원이 여론의 바로미터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 측은 그에 대한 비리 혐의를 철저하게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데 반해 이 대통령은 선처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이상득 전 의원 문제는 대선 동력인 '여론'과 MB정부와 차별되는 박 전 위원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금석인데 이 대통령은 '친형'이란 부분에 얽매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 의원과 관련해선 박 전 위원장 쪽에도 많은 제보가 들어왔는데 검찰은 수사에 소극적이었고, 이 전 의원의 혐의에 따른 구속은 사실상 미미한 처벌이어서 면죄부를 준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측근 인사는 "이 전 의원을 구속하고도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온정적인 처벌 때문"이라며 "그래서 우리 쪽에서 법대로 이 전 의원에 대한 가중 처벌과 문제가 되는 돈의 환수를 요구했는데 MB 쪽에서 크게 역정을 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고 전했다.

반면 MB의 한 측근 인사는 "박 전 위원장 쪽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은 불쾌해 하고 있다"면서 "그런 박 전 위원장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MB 측 사람들은 박 전 위원장이 집권할 경우 MB의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면서"대선 과정에서 박 전 위원장을 지원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박 전 위원장 측은 '공천헌금' 문제를 계기로 MB 측이 대선 과정에서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는 것을 넘어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여기에 선관위가 박 전 위원장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차명 후원금'을 거론하고, 검찰이 몇몇 친박 중진 의원에 대한 혐의를 잡고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악영향을 주었다.

공천헌금 파문으로 김문수, 임태희, 김태호 등 비박(非朴) 3인이 경선 일정을 보이콧할 때 이를 주도한 인물이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알려진 것도 박 전 위원장 측의 MB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고 한다.

또한 친이(친이명박)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최근 여야를 넘나들며 '분권형 개헌'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력하는 것도 박 전 위원장이 집권할 경우 대통령의 힘을 빼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져 박 전 위원장 측을 자극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래저래 '현재권력'인 이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박 전 위원장은 12월 대선까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흔히 정치권에서는 '현재권력'이 대통령을 만들 수는 없지만 '미래권력'을 막을 수는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위원 장 간에 파열음이 계속될 경우 그만큼 박 전 위원장의 대선가도는 힘들어지고 대선정국 역시 요동칠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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