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조사관이 의문사 민원이 제기된 사건의 조사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의 희생자인 고(故) 에 대해 순직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김영란, 권익위)는 7일 지난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초소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당시 25세)에 대해 순직으로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김 중위는 1998년 2월 24일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으며 군의 최초 현장 감식 두 시간 전에 이미 자살 보고가 이뤄지는 등 부실한 초동 수사로 논란이 돼왔다.

이후 유족 측은 "군이 타살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사건 현장 시설을 훼손하고, 고인의 손목시계 파손 등을 간과했으며, 사건 현장과 사체의 사고 당시 상태를 보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국방부는 육군이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합동으로 진행한 1차 수사(1998.2.24~1998.4.29)는 물론, 육군본부 검찰부의 2차 수사(1998. 6. 1~1998. 11. 29), 국방부장관의 지시로 설치된 특별합동조사단의 3차 수사(1998. 12. 9~1999. 4. 14.)에 이르기까지 가 자신의 권총을 이용해여 자살한 것으로 일관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국방부와는 달리 국회(국방위원회), 대법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 최고 국가기관은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김훈 중위
1999년 국회 국방위원회에 설치되었던 '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는 그해 5월 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가 타살됐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정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도 2006년 12월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3년간 사건을 조사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지난해 9월 권익위에 사건 재조사후 순직 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권익위는 총기 격발실험 등 쟁점 사안들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같이 "수사 초기 가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런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현재로서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규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결국 초동수사 과실로 의 자‧타살 규명이 불가능해진 경우 그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징병제 국가에서 군복무 중인 자의 생명권이 침해됐을 때 국가가 원인을 밝히고 위로ㆍ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익위 관계자는 "부적절한 초동수사로 사망원인 규명이 불가능해진 것은 적법절차를 위반한 결과"라면서 "는 JSA 소대장으로 초소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임무수행 중 사망했으므로 공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해 순직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권익위가 에 대해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 한데는 군과 유족 측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과학적인 논거와 유족 측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게 바탕이 됐다.

권익위는 " 사망에 관한 각 급 법원 판결문, 각 기관의 수사·조사기록,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제출한 이 사망 사고관련 재확인 결과보고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면서 " 쟁점사항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벙커 내 격투 및 반항흔적' '사망당시 사격자세 및 혈흔' '사망자 화약흔적 검출(전투복, 손)' '발사거리(접사, 근접사)' 등에 대해 순직 권고안의 내용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벙커 내 격투 및 반항흔적'과 관련, 크레모아 스위치 박스 훼손과 고인의 손목시계 파손 등을 이유로 국방부가 격투흔이나 방어흔이 아니라고 확정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망 당시 사격자세 및 혈흔'에 관해서는 지난 3월 22일 제1공수 특전여단 실내사격장에서 실시한 발사실험 결과 발사자의 왼손 바닥 뿐 아니라 '왼손 손등'에서 다량의 뇌관화약이 검출되었지만 는 왼손 손등에서는 뇌관화약이 전혀 검출되지 아니한 점 등을 근거로 국방부의 '자살' 추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사망자 화약흔적 검출(전투복, 손)' 과 관련해 권익위는 지난 3월 22일 총기 실험결과 발사자 전원의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된 데 반해 김 중위는 오른손에 뇌관화약이 발견되지 않은 것에 비춰 국방부의 '자살'결론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발사거리(접사, 근접사)'와 관련, 국방부는 근접사(1㎝~3㎝)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는 자ㆍ타살 시 모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 하였다. 그러나 권익위는 M9 베레타 권총의 경우, 그 크기(21.7cm)와 무게(1.145kg)가 다른 권총에 비하여 비교적 큰 총으로, 이를 이용해 자살하려는 자가 일정거리를 이격해 사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렇듯 권익위는 사망과 관련, 전반적으로 '자살'이 아닌 논거들에 무게를 두었지만 '순직'인정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둔 인상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지난 7월 1일 공무와 관련한 자살자에 대해서도 순직 인정의 길이 열린 후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욱 높아지고 있고 이번 조사과정 중에서도 진실규명을 위해 국방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노력,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권익위 권고대로 '진상규명 불능'인 의 사망도 순직으로 인정된다면 자유민주주의 징병제 국가를 유지하고 군 의무복무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익위의 에 대한 순직 권고를 국방부가 받아들인다면 김 중위와 유사한 경우에 처한 사망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9년 12월 활동종료) 조사결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받은 사건은 현재 총 48건이다. 이 중 사건처럼 영내 사망인데도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이번 권익위의 권고가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권익위의 이번 군의문사와 관련한 획기적인 조치는 권익위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위상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국방부가 의 순직 권고를 수용할 경우 군의 이미지 쇄신과 더불어'군복무'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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