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근 9조원대의 금융비리로 구속기소된 (62) 전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의 비자금으로 보이는 수상한 자금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이 해외로 빼돌린 돈으로 추정되는 자금이 해외 모처에 보관돼 있으며 박 전 회장의 측근들은 이 돈을 세탁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돈이 국내를 빠져나간 경로 등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직전 박 전 회장이 해외로 빼돌린 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파악한 이 돈의 정체를 살펴보면 이렇다.

비자금 연루 의심 인사들

박 전 회장, 김양 전 부회장 등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들에게 지난 2월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염기창 부장판사)는 지난 2월 21일 9조원대의 금융비리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부산저축은행그룹 (62) 회장에게 징역 7년, 김양(59) 부회장에게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박연호
재판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은 장기간 대주주와 경영진의 위법한 경영을 통해 결국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됐다"며 "출자자 대출, 분식 회계, 업무상 배임 혐의 등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김 전 부회장에 대해 "부산저축은행 그룹 내부를 여신심사를 사실상 부실화시킨 점이 가장 큰 잘못"이라며 "은행의 직접시행사업 영위라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방만한 경영을 통해 피해를 확대시켰음에도 그 책임을 외부요인에 돌리고 있는 점을 볼 때 죄질이 무겁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반면 박 전 회장에게는 "가시적인 성과에 눈이 어두워 김 부회장의 잘못된 선택을 묵인하며 그 대가로 이익을 챙겼다"며 "다만 각종 부실에 적극 관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정ㆍ관계 로비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강성우(60) 전 감사에게는 징역 6년을, 부산저축은행의 부실을 감추기 위해 불법대출을 해준 혐의를 받은 김민영(66) 전 부산2저축은행장과 오지열(59) 전 중앙부산저축은행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부산저축은행그룹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불법대출 6조 315억원(자기대출 4조 5,942억원, 부당대출 1조 2,282억원, 사기적 부정거래 2,091억원), 분식회계 3조 353원, 위법배당 112억원 등 총 9조 780억원에 달하는 금융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박 전 회장 등 모두 76명을 기소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천문학적 규모의 대출이 대부분 부당대출이라는 점이다. 이 부당대출금 가운데 상당부분은 자기대출 형태로 은행금고에서 빠져나갔다. 이에 검찰은 대출을 빙자해 은행돈을 이들이 횡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억원도 아닌 수조원대의 막대한 돈이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그 측근이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직전 그리고 박 전 회장 구속을 전후한 시점에 빼돌린 돈의 일부인 1조~2조원 정도를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핵심실세의 도움 있었나

이 같은 추측의 근거는 검찰의 추적에 의해 해외에서 발견된 거액의 자금이다.

저축은행 불법대출 및 특혜인출 의혹을 수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김홍일 검사장)는 지난해 4월경부터 부산저축은행그룹이 해외 부동산 시행사업에 5,000억원대 불법대출을 하면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다.

당시 검찰은 해외대출이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자체 설립한 10개의 위장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대부분 캄보디아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집중됐음에도 금융당국이 이를 적발하지 못한 것과 관련, 금융감독기관 담당자와의 유착관계나 로비 등 비리가 있었는지도 조사했다.

검찰이 파악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해외사업 투자액은 총 5,230억원으로 이 중 95%인 4,965억원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형태로 캄보디아의 신도시·공항·고속도로 개발사업에 투자됐으나 현재 대부분의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에 추진되는 총 20억달러 규모의 신도시 조성사업인 '캄코시티' 건설을 주도하면서, 법정 투자한도를 피하기 위해 1999년부터 설립한 자본금 1,000만원 규모의 위장 SPC를 통해 수백억원씩 투자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2007년 캄보디아 현지에 '캄코은행'까지 설립해 운영해왔으며 지분 19%를 보유하고 있다.

위장 SPC 중 하나인 C사는 2004년 9월 설립돼 작년 말까지 1,186억원의 PF 대출이 이뤄졌으나 자금난 등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또 F사는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던 작년 4월 캄보디아 공항건설 사업을 위해 설립돼 425억원을 대출받았으나 부지도 매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주주들은 이외에 L사에 765억 원, M사에 216억 원, C사에 817억 원을 각각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돈의 대부분이 다시 L사로 모아졌다가 캄보디아 현지법인인 W사와 또 다른 L사로 나가는 등 복잡한 경로를 거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로 일부 자금을 빼돌리거나 대규모 부동산을 샀다가 되파는 방법으로 자금세탁을 거쳤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통상 저축은행의 PF 대출이 짧은 기간의 '브리지론'형태로 이뤄지는 반면 부산저축은행의 해외사업 PF 대출은 기간이 비상식적으로 길어 불법대출 정황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음에도 금융감독원 등이 이를 적발하지 못한 점을 수상히 여기고 있다.

박 전 회장의 자금과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는 배후세력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자금의 증발 과정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검은돈 빼낸 인물의 정체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박 전 회장이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시 직전 5억 달러를 은밀히 마련한 정황이 파악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이 급하게 마련한 5억 달러를 추적한 결과 뜻밖의 첩보를 입수했다. 박 전 회장이 이 돈을 필리핀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최근 필리핀에서 정체불명의 컨테이너가 발견됐다. 이 컨테이너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액의 현찰이라고 한다. 이 컨테이너는 필리핀 정부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 정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필리핀 정부는 출처가 불분명한 블랙머니를 자국에 둘 수 없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비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조원에 가까운 돈을 해외로 빼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검찰은 이 첩보를 접하고 문제의 컨테이너 박스가 어떻게 해외로 빠져나갔는지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이 컨테이너가 필리핀 주제 한국 대사관 직원의 이삿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문제의 대사관 직원은 A씨로 파악되고 있다. 이 직원이 박 전 회장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직원은 이 컨테이너의 돈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 컨테이너를 관리하고 있는 인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 직원은 이 돈을 필리핀 은행에 예치하기 위해 예금신청을 했으나 필리핀 은행은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라며 예금신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직원은 이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미국과 홍콩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 한국계 금융인 K씨에 자금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K씨는 필리핀으로 직접 날아가 문제의 자금을 확인했으나 자금관리 부탁은 거절했다는 것이다. 자금의 주인이 분명치 않아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검찰 주변에서는 A씨가 실질적인 자금 관리인인 것을 두고 "핵심실세가 배후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회장 비자금에는 여권뿐 아니라 야권도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박 전 회장의 해외 자금에 대해 여야 모두 함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측은 문제의 컨테이너에 대해 "황당한 소리"라며 일축했다. 대사관 측은 "필리핀은 한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빨리 도는 곳이다. 그런 컨테이너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그런 문제에 대사관 직원이 연루돼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