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LG 트윈타워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중소상인들의 생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상생은 뒷전, 무차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대기업들 때문이다.

여론의 비판과 중소상인들의 호소, 관련 부처의 계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탄탄한 자본력과 유통망 앞에 중소상인들은 속수무책이다.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골목골목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중소상인들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대기업은 대체 어딜까. <주간한국>은 중소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나쁜 대기업'들을 차례로 짚어본다.

그룹 지원사격에 급성장

LG그룹이 '생계형 서비스업' 진출 비중 높은 대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유통서비스 적합업종 추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LG그룹은 모두 63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생계형 서비스 업종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생계형 서비스업이란 도ㆍ소매업, 숙박ㆍ음식점업, 수리 및 기타 개인서비스업과 같이 진입 장벽이 낮아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영위하는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종을 말한다.

LG그룹의 경우 MRO(소모성자재 구매대행) 업체인 서브원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서브원은 지난 2002년 GS리테일(구 LG유통)에서 분할ㆍ신설된 회사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사무용품 등 소모성 자재 공급하는 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서브원은 MRO업계의 명실상부한 1위 업체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LG그룹 내에서도 최고의'알짜회사'로 통할 정도다. 이는 그룹 차원의 지원사격을 통해 이뤄낸 성과다.

실제, 서브원은 매출액의 75%이상을 그룹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브원은 설립 첫해인 2002년 2,54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고, 이후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 끝에 서브원은 지난해 4조6,02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인 2010년 매출 3조8,477억원보다 19.6% 늘어난 규모다.

중소업자들엔 '재앙'

서브원은 지주회사인 ㈜LG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LG의 지분 48.59%를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다. 서브원은 매년 수백억대의 현금 배당을 했는데, 이 중 절반 가량이 오너가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 셈이다.

이처럼 LG 오너가는 MRO사업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룹의 구매 채널을 일원화해 그룹 차원의 비용을 절감한 건 덤이다. 그러나 LG그룹의 MRO사업은 소모성 자재를 생산ㆍ납품하는 중소영세 업체들에겐 재앙 그 자체다.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받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는 데다, 소모성자재 납품 중소영세 업체들이 대기업 MRO에 거래처를 계속 잠식당해 나가면서 지역 상권마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브원은 이런 현실에 눈을 돌린 모양새다. 2010년 한국산업용재협회와 한국베어링판매협회는 중소기업청에 서브원과 아이마켓코리아(삼성), 엔투비(포스코), 코리아이플랫폼(코오롱) 등을 대상으로 사업조정을 신청한 바 있다.

당시 아이마켓코리아와 엔투비, 코리아이플랫폼 등 3사는 '신규 영업 확장 자제'에 합의했다. 아이마켓코리아와 엔투비는 다른 대기업과의 신규거래를 아예 중단하기로 했고, 코리아이플랫폼은 당분간 거래는 계속하되 대기업 비중을 줄여나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서브원은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세부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정ㆍ재계에는 '동반성장'이 화두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공정위가 대기업의 MRO 사업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 현장조사까지 나선 상황이었다. 결국 서브원은 중소영역에 진출을 제한하기로 최종합의 하면서 '백기투항'을 했다. 이로서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의 MRO사업이 사회적 이슈로 비화되면서 대부분 기업들이 사업을 정리했다. 삼성은 당시 MRO 계열사이던 아이마켓코리아를, 한화는 네트워크 구축 및 컨설팅 계열사 한화S&C의 MRO사업을 각각 매각했다. SK그룹은 계열사 MRO코리아의 간판을 '행복나래'로 바꿔 달면서 사회적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유독 LG그룹은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당초 LG그룹은 "서브원의 매각 등 정리 절차를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LG서브원에 대한 그룹 내 내부거래 관련 조사 결과가 '이상 없음'으로 나오자, 기존의 정리 방침을 뒤집고 '계열사 유지'로 최종 가닥을 잡았다.

구 회장 대표직 물러나

당연히 서브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는 상황. 서브원이 업계 1위 업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를 의식한 듯 구 그룹 회장은 지난 4월 서브원의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 회장은 조준호 ㈜LG 대표이사 사장 등 여러 사람을 바꿔 가면서도 2004년부터 8년간 공동대표 이사를 맡아왔다.

LG그룹은 구 회장이 인재개발에 힘을 쏟기 위해 서브원 대표에서 물러나 LG경영개발원 대표를 맡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의 시선은 다르다. MRO사업과 관련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구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서브원의 경우 다른 대기업과 달리 오너일가 지분이 대부분이어서 정리가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라며 "구 회장이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