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이 산은 별다른 이름 없이 도봉산의 한 봉우리쯤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유로 사패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왕이 공을 세운 왕족이나 신하에게 땅이나 노비를 하사할 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를 사패(賜牌)라고 한다. 조선의 14대 왕인 선조(1552~1608)는 애지중지하던 여섯 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가자 사랑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무명의 이 산을 하사했으며, 그에 따라 사패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사패산은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인연이 얽힌 산이기도 하다. 1398년(태조 7년)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의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무학대사를 방문했던 것이다. 이태조는 정도전의 시기를 받아 1394년부터 이 산의 토굴에 몸을 숨기며 수도하던 무학대사를 찾아와 며칠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다이빙 즐길 수 있는 웅덩이도 즐비
사패산은 회룡골, 안골계곡, 원각사계곡 등 아름다운 골짜기를 셋이나 품고 있다. 그 가운데 사패산 북동쪽 자락을 적시는 안골을 찾아 막바지 무더위를 씻어보자. 길이 약 3km에 이르는 안골은 안골폭포를 비롯한 크고 작은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시원한 계류가 굽이쳐 흘러 피서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안골 초입은 다소 실망스러운 분위기다. 여러 음식점들이 물가 곳곳에 평상을 놓고 영업하는 등, 계곡을 점령하다시피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식당가를 지나 상류로 조금 더 오르면 자연미 넘치는 맑은 골짜기가 이어진다. 이름 없는 와폭 아래의 넓고 깊은 웅덩이로 풍덩 뛰어들며 다이빙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명상에 잠겨 무더위 씻기에 그만인 안골폭포
약 30분 후, 사패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성불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예전에 찾았을 때는 이곳에서 찻길이 끝나고 주차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불사 쪽으로 찻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잠시 후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마신다. 성불사는 바로 코앞이다.
우리나라에는 성불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이 많다. 그 가운데 가곡 '성불사의 밤'에 나오는 성불사는 황해도 정방산에 있는 신라 고찰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사패산 성불사는 대웅전과 종무소, 요사채로 이루어진 작은 절로 일주문도 없다. 사찰이라기보다는 암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아담한 산사다. 그러나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주변 분위기가 아름답고 아늑하다. 대웅전 뒤쪽의 우람한 암벽에 기대고 앉은 앙증맞은 불상도 눈길을 끈다. 성불사 위로도 안골계곡은 계속 이어지지만 별다른 경치는 없으므로 이쯤에서 발길을 되돌린다.
안골폭포는 웅장한 암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높이 10여 미터의 시원스러운 물줄기로 겨울철에는 꽁꽁 얼어붙은 빙벽을 타러 오는 클라이머들도 종종 있다. 흠이라면 폭포 아래의 웅덩이가 작고 얕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게 뭔 대수인가. 폭포 아래쪽 바위에 걸터앉아 있기만 해도 땀방울이 절로 씻겨 무더위는 저 멀리 쫓아 보내고 명상에 잠길 수 있으니…….
# 찾아가는 길
의정부 서부로-경민광장-호국로-호국로 1114번길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4호선 수유역에서 쌍문역-도봉산역-회룡역을 거쳐 가는 133번 버스를 타고 안골 입구에서 내린다. 이외에도 안골 입구로 가는 의정부 시내버스가 많다.
# 맛있는 집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