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2002년 5월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는 모습.
18대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광폭행보가 거침없다. 대상과 세대, 이념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행보에 따라 대선지형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박 후보의 다음 선택이 주목된다.

야권의 대선 일정상 당분간 박 후보의 독주가 불가피해 그의 대선행보는 더욱 도드라질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9월16일 결정되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출마할 경우 야권 후보 단일화(11월 추정)를 전제한다면 박 후보는 2개월 가량 대선무대에 홀로 서야 한다. 이 기간 박 후보가 관객(국민)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대선의 윤곽이 그려진다.

박 후보 측은 '새로운 변화'를 화두로 '대통합'과 '쇄신', '복지'에 방점을 둔 대선 전략을 전개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지난달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박 후보의 수락연설에 담겨 있다. '박근혜 수락연설'의 핵심 공약은 △국민대통합 △부패척결과 정치개혁 △제3의 변화, 국민행복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 등으로 요약된다. 박 후보의 최근 광폭행보는 수락연설에서 밝힌 대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국민대통합'의 경우 박 후보는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박 후보는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다음날 국립서울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고, 동교동으로 이희호 여사를 찾아가는 등 반대파인 진보 진영 지도자를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이 약속한 국민 대통합 행보를 이어갔다.

또한 반값등록금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고 20대 문화의 상징인 홍대 일대를 거니는 등 2030세대와의 스킨십을 강화하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전태일재단을 찾는 등 박 후보에게 취약한 계층이나 반대 진영까지 다가가는 대통합 행보에 속도를 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8일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를 방문, 헌화를 하려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오대근기자
'부패척결과 정치개혁' 에 대해 박 후보는 "부패와 비리에 어느 누가 연루되어 있다고 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역없는 정치부패의 척결을 강조했다. 박 후보는 이를 수행할 기구로 '정치쇄신특별기구' 구성도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달 27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안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박 후보의 가족도 당연히 감독 대상이고, 박 후보 측근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건의, 개선하도록 할 것"이라며 부패ㆍ비리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안 위원장은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시절 이른바 '한나라당 차떼기 수사'를 지휘했던 인물로, 노무현 정권에서 활약했던 그를 영입한 것은 박 후보의 국민 대통합 의지가 반영된 측면이기도 하다.

'제3의 변화, 국민행복'은 박 후보가 일찍부터 주창해온 대선 공약이다. 박 후보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다"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5000만 국민행복 플랜'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김종인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국민행복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구체화됐다. 김 위원장은 1987년 개헌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포함시킨 인물로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박 후보가 마지막으로 제시했던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은 의제의 특성상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 측과 대선 캠프에서는 이 항목을 대선 승리의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 앞의 다른 공약들이 박 후보의 '변화'와 당의 '쇄신'을 통한 이미지 개선 효과를 가져오는데 반해 대북 정책은 국민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실질적 효과를 가져와 대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를 방문,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손용석기자
박 후보 캠프의 이주영 대선기획단장은 "대선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복지'는 우리당이 선점해왔는데 '북한' 부분은 야당에 밀리고 손해보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번엔 전향적인 전략과 정책으로 '대통합'과 남북이 '윈(win)-윈(win)' 하는 방향으로 대선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 대선 캠프의 한 측근은 "'국민 대통합' 이라는 대선 화두의 마지막 종착지는 북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가 지지율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안철수 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후보와 차별화하고 경쟁력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분야가 '북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가 일찍이 퍼스트레이디로서 국정경험이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만난 전력 등은 박 후보만의 강점이라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박 후보는 북한에 대해 '원칙'과 '유연성'을 갖고 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야권 후보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부분이 '북한'이라는 것도 넌지시 내비쳤다.

박 후보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하거나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을 위한 새로운 틀을 짜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의 도발과 핵 위협, 영토 갈등과 동북아 질서의 재편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고 전제한 뒤 "이런 위기의 시대에는 준비된 지도자가 필요하고, 불안의 시대에는 안정된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우회적으로 이 부분이 취약한 야권 후보와 안철수 원장을 겨냥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박 후보는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국민을 위협하고 목숨을 빼앗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면서도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대화의 통로를 열어서 국면을 타계하기위해 여러가지로 북한과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임기 내내 북한과 경색국면을 이어온 이명박 정부와는 차별화된 부분으로 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후보 대선 캠프의 한 정책통은 '대통합'과 관련, 박 후보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복지'의 대상을 북한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남북이 '윈-윈'하는 방식의 복지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생필품과 농자재를 북한에 건네고 대신 그곳의 풍부한 자원과 농수산물을 들여오는 단계부터 남북접경지대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조성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 등 남북이 경협을 통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오랜 무역으로 북한 내부를 잘 아는 소식통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이번 대선에 굉장히 관심이 크다"면서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려는 의지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장성택(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행정부장)이 중심이 된 북한은 파워그룹이 군에서 당으로 변하고 있고 '경제'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남한과의 경협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 경제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주체가 '보수'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박 후보의 당선 여부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정치 전문가들은 박 후보 측이 대통합의 대상으로 북한까지 포함한다면 굳건한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반발을 살 수도 있지만 지지층 '확장성' 측면에서 얻는 것이 훨씬 클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대선의 3대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지역ㆍ이념ㆍ세대 요소 중에서 '북한'은 이념ㆍ세대에서 여당에게 크게 불리한데 박 후보가 '북한'을 새롭게 대하고 가시적 성과를 보인다면 중도 내지 야당 후보에게 갈 수 있는 표를 얻을 수 있어 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이번 대선에서 최대 변수는 '세대' 변수"라면서 "새누리당이 북한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 변화로 '북한'에서 파생하는 '진보성' '개혁성'을 어느정도 얻을 수 있다면 '이념'요소까지 득을 볼 수 있어 일부 보수층이 이탈하더라도 유권자의 확장성 면에서 플러스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측 인사의 북한에서의 언행을 밝히겠다"며 대선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관련, 북한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방북 과정과 북한에서의 행적을 잘 알고 있고, 박 후보가 2002년 5월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 면담한 내용도 남아있다면서 북한이 어느 쪽 입장을 취할 지는 북한의 전략과 당사자들의 태도에 달렸다는 말이 나온다. 북한이 여야 대선 후보 중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지도 관심 대상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