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수술 직후 퇴원 강요병원 전전하다 패혈증으로 한쪽 팔 절단

얼마 전 의료계가 정부의 포괄수가제에 반발해 진료거부 움직임을 보여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국민의 건강보다 집단 이익이 먼저냐"는 비난이, 일부에서는 "의료의 질이 떨어져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무엇보다 병원 혹은 의사들의 진료거부 행위는 앞으로 어떻게 막아야 할까?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다.

하지만 병원의 강제퇴원조치로 이모씨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씨는 지난 6월 9일경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팔을 절단하는 중상을 입었다. 경기 북부지역 국도에서 1,000CC짜리 바이크를 몰고 가다 마주오던 덤프트럭과 추돌해 왼쪽 팔을 크게 다친 것이다.

보호자 측은 "병원으로 실려가 상태를 확인해 보니 팔이 거의 절단된 상태였다"며 "응급으로 팔 접합수술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환자 측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심한 출혈과 수술을 위한 전신마취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 이씨에게 병원 측에서 퇴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거리로 내쫓긴 환자

이씨 측은 "사고 충격으로 몸 상태뿐 아니라 정신도 온전치 않은 환자에 퇴원하라고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환자의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하니까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어떻게 팔이 잘린 환자를 수술 다음날 퇴원 조치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병원은 신촌 부근에 위치한 ○○병원으로, 규모로 볼 때 응급 수술 이후 추가 처치가 충분한 병원이다. 강제로 퇴원당하다시피 한 이씨는 이후 네 군데의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보호자 측은 "큰 대학병원을 비롯해 중대형 병원 등 어디에서도 이씨를 받아주지 않아 병원을 찾아 전전해야만 했다"며 "한달여간 제대로 처지를 받지 못했다"고 흥분했다.

보호자 측에 따르면 다른 병원을 찾는 사이, 제대로 처치를 받지 못한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패혈증이 찾아왔다. 그로 인한 쇼크가 와 응급실을 찾기도 했지만, 입원을 거부당했다. 이유는 수술한 병원에서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칫하면 잘못된 수술이 잘못된 수술후 처치로 변질될까봐 환자 받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씨는 "여러 병원에서 모두 진료를 거부해 겨우 M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면서 "이미 수술부위에서 패혈증이 진행돼 심장에 무리가 왔다"고 비통해했다. M병원 측은 접합한 팔을 그 상태로 계속 둘 경우 심장쇼크로 사망할 수 있으니 접합한 팔을 절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씨는 결국 간신히 접합한 팔을 다시 절단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이씨는 "사고 당시 보호자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뿐인 중 환자를 길거리로 내쫓는 것은 반인륜적인 행위"라고 OO병원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OO병원 측은 환자를 위해 적당한 조치를 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병원 측은 "병원에서 환자를 내쫓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라며 "단지 수술 직후 환자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상급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측은 "당시 환자에게 한 수술은 응급수술로, 우리 병원의 여건상 제대로 된 추가 접합수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상급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상급병원의 문제이지 상급 병원으로 옮기도록 한 우리 병원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이씨 측은 "백번 양보하더라도 수술 다음날 바로 퇴원 조치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설이 부족하다면 적절한 상급병원을 찾아 관련 자료도 챙겨 보내는 게 도리"라고 반박했다.

이씨측은 나아가 "'일부 병원이 수술 후 환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퇴원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며 "수술비만 챙기고 나중에 책임은 지지 않으려 퇴원시킨 것이 아니면 하룻만에 퇴원시킬 리가 없다"고 분개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 건수 고작 47건
지난 4월 설립됐지만 지역별 신청 건수 저조… 조정 권한 미약 등 보완 시급

의료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지난 4월 설립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미약한 조정 권한과 홍보 부재로 지역별 신청 건수가 저조한 것으로 드러나 제도적·행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환자에게 의료사고와 관련한 상담을 제공하고 의료분쟁조정을 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지난 4월 설립 당시 환자의 의료 피해 조정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피신청인인 개인 또는 병원이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조정중재원이 이를 강제할 수 없어서다.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8항은 조정신청을 받은 피신청인이 14일 이내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원장이 이를 각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기관이 설립된 후 지금까지 신청된 조정 건수는 총 140건이고 이 중 참여의사를 묻고 있는 사례를 제외한 실제 조정 시작 건수는 33.6%인 47건에 불과하다고 중재원 관계자는 밝혔다.

관련 기관에 다르면 환자와 의료기관간에는 연 3만여 건의 분쟁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조정중재원이 설립된 지 5개월이 지났으나 조정 건수가 두자리수 정도라면 다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조정중재원측이 제 구실을 하려면 다른 조정기관들처럼 조정신청을 받은 피신청인이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참여를 강제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지환기자 jj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