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옥헌 원림의 연못을 에워싼 배롱나무 숲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9월 18일 명승 제58호로 승격된 명옥헌 원림은 소쇄원과 더불어 담양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민간 정원이다. 이 일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 오희도(1583~1623)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이었는데 그의 아들 오이정(1619∼1655)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가꾸었다.

명곡 오희도는 1602년(선조 35)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4년(광해군 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1620년,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인재를 찾기 위해 전국을 다니다가 이곳에 살고 있던 당대의 풍수대가인 오희도 선생을 세 번이나 찾아와 벼슬에 오를 것을 권했으나, 효성이 지극한 선생은 연로하신 노모 때문에 떠날 수 없다고 사양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재 명옥헌에는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인조로부터 삼고의 예를 받았다는 뜻이다.

노모가 타계한 후 오희도는 1623년(인조 1) 알성문과에 급제했으며 어전에서 임금의 말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출중한 능력을 보인 그는 곧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었으나 바로 그 해에 천연두에 걸려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연에 순응하는 아름다운 정원

오이정은 1639년(인조 17) 사마양과에 합격하고, 1640년 고두강 및 정한을 찾아 산사로 가서 함께 주역을 강론했다. 1650년(효종 1) 태학에 들어가 이듬해 정시(庭試)에 응했으나 낙방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력하다가 1652년 명옥헌을 세웠다.

우아한 기품을 뽐내는 후산리 은행나무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가운데에는 방을 놓고 사방에는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에 앉으면 눈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을 그윽하게 굽어볼 수 있다. 명옥헌(鳴玉軒)은 물소리가 구슬을 울리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명옥헌 옆으로 흐르는 아담한 계곡의 물을 받아 연못을 꾸몄는데 이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 조상들의 소담한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는 둥그런 섬이 놓여 한결 운치를 돋운다. 우리나라의 옛 연못은 모두 원형이 아니라 네모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세상이 네모지다고 여긴 선조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옥헌 원림의 한자를 정원의 일반적인 표현인 園林이 아니라 苑林이라고 쓰는 것에는 까닭이 있다. 바깥 공간과 구분 짓는 담장이 있으면 園林, 담장 없이 바깥과 소통하고 있으면 苑林이라고 하는데 명옥헌 원림에는 담장이 없는 것이다. 명옥헌 원림은 숲은 그대로 두고 주변 풍광에 어울리게 정자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을 경관 구성 재료의 일부로 빌려온, 이른바 차경(借景) 형태의 자연 순응적인 정원 양식인 것이다.

인조가 말고삐를 매어둔 노거수 은행나무

명옥헌 원림을 빛내는 것은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배롱나무 숲이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배롱나무는 비옥한 토양과 양지를 좋아하고 추위에 약해 중부지방에서는 겨울나기가 어렵다. 원래 이름은 백일홍나무였다가 배기롱나무로, 다시 배롱나무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배롱나무와 백일홍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처꽃과에 속하는 배롱나무와 국화과의 백일홍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명옥헌 방에서 내다본 풍경
배롱나무 꽃은 7월부터 9월까지 볼 수 있는데 일시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 피고진다. 원뿔처럼 꽃대의 아래에서 위로 꽃이 피어 올라가면서 피고지기를 반복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계속해서 피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롱나무는 별명이 다양하다. 우선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핀다고 해서 나무백일홍, 즉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 부른다. 줄기가 미끄러워 원숭이도 오르기 어렵다고 해서 '원숭이미끄럼나무'라고도 일컫는다. 나무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리며, 꽃이 완전히 질 때면 그 해 추수가 끝나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쌀밥나무'라고도 한다. 또한 자주색 장미꽃이라는 뜻으로 자줏빛 '자'(紫)에 장미 '미'(薇)를 써서 자미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명옥헌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전라남도기념물 제45호인 후산리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다. 수령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목으로 높이 31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7.8미터에 이르며 사방으로 가지가 10~14미터나 뻗어 우아한 기품을 뽐낸다.

이 나무는 일명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이라고도 한다. 즉위 전 인조가 오희도를 찾았을 때 이 은행나무 밑에 말고삐를 매어두었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선비의 집 마당까지 말을 타고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말을 매어둔 것은 존경의 표시로, 선비를 예우할 줄 아는 인조의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 찾아가는 길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는 계곡물
창평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고서 방면 60번 도로를 따르다가 명옥헌 원림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한다. 대중교통은 광주에서 고서 경유 창평 방면 버스를 타고 연동 정류장에서 내려 20분쯤 걷는다.

# 맛있는 집

명옥헌 인근의 창평은 장터국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옛날 오일장에서 먹던 전통 음식인 시장국밥을 그대로 재현해내어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맑고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창평 장터국밥은 돼지국밥, 선지국밥, 머리국밥, 따로국밥 등으로 나오는데 돼지 막창을 데쳐 만든 암뽕순대를 내는 집도 있다. 여러 집 가운데 창평시장원조국밥(061-383-4424)과 옛날황토방국밥(061-381-7159)이 유명하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삼고 현판
명옥헌 아래에 세워진 명곡오선생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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