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최종 선택지에 정치권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야권 지지층은 당연히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나 10년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따른 선거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도 안 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제3의 정당을 만들어 자체 후보가 된 뒤 단일화를 통해 합당하는 방식을 바라고 있다. 3자구도로 대선을 치렀다간 새누리당에게 필패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안 원장의 생각이 아직 정리되진 않았지만 그간의 행보를 정리해보면 이 같은 정치권의 도식적인 구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무소속을 유지하거나 제3당을 만들어 독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것도 같고,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아예 출마를 접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야권 지지층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물론 새누리당 정준길 전 공보위원이 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말에 안 원장 측이 발끈한 것을 보면 일단 불출마 가능성은 점점 적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탈(脫) 정치' 행보를 통한 정치행위로 지지층을 규합하는 독특한 그의 움직임을 감안한다면 현 시점에서 최종 결정을 예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약간 돌아가거나 오히려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나이도 아직 50세에 불과한 그다. 인생에 한번 승부를 걸어야 할 대선이 반드시 올 연말에만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다음을 기약하는 대선 불출마냐, 아니면 무소속 등으로의 독자 출마냐, 민주당 등 야권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한 정면 승부냐를 놓고 안 원장의 생각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 관계자가 보낸'안철수 관련 협박이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실관계가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읽고 있다. 뉴스1
"나이도 있는데 이번이든…"

안 원장이 8월31일 충남 홍성 문당 마을을 찾아 한 이야기로 한 때 정치권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가 불출마를 의미하는 듯한 발언을 한 탓이다.

안 원장은 여기서 "목표가 대통령이 아니다. 스스로 대선에 나가겠다고 했던 적은 한번도 없고 호출당한 케이스다"라면서 "아직 나이도 있으니까 이번이든 다음이든 기회가 닿을 수도 있고… 여하튼 최종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안 원장 측 유민영 대변인은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지가 중요하단 이야기"라면서 불출마 시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안 원장 입장에서 보면 급할 게 없다. 불과 50세 나이라면 5년 후나 10년 후를 얼마든지 기약할 수 있다. 어쨌든 이미 그는 유력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라 서 있다. 비단 이번 대선에 나가지 않는다고 지지도가 급락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는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낀 무당파층이나 여야간 싸움에 신물난 중도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다함께 행복한세상만들기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7일국회 정론관에서 안철수 교수 대통령후보 추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이 같은 기류가 잦아들거나 다른 인사들로 세인의 관심이 한번에 바뀔 것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다음 대선에서 혜성같이 등장할 만한 유력 주자도 아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이번 대선은 장외에서 계속 지켜본 뒤 다음 정권 내내 보다 정치적인 색채가 강하게 가미된 행보를 이어가 자신의 몸값을 올린다면 5년 후 대선에선 더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 그때까지 우리 정치가 단번에 투명하게 맑아지거나 여야간 정책 대결의 장으로 쉽게 바뀔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 원장이 활보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더욱 넓게 열려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처럼 자칫 안 원장이 대선에 안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급한 건 야권 인사들 쪽이 됐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나 손학규 후보 정도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꺾기 어려운 상황에서 믿었던 안 원장이 출마 꿈을 접게 되면 정권교체는 물 건너 갈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재야 원로인사들은 최근 안 원장의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대로 주저앉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 등 야권 인사들도 직간접적으로 안 원장을 만나 결단을 하라고 은연 중 압박을 가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안 원장에게 "계백장군을 예로 들면서 역사적 격랑과 소용돌이가 몰려오는데 내 한 몸 깔끔하게 살겠다고 발을 빼면 안 된다. 마음가짐을 비장하게 갖고 대장이 돼야 한다고 다그치듯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변의 우려가 기우에 그칠 수도 있다. 9월6일 새누리당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불출마 종용 전화에 발끈한 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가 민주주의의 도전을 운운하며 문제를 삼은 것을 보면 그렇다. 안 원장도 정 전 공보위원 발언에 상당히 화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히려 출마 선언이 더욱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주당 후보와 러닝메이트?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대선에 임할까. 야권 지지층의 바람은 당연히 범야 후보가 여당의 박근혜 후보를 보란듯이 꺾어주는 일일 거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더라도 박근혜 후보에 맞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해 대항하는 게 가장 승산이 높은 시나리오긴 하다.

그런데 안 원장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안 원장의 지지층에는 기본적으로 중도 성향의 무당파 층을 비롯해 이념적으론 진보와 보수, 지역적으로는 영남과 호남 등 다양한 계층의 유권자들이 혼재돼 있다. 충성도로 표현되는 결집력은 박 후보 지지층이나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안 원장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문재인 후보 등 야권 후보들과 함께 나설 경우 자신의 지지층 상당수가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보수성향이나 지역적으로 비호남 쪽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오히려 손잡는 게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야권 일각에서 논의되는 것이 공동정부론이다.

10년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처럼 이긴 쪽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번엔 이긴 쪽이 대통령, 진 쪽이 총리 직을 보장받는 러닝메이트 식의 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시나리오다.

가령 문재인 후보와 안 원장이 단일화에 나서 문 후보가 이기면 '문재인 대통령- 총리', 반대의 경우 ' 대통령-문재인 총리'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범야 열풍을 이끌어낸다는 복안이다. 이 경우 안 원장으로서도 지지층 일부가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그만큼의 또다른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법하다.

다만 어떤 형태로 단일화에 임하느냐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당심에서는 이기고 모발심(모바일투표 민심)에서 뒤져 문재인 후보에게 고전하는 손학규 후보의 예도 있고, 전체적인 여론조사 지지율에서는 근소한 우위를 보였지만 막상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패한 10년 전 정몽준 후보의 사례도 있다.

자칫 통째로 문 후보에게 모든 걸 넘겨주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친노세력의 폐쇄적인 단결력을 감안하면 안 원장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오고 있는 말이 안 원장의 독자 출마론이다.

안 원장은 예전에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향해 "응징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적어도 지금의 여권과 손잡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제3의 후보로 나올 경우 야권이 분열되면서 상대적으로 박근혜 후보만 좋은 일 만들어주는 것인데 설마 안 원장이 그렇게 하겠느냐는 분석을 내놓는 이도 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역대 대선을 살펴보면 이인제 후보가 여권과 보수성향의 표를 잠식한 15대 대선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제3후보는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회창 나왔어도 이명박 최다 득표

1992년 14대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가 16.3%의 득표율로 선전했지만 같은 보수 성향의 김영삼 후보가 42.0%의 득표율로 2위 김대중 후보(33.8%)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15.1%의 득표율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적을 올렸지만 같은 보수성향의 이명박 후보는 역대 최대 득표차이로 2위 정동영 후보를 눌렀다.

3자대결로 나선다 해도 유권자들은 유력 주자 2명에 대한 양자대결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즉 박근혜--문재인 등 세 후보가 경합을 벌인다 치자. 야권 지지층은 안 원장과 문 후보가 표를 나눠 가져 결국 박 후보가 여유 있게 1위에 오를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야권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이 문 후보와 안 원장을 놓고 누가 박 후보에게 더 경쟁력이 있느냐를 놓고 고민한 뒤 한 쪽에게 몰아주는 경향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다.

여론조사 지지율 조사에서 앞서 있는 안 원장 입장에서는 지지층의 이탈을 걱정해야 하는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만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히려 문 후보 측이 후보직 사퇴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최근 안 원장에 대해 "안 원장은 자신의 자아 정체성이 강하다. 재단과 연구소 등 자신의 관련 기관에 이름을 반드시 붙이는 것을 보면 그런 점을 알 수 있다"면서 야권과의 후보 단일화보다는 무소속이나 자신의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이름의 신당을 만들어 나설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선이 3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신당 창당은 무리라는 분석이 많다. 데려올 현역 의원도 마땅치 않은 데다 전직 의원들로만 갖고 당을 꾸린다는 것도 적절치 않다.

전문가들이 주시하는 부분이 이 곳이다. 야권 지지층은 어차피 전략적으로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안 원장 입장에서는 야권 연대를 통한 자신의 지지층 이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설령 박 후보에게 지더라도 자신의 무당파적 성향의 지지층은 계속 규합해 나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비정치와 탈정치로 분류되는 '제3의 길'을 걷는다는 자신의 정체성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이 같은 몇 가지 요소를 감안한다면 안 원장이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후보 연대나 단일화 없이 다자구도에서 무소속 후보로 승부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원장의 정치적 판단에 대한 최종 기착지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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