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1987년 타계하기 전 카톨릭 신부에게 인생과 성경에 대해 24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답변이 <잊혀진 질문>이란 책으로 발간됐고, 세간의 주목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성경과 함께 살아오며 그 가치를 실천해온 명순장학회 노명관 대표(장로) 에게는 책의 내용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한 답이 가톨릭적이거나 혹은 두루뭉술한 태도로 일관한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성경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노 대표는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촌음을 아끼며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 <무지개-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저자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깨달으면 이병철 회장이 제기한 많은 의문이 절로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노 대표는 명순장학회를 창설해 어려운 학생과 유학생, 새터민 등에게 도움을 주는 장학 사업을 10년째 펼치고 있다. 1년에 150명 정도가 장학금 수혜를 받는다. 노 대표를 만나 저서와 장학사업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 <무지개>는 신학자나 목회자의 현학적 구절이나 심오함은 덜하지만 순수한 종교인이 마음으로 쓴 ‘진정성’이 깊게 전해진다. 100페이지 가량의 짧은 책이지만 성경의 핵심을 전하면서 대화하듯 쉽게 풀어쓴 내용에선 인생의 경륜이 묻어난다. 우선 집필 동기가 궁금했다.
가령 이병철 회장의 첫 번째 질문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 하나?”에 대해 노 대표는 이 회장의 원래 질문이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신부가 <잊혀진 질문>에서 고통을 ‘자연발생적’이라고 답한데 대해서도 성경은 ‘타락으로 인해 생긴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며 반박한다.
<무지개>는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 중 15가지만 다루고 있다. 카톨릭에 대한 질문을 빼고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부분을 성경적으로 답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게 노명관 대표의 설명이다. 예컨대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다. 또 세상의 빛이다고 말합니다. 성도의 삶은 소금같이 말없이 녹아지는 것인데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크리스천들이 빛을 앞세우지만 먼저 소금이 녹아지면 그 다음 빛으로 드러내십니다” 하는 식이다.
노 대표는 모태신앙이자 5대째 믿음을 이어온 신앙의 명문가에서 자랐지만 정규 신학공부를 하진 않았다. 평신도로서 신학을 접했고 성경을 남들보다 많이 읽고 성경을 더 체계적이고 깊이 알고 싶어 신학을 했다.
그의 신앙적 생활과 뒤늦게 접한 신학이 엮어낸 <무지개>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메시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게 성경의 창조원리이며, 이는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것과 상통한다.
<무지개> 말미에 한국교회 현실을 일갈하는 노 신앙인의 혜안은 돋보인다.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예배당, 교회당이 성전으로 바뀌었고, 진리의 말씀이 왜곡되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성령님을 머리로 진리의 터 위에 서야 하는데 목사가 머리가 되었습니다.”
노 대표는 한국사회가 산업화 되면서 교회가 대형화되고, 세습교회가 늘어나면서 교인이 주인인데 지금은 목사가 주인이 되고 교회를 출세의 장이나 돈을 모으는 도구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노 대표는 신앙인으로서는 드물게 명순장학회라는 장학사업을 펴고 있다. 노 대표는 1999년 9월의 심장수술이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때 수술을 하면 5, 7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해서 모은 돈으로 5년 동안 개척교회 하는 목사님들을 도왔는데 4년 지났는데도 죽지 않아 좀 더 의미있게 쓰려고 장학사업을 시작했어요. “
올해로 10년 가까이 되는 명순장학회는 1년에 150명에게 1억원 가량을 지급한다. 과거 학생 위주에서 요즘은 북한을 나온 새터민과 유학생, 화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장학회 명칭 ‘명순’은 이북 출신인 노 대표가 6ㆍ25때 월남하면서 북에 두고 온 누이 동생의 이름이기도 하다. 노 대표는 통일이 되면 형제가 함께 쓰려고 통일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명순장학회 장학금 신청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노 대표는 두가지 약속을 받는다. 하나는 수혜자에게 예수님을 믿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한다. 믿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면 나중에 그에게는 그것이 유익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꼭 갚으라”고 다짐을 받는다. 되돌려 주라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삶을 살 때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라는 의미다. 장학사업은 종자돈을 불려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노 대표는 <무지개> 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성경을 스스로 깨우치고 처음으로 쓴 <물>을 비롯해 <소금>, 수필집 <빛과 어둠 사이에서도> 등 다수의 저작물을 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