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또 자살 예방의 날부터 1주일은‘자살 예방 주간’이다. 한 시민이 지난 9일 서울 한남대교에 설치된 자살예방시설인‘생명의 전화’ 앞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7년째 1위다. 1위이긴 하지만 아주 불명예스럽다. 다른 것도 아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율(표기는 명ㆍ名)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4년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에 오른 이후 7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000년에 인구 10만 명당 13.6명이던 자살률이 10년 만인 2010년 33.5명으로 크게 늘어 다른 회원국(평균 12.8명)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자살률 2위인 헝가리는 23.3명, 3위 일본은 21.2명, 미국은 12.0명, 영국은 6.7명, 독일은 10.8명, 프랑스는 16.2명, 스웨덴은 11.7명 등이고, 그리스는 2.2명으로 회원국 중 최소 1위를 차지했다.

아이러니컬하게 그리스는 유럽에서는 빈국(貧國)에 속할 뿐 아니라 최근에는 국가 부도 위기까지 맞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자살률은 가장 낮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국민 스승'으로 불렸던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는 일본이 자살률 1위였을 때 <국가의 품격(2005년 발간)>'이라는 저서를 통해 "자살률을 낮추지 않으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안용민(48)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지난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 자살자는 1만5,566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42.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자살자는 100만 명.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의 미래'라는 청소년 사망자 중 13%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자살은 사고 등 다른 원인을 제치고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다.

또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질환 실태 조사에서는 성인들도 15.6%가 평생 동안 한 차례 이상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실제로 3.2%는 자살을 시도했다.

이처럼 자살률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나 국가 차원의 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자살 예방에 연간 3,000억원을 쓰는 데 반해 한국의 1년 예산은 20억원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수년 전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액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살 예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밖에 안 됐다"라며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그저 자살률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유는 꼴찌 수준의 행복지수?

경찰청 통계에서는 ▦정신적 문제(29.5%)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 ▦인간 관계(15%) 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자살률 1위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1,292달러였던 2000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13.6명이었지만 1인당 GNI가 2만562달러인 2010년의 자살률은 되레 31.2명으로 높아졌다.

2010년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2,242시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멕시코의 자살률은 한국의 6분의 1도 안 되는 4.8명에 불과했다.

이런 통계들을 놓고 보면 자살률은 경제 수준이나 노동 강도 등과 절대적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 수준이 높고 사회 안전망이 잘 확충돼 있는 일본이 자살률 3위라는 것도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행복지수다. 경찰청이 분석한 '정신적 문제'라는 것도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관계가 깊다. 그런데 삶의 질을 나타내는 행복지수(BLIㆍ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중 32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7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이내찬 한성대 교수의 'OECD 국가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OECD 34개국의 국민 행복지수를 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4.20으로 뒤에서 세 번째였다.

1인당 GNI가 꾸준히 오르고, 올림픽에서 전세계 5위를 차지하는 등 국격(國格)은 날로 향상되는지 몰라도 이런 것들이 국민 개인의 행복지수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방증이다.

안용민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한국의 경우 최근 들어 선진국화와 동시에 기계문명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정신적 적응이나 가치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고 분석했다.

노인 자살률 전체 평균의 2.4배

청소년과 더불어 노인 자살도 매우 큰 문제다. 2010년 자살자 1만5,556명 중 28.1%(4,378명)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81.9명으로 전체 평균(33.5명)의 2.6배나 된다. 특히 80세 이상의 자살자 수는 1,119명으로 10대 청소년(353명)의 3배에 이르렀다.

이는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낮아지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모양새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 자살의 주요 원인은 ▦경제적 빈곤 ▦신체적 질병 ▦사회적 고립 등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경우 자살 성공률(31.8%)도 다른 연령층보다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음독이나 투신 등 그만큼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얘기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노인 자살자의 56%가 농약을 자살 도구로 사용한다.

노인 자살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많이 부족하다. 또 노인들은 자살을 결심하고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을 때가 많은 데다 가족들이 주위의 시선을 우려해 일반 사고사로 치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도시에 비해 농촌지역에서 노인 자살률이 높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충남의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123.2명이었지만 서울은 65.1명이었다. 불과 50~60가구가 모여 사는 충남의 한 마을에서는 2007년 일주일 사이에 무려 5명의 노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참극도 벌어졌다.

지역별 차이 최대 4배

지난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밝힌 전국 지방자체단체별 자살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광역단체의 경우 서울이 24.3명으로 가장 낮은 반면 충남이 36.9명으로 가장 높았다. 기초자치단체는 충남 계룡시가 14.5명으로 가장 낮았고, 강원 홍천군은 그 4배인 59.2명으로 불명예 1위를 기록했다.

지자체별로 자살률에 큰 차이를 보인 이유는 사회, 경제적 격차 때문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자살률이 높은 30개 시 군 구의 정신보건센터 설치 비율은 30%에 그쳤지만 자살률이 낮은 30개는 63%에 이르렀다.

정신보건센터는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 증진과 자살 예방, 자살 시도자 등의 사회 복귀를 위해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최근 증가 추세에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다.

1995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자살률이 세계 1위였던 일본은 세계 최초로 자살예방법을 제정한 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자살자의 유가족들까지도 지원하고 있다. 핀란드나 영국도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한 뒤 자살률을 낮췄다.

삶에 대한 만족도 등 사회적 박탈 정도가 자살률과 비례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회박탈지표는 가구의 소득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주거환경이 낙후될수록 높게 나타난다.

김용익 의원은 "최근 10년 가까이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자살 대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며 "자살예방법이 시행된 지 5달이 지났지만 정부는 기본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할 정도로 미온적"이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 자살률이란

율(率ㆍ비율)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숫자(명)로 표기된다. 전체 인구를 분모로 하면 숫자가 너무 작아지기 때문에 편의상 10만 명을 기준으로 통계를 잡는다. 국가 간 자살률을 비교할 때는 성, 연령 등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대체로 OECD 기준에 따라 표준인구로 환산한다.

“가족중심 사회 붕괴가 자살률 상승의 원인”
● 한국자살예방협회 안용민 사무총장

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 사회였는데 그게 와해됐다. 지지기반(가족)이 있어야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며 최근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을 가족 중심 사회의 해체에서 찾았다.

안 교수는 <주간한국>과 전화인터뷰에서 "자살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데다 연령대별로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한 뒤 "자살률은 행복지수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결국 행복하지 않다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안 교수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대책으로 국민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지원을 꼽았다. 안 교수는 "먼저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정부의 지원도 끌어낼 수 있다"면서 "오래 전부터 자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정부의 체계적, 단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최근 들어 자살률이 높아진 것과 관련해 안 교수는 자살 시도자나 자살자의 유가족에 대한 편견도 크게 경계했다. "자살자가 연간 1만5,000명이라면 자살 시도자는 그 20, 30배가 될 겁니다.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또 유가족들에 대한 편견도 버려야 하고요."

복지부는 여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1년 동안 10만8,000명 정도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다 게 안 교수의 주장이다.

안 교수는 이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는 나 혼자뿐' '자살이 더 낫다'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며 "자살은 순간적이다. 그 순간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인생이 있다. 자살 충동을 느낀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정신보건센터 등 유관단체를 찾아 상담 받아볼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브라질 언론 "한국의 자살률, '우리나라' 살인율보다 높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다른 나라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브라질의 유력 일간지인 '폴레 데 상파울로'는 지난달 30일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약 40건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고 언급하면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지난해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579명으로 2008년보다 18%가 늘었다"면서 "이는 인구 10만 명당 30명꼴로 자살했다는 것으로, 브라질의 살인 사건 사망자 수 25.2명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또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서울대 의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한국 사회에서 자살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면서 "80세 이상 고령자의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100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정신적 소외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고용 불안, 경제적 어려움 등을 한국의 높은 자살률 원인으로 꼽은 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 배우 최진실씨,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이재찬씨 등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자살이 많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