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청와대를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이 오찬을 하며 국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대선전(戰)이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 '빅3'의 대결로 압축된 가운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선 행보에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나서고, 안철수 후보가 '안풍(安風, 안철수 바람)'을 재점화하면서 견고해 보이던 '박근혜 대세론'은 자취를 감췄고, 지지율은 두 후보에 역전되거나 오차범위 안에서 경쟁하는 구도로 추락했다.

게다가 측근 인사들의 정치자금 비리와 적절치 못한 언행이 잇따라 불거지고, 야권의 공세가 강화하면서 박 후보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해 있다.

박 후보가 5ㆍ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달라진 역사 인식을 표명하고, 통합형 중앙선대위를 구성하는 등 나름 국면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대선 국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지는 미지수다.

박 후보 측이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걸림돌은 현 정권이다. 박 후보 진영에서는 박 후보의 대권 길목에서 발목을 잡거나 향후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대상은 야권이나 측근이 아닌 다른 데에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바로 청와대, 또는 이명박(MB) 대통령을 지목한다.

박 후보 측은 이 대통령과 박 후보 간에 특정 사안을 두고 '관점'의 차이가 생기면서 이 대통령 측에서 '박근혜 흔들기'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 17일, 박 후보 경선캠프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자 박 후보 측에선 "또냐? 너무 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중앙선관위가 홍 전 의원의 실명을 공개한 것이나 검찰과 조율되지 않은 과정 등이 현영희 새누리당 의원의 공천헌금 파문과 유사해 그 '저의'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즉 중앙선관위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박 후보 측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8월 현영희 의원 공천헌금 문제로 박 후보가 타격을 받았는데 홍사덕 전 의원은 그 비중 때문에 타격이 훨씬 컸다"면서 "묘하게도 박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 간에 불편한 관계가 조성된 상황에서 불거져 그쪽(청와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두고, 그것도 여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안을 중앙선관위나 검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수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청와대 개입설'에 무게를 두었다.

박 후보 측 인사들과 청와대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박 후보와 이 대통령 간에는 몇가지 사안을 두고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거취 문제가 거론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이 대통령과 박 후보간의 단독 회동에서는 이 전 의원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의 건강을 이유로 조기 (가)석방 의사를 타진하자 박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해 반대 입장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두 사람 간의 '갈등' 양상은 최근 대북정책을 놓고도 불거진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는 지난 13일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정책에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박 후보의 당시 인터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선 박 후보가 중앙의 특정 언론 및 지방 일간지와 공동 인터뷰를 한 예가 최근 몇 년간 없는 데다 당시 인터뷰는 박 후보 측의 요청에 따라 갑작스럽게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둘째, 박 후보의 인터뷰 주 내용이 대북정책에 관한 것이고 이전과는 크게 다른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종래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상호주의를 전제한 '원칙론'에서 벗어나 과감한 대북 포용정책 추진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주목되는 것 박 후보가 언론과 인터뷰를 한 시점과 내용이다. 박 후보가 인터뷰를 한 날은 13일로, 이명박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데 이어 그린란드, 노르웨이, 카자흐스탄 등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14일의 바로 전날이다.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귀국 당일, 또는 다음날 획기적인 대북정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대통령의 그러한 계획은 APEC 정상회의가 열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는 동안, 북한측과 접촉해 대북정책을 조율한 데 따른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박 후보의 13일 인터뷰와 그 내용은 이 대통령의 '북한 이벤트'를 가로막은 셈이 된다. 이와 관련, 박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박 후보는 상생의 남북교류와 실질적으로 북한을 도울 수 있는 '북한판 마셜 플랜'을 구상해 놓은 상황인데 이 대통령이 임기말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북정책을 내놓을 경우 박 후보의 새로운 대북 구상이 빛이 바래거나 집권할 경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황에 비춰보면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은 사실상 '결별'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현영희ㆍ홍사덕 건 말고도 앞으로 3건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도는데,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하면 MB 측도 심각한 국면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 일부 측근들은 이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와의 인연, MB계 인사들의 안 후보 두둔 발언 등을 근거로 MB 측에서 안 후보를 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반면 친이계(친 이명박) 인사들은 "박 후보 측이 군림하듯 대통령을 무시하고 MB계 인사들을 홀대해선 곤란하다"며 "대통령의 도움이 없으면 박 후보의 대권도 멀어질 수 있다"말한다. 정권 막바지에 이르면 어차피 신ㆍ구 세력은 대립 혹은 갈등을 겪기 마련인데,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의 경우 대선전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권력승계의 '인연'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