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9일 강원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를 찾아 금강산 등 북측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야권 지지층의 바람과 달리 대선을 완주하려는 듯한 기미가 서서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은 정치혁신위 공동 구성 및 경제민주화 2자 회동 수용을 요구하며 안 후보 측에 '함께 가자'는 러브콜을 계속 보내고 있지만 안 후보 측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키는 약속을 하는 범주의 일은 3자가 만나는 것이 정확하다"고 문 후보 제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유 대변인은 "만약 정치혁신위 공동 구성 제안이 후보 단일화의 연장선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충분히 답변했다"며 "지금은 새로운 변화와 정권교체를 위해 각자가 준비할 때"라고 말했다.

안 후보도 문 후보의 입당 요구에 대해 "진짜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잘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일축했다. 안 후보는 17일에도 "내가 정치적으로 빚진 적이 없고 따라서 명분 없는 (단일화) 타협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국민들이 다 안다"고 말했다. 지금은 민주당과 손 잡을 때가 아니란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린 민주캠프 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전 위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손용석기자
안 후보 입장에서는 정략적으로 보이는 후보 단일화 논의 보다는 서로가 각자 지지층 확보를 위해 노력하며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란 논리를 대고 있다. 그 이후 단일화 여건이 성숙되면 논의해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 안 후보 캠프를 들여다보면 큰 틀에서는 반여(反與) 정서라는 공감대가 민주당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민주당 주류 세력과 그다지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공동선대본부장인 박선숙 전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친 민주당 인사의 대표격이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이 이번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주류인 친노 세력과 단단히 틀어졌다고 한다.

또 같은 선대본부장인 김성식 전 의원은 새누리당 출신 의원이다. 거기다 그는 친노 세력과 멀어진 손학규 고문이 경기지사였을 때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경력이 있다. 이런 이유들을 감안하면 친노 세력과 함께 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 정책 분야에서 고문 역을 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4공, 5공시절을 거쳐 자민련 몫의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여권 성향이고, 실무 역을 맡은 홍종호 서울대 교수도 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한 박세직 전 의원 사위인데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과 매우 가까운 사이다. 이들도 역시 친노 세력과는 체질적으로 다른 인사들이다.

정수장학회
안 후보는 최근 대선 완주 의사를 묻는 질문에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는 말로 후보 단일화에 대한 심경의 일단을 피력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16일 "두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안 후보 조직도 만만찮아 단일화 협상에 난제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자 야권 원로인사들이 나서 후보 단일화를 역설하면서 안 후보 설득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안 후보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야권 지지층이 우려하고 있는 3자 대결 구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형국이다.

잇다른 러브콜에도 요지부동

안 후보가 3자 구도 가능성을 엿보이며 실제 대선 완주를 염두에 두고 있는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정치적 셈법이 작용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7년 13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에 이어 2,3위를 오르내리던 시점이었다.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도 충청권을 기반으로 뛰고 있었지만 양김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는 되지 못했다.

야권 지지층은 양김씨가 모두 출마하면 영ㆍ호남의 표가 갈린다고 설득전에 나섰지만 각자 대선을 완주해 결국 노 후보가 역대 대선 사상 최소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양김씨는 13대 대선의 지지층 결집을 기반으로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의석수 제2,3당의 총재가 돼 정치권을 주름잡았고 종국에는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각각 당선되면서 차례로 집권에 성공했다.

이 상황이 안 후보가 그리고 있는 시나리오의 일부분과 유사할 수 있다. 안 후보는 지난달 초 충남 홍성을 방문해 "아직 나이도 있고,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대선뿐 아니라 차기 대선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이다.

안 후보 입장에선 만일 큰 틀의 정치 변화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덥석 단일화 제안을 받았다가 자칫 '기성 정치권 인사들과 다를 바 없는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분명 그의 지지 기반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반여 성향 유권자들이 대다수지만 이중에는 여야 정당과 달리 제3의 길을 걸으며 국가적 변화와 쇄신을 이끌어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바람을 뒤로 한 채 문 후보와 손잡는다면 단일화 경쟁에서 이기기도 어려운 데다 지금껏 쌓아온 '신 정치'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물거품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대선 완주를 가정해보자. 현재의 박근혜-안철수-문재인 후보의 3자구도 시 지지율은 여론조사간 편차가 조금은 있지만 대체로 박 후보(36~38%)-안 후보(27~29%)-문 후보(25~27%)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 문 후보에 비해 안 후보가 근소한 우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야권 지지층은 안 후보에게 쏠릴 수도 있다. 특히 전략 투표에 능한 호남 민심이 막판에 안 후보에게 몰표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지금의 문 후보에 대한 우위를 끝까지 유지할 경우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야권 유일 후보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만일 3자 구도로 가서 박 후보가 승리했다고 가정해보자. 야권 단일화 실패의 한 축이란 비난을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무당파 계열의 적잖은 지지층은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대 총선에서 신당을 꾸려 바람을 일으킨 뒤 5년 후 19대 대선에 재도전한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13대 대선에서 단일화에는 실패했지만 결국은 차례로 집권한 양김씨의 전례와 유사한 방법이다. 안 후보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나 차기 대선 주자 중 유력 후보군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안 후보의 머릿속에 분명히 작지 않은 비중으로 들어있는 대선 구상 중 하나일 것이 틀림없다.

경선 패배 이후는 시계 제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응할 경우 안 후보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건 도박이 된다. 대선 완주 시에는 지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치자. 야권 후보 경선에서 질 경우에 그는 정치적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물론 문 후보에 의해 대통령-총리 분할에 따른 자리를 보장할 수는 있지만 그는 이미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한 절반의 유권자들에게 배척을 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를 따르는 캠프 인사들도 민주당 내에서 핵심 요직을 차지할 것으로 보기에도 어렵다. 친노 세력에다 기존의 민주당 비주류들이 안 원장 세력에게까지 자리를 양보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문 후보, 정확히는 친노 세력의 한 계파로 의미나 역량이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안 후보에겐 그를 응원할 현역 의원이 송호창 의원 1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이후 정몽준 의원처럼 단일화를 깬다면 그건 더욱 치명적이다. 신의를 저버린 정치인이란 낙인과 함께 정치권 퇴출 압박이 드세질 것이 틀림없다.

경선에서 이긴다 해도 본선 승리가 마냥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친 민주당 지지층의 적극적인 지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친노 세력들의 적잖은 이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자당 후보 선거처럼 지역에서 사활을 걸고 선거를 도울 가능성도 크지 않다.

단일 후보로 나섰다가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면 말 그대로 정치권의 조기 은퇴를 강요 받을 수 있다. 절호의 기회를 잡지 못한 후보에게 국민이 또다시 성원을 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씨의 경우 영남과 호남이란 변치 않는 지지기반이 있었다. 안 후보에게는 이미지로 쌓아 올린 희망적 지지층은 있지만 동지적 결사체 식의 지지층은 없다.

5년 전 대선에서 반짝 지지율을 올렸던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의원과 15년 전 대선에서 지지율 1위까지 올라갔던 이인제 통일선진당 대표와 같이 정치권 변두리로 밀려갈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정동영 민주당 고문도 지금은 과거 명성에 비해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신세다.

지지율 비슷하면 단일화 어려워

안철수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에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지지율이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교수는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민주당이란 조직이 있는 문 후보가 당을 포함해 모든 것을 내걸고 안 후보와 1대1 승부를 벌이자고 제안해야지 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자고 하는 것은 불공정 게임을 벌이자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아무 기반도 없는 안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 내부 경선을 치른다면 당연히 당원들의 지지가 많은 문 후보가 유리할 게 분명하다.

이런 이유에서 신 교수는 지지율이 지금처럼 비슷할 경우 오히려 단일화 논의가 난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관측한다. 서로가 양보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갈 수 있다는 논리다.

반대로 한쪽이 지지율이 기울면 우위에 있는 쪽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단일화 논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김종필 후보의 DJP 연합과 유사하다.

하지만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경우처럼 양측의 지지율이 큰 차이가 없어도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때는 노무현-정몽준 양측 진영에서 서로 자신이 이길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단일화 협상이 가능했다.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문 후보 입장에서 안 후보에게 패하면 민주당 내의 주도권은 상실한다. 상대적으로 친노 세력 약화도 필연적이다. 반대로 안 후보가 패하면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측근들의 이탈은 불가피하다. 이들이 단일화를 외치면서도 선뜻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논란, 20년전 초원복집 재현?


새누리 "문 후보측의 도촬 게이트" 반격
지지층 결집땐 朴 악재에서 호재 될 수도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의 언론사 지분 매각과 관련해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의 대화록 전문이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그대로 보도된 것을 두고 도청 의혹이 일고 있다.

MBC 측은 "3자가 배석자 없이 이사장실에서 대화한 것인데 웃음 소리까지 정확히 보도된 것은 분명 도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면서 관련 기사를 보도한 기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새누리당도 17일 측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과 접촉해 대책을 논의했다는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의 주장에 대해 "문재인 후보 측의 도촬(盜撮) 게이트"라면서 "이는 통신비밀보호법과 형법상 비밀침해죄에 해당해 당사자들의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간단체 불법 침입 의혹, 불법 도청 의혹, 불법 도촬 의혹은 비열한 정치이자 저질 정치의 전형이며 문 후보측이 막장 정치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의 언론사 지분 매각 추진 논란의 언론 보도가 검찰 수사를 통해 도청에 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의외로 커질 전망이다.

박근혜 후보 측을 공격하기 위해 반대 진영에서 도청이라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야권은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당시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위해 은밀히 선거 대책을 논의한 사실이 국민당 측의 도청에 의해 폭로 됐던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내용은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여당 후보를 지원하자는 모의를 한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짓고 "주거침입에 의한 불법 도청이 더 큰 문제"라며 불청 도청 문제를 적극 제기했다. 이로 인해 국민당이 여론의 역풍을 맞아 결과적으로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 도청 의혹 파문도 당시 초원 복집 사건과 결과적으로 비슷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와 주목된다.

야권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도청 의혹 파문이 반대급부로 커질 수 있어 결국 박 후보에 악재로 작용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여당 후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대선 판이 또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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