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最古)에서 최고(最高)가 됐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으니 정말 최고다. 올해 한국나이로 86세, 미수(米壽ㆍ88세)가 코앞인 사람 얘기다.

'국민 MC' 송해(宋海ㆍ85)가 지난 23일 한국광고협회 선정 2012 대한민국광고대상 최고광고모델의 영예를 안았다. 송해는 올해 'IBK 기업은행-모두의 은행 편'에 출연해 국민적 사랑을 듬뿍 받은 '비공인' 세계 최고령 MC다.

"송해의 출연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제쳐두고 IBK 기업은행만 찾았다"는 말도 과하지 않았다. 실제로 송해 출연 광고를 보고 IBK 기업은행에 맡긴 예금만도 1,200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조준희 행장이 직접 고안했다는 '기업은행은 기업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은행이고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라는 광고문구와 송해의 '믿음 이미지'가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했다는 후문이다.

이뿐 아니다. 지난 15일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송해는 은행 광고 효과 부문에서 '피겨여왕' 김연아, 톱스타 장동건 등 당대 최고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김연아의 모델료가 10억원, 장동건이 7억5,000만원이었던 반해 송해는 3억원이었다.

1960년대 발매된 송해의 노래가 실린 앨범 표지.
자고 나면 새 얼굴이 등장하는 연예계에서 송해처럼 오랫동안 활동하는 또 오랫동안 사랑받는 사람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사명감이 있으니 힘이 절로 난다"는 송해는 "국민들이 주는 에너지로 지칠 겨를이 없다"며 몸을 낮춘다.

송복희에서 송해로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실향민이다. 고향 땅 한 번 밟아 보는 게 송해의 오래된 소원이다. 송해는 언젠가 "내 마지막 소원은 고향에서 '전국노래자랑' 황해도 편'을 진행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해주예술학교 성악과를 나온 송해는 6ㆍ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1ㆍ4 후퇴 때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때 송해는 본명인 송복희(宋福熙)를 버리고 지금의 송해가 됐다. 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름을 해(海)로 바꾼 것이다.

송해는 전쟁 후 2년 뒤인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하며 연예계와 인연을 맺는다. 이때를 기준으로 하면 송해의 연예계 생활은 올해로 58년째, 3년만 더 있으면 연예인 생활 환갑을 맞는다.

패티김
악극단 시절부터 송해의 끼는 남달랐다. 송해는 명콤비였던 고(故) 박시명과 함께 동아방송 라디오 '스무고개'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송해는 1974년부터 17년 동안 KBS 라디오 교통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했다.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 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구봉서, 고 배삼룡 등과 함께 국민을 웃겼다.

희극인 1세대로 활약하던 송해가 '국민 MC'가 된 것은 1984년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맡으면서부터. 올해로 29년째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송해는 전국민의 일요일 낮을 책임진다.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외침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렵다.

송해의 영역은 방송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송해는 지난해 9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자신의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콘서트 실황을 담은 DVD 판매 수익금은 독거노인을 위해 기부했다. 사랑을 받은 만큼 되돌려주자는 게 송해의 지론이다.

올해 한국나이로 86세, 연예계 데뷔 58년 째. 송해는 정말 이름처럼 복(福)이 밝게 빛나는(熙) 사람이다. 각종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때 송해는 "시청자들의 사랑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난 5월 송해의 콘서트를 주관했던 기획사는 정식으로 영국에 있는 세계기네스협회에 '연예인 최고령 단독 콘서트'로 기네스 기록 신청을 마쳤다. 한국에도 기네스협회가 있었으나 2001년 7월 인증이 해지됐다.

김영옥
한국에서는 (77) (74) 등이 70대 중ㆍ후반임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80대는 송해가 유일하다. 또 해외에서도 80대 현역 연예인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천생 복인(福人)인 송해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피맺힌 한이 서려 있다. 20여 년 전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한남대교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꽃 같은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한남대교를 못 건너. 강북에서 집(도곡동)에 갈 때도 한남대교를 넘을 것 같으면 동호대교로 돌아가지. (아들이 사고 난)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

송해는 지금도 사고 직후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아버지, 살려줘"라는 절규를 잊지 못한다. 그게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송해가 17년이나 진행했던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교통방송을 그만뒀던 것도 먼저 떠난 아들 때문이었다.

다시 일어선 송해

이순재
지난 9월 송해는 자신의 '절반'과도 같았던 친구를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악단장을 맡았던 '땡아저씨' 김인협(71)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송해는 슬픔을 이기기 어려웠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이 자기 자신이었던 친구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송해는 "진작 요양이라도 보낼 걸 그랬다"며 애꿎은 하늘만 쳐다봤다.

고 김 단장은 지난해 6월 병원에서 폐암 선고를 받고 '전국노래자랑'에서 잠정 은퇴했다. 하지만 연말결선 등 중요한 무대에는 치료도 미룬 채 참석할 만큼 '전국노래자랑'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고 김 단장은 1984년부터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을 함께 하며 형제 이상의 친분을 쌓았다. 출연자가 난감한 요구를 하면 송해는 늘 고 김 단장의 등을 떠밀었다. 또 누군가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밀 때도 송해는 고 김 단장에게 먼저 권했다. 둘은 나이를 떠나 형제이자 친구였다.

고 김 단장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사실 송해도 몸이 좋지 않았다. 송해는 지난달 22일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불참했다. 송해는 "단순한 감기일 뿐"이라고 했지만 '건강 이상설'이 나돌았다. 남의 말 쉽게 하는 사람들은 "아유, 송해 나이가 몇이야?" "이젠 그만둘 때도 된 것 아냐?" 라고 소근거리기도 했다.

송해는 그러나 지난 22일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녹화에 참여해 건재를 과시했다. 이에 앞서 송해는 이달 초 '나팔꽃 인생 60주년 송해 빅쇼 시즌2'에 출연하는 등 다시 왕성한 활동을 재개했다.

'전국노래자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송해이지만 잠시 떠났던 적이 있었다. 송해는 1994년에 6개월 정도 방송을 그만뒀었다. 겉으로야 건강이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프로그램 진행을 놓고 연출가들과 이견이 컸기 때문이었다.

복귀한 뒤로도 송해와 연출가들의 다툼은 계속됐다. 단, 달라진 게 있다면 격한 논쟁 후 부드러운 술자리였다. "다툰 뒤에는 꼭 소주를 나눠 마시면서 화해합니다. 다 프로그램 잘되자고 한 것이니 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더더라고요."

'젊은 오빠'가 듣기 싫지 않다는 송해지만 그 흔한 휴대폰 하나 없다. 왠지 구속되는 것은 싫은 모양이다. 대신 송해는 요즘도 서울 낙원동에 있는 사무실에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사무실은 원로 영화배우, 감독, 작가, 코미디언, 가수 등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무시로 드나드는 쉼터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보다 많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촬영 전 먼저 지역에 내려간다.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눠야 더 좋은 방송이 나온다는 게 송해의 지론이다. 순댓국과 소주만 있으면 누구와도 어울리는 송해다.

'전국노래자랑'이 최장수 프로그램이 된 비결은 뭘까. 송해는 각본에 따라, MC에 의해 움직이는 기존 프로그램과 달리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출연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뒀다. 그랬더니 더 재미있는 명장면들이 많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은 장수 반열에 오르게 됐다.

3년 뒤인 2015년이면 연예계 데뷔 환갑을 맞는 송해. 우리는 언제까지 송해를 볼 수 있을까. "언제 은퇴할 거냐고? 내가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지."

● 송해는 누구

출생: 1927년 4월27일

출생지: 황해도 재령

본명: 송복희

애칭: 국민 MC, 젊은 오빠

신체조건: 162㎝ 60㎏

데뷔연도: 1955년 창공악극단

학력: 해주예술학교 성악과

주요 프로그램: 동아방송 라디오 '스무고개'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

KBS TV '전국노래자랑'

수상: 2010년 제6회 환경재단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특별상

2012년 대한민국광고대상 최고 광고 모델 선정

"한국전 휴전" 가장 먼저 알려
● 통신병 송해 육본 근무때

황해도 출신인 송해는 1951년 남한으로 내려왔다. 연평도에서 배를 타고 꼬박 사흘 걸려 부산까지 왔다.

송해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육군통신학교로 갔다. 워낙 사정이 급했던 때라 송해는 6년제 과정을 단 3개월 만에 끝내야 했다. 선임병들에게 매를 맞는 게 무서워 화장실에 숨어서 밤새도록 모스부호를 외웠다.

학교를 졸업한 송해는 육군본부에서 통신병 임무를 맡았다. 그렇게 송해의 군생활은 시작됐고, 어느 날 전군(全軍)에 전보 한 통을 날리라는 급박한 명령을 받았다.

'1953년 7월27일 밤을 기해 모든 전선에서 휴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송해는 반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 전보를 칠 때 손끝의 떨림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78세 맹활약… 74세 도 '펄펄'
● 현역 원로 연예인들

국내 연예계에는 송해(85)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원로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이들은 브라운관을 통해 안방극장에서 지금도 시청자들과 자주 만나고 있어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푸근함을 준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는 1935년생으로 한국나이 78세다. 는 요즘도 각종 드라마는 물론이고 광고모델로도 맹활약하고 있다.

각종 드라마, 사극에 이어 시트콤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던 신구(본명 신순기)는 보다 한 살 적은 1936년생이다. 신구 역시 보험사의 광고모델로 발탁되며 와 다시 한 번 '라이벌'임을 입증했다.

여자 배우 중에는 (75)이 노익장을 과시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할머니 역할로 친숙한 은 50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이자 MBC 공채 성우 출신이다.

은 1976년에 개봉한 만화영화 '로봇 태권V'의 훈이 역할과 '마징가 Z'에서 철이 역할의 성우를 맡았었다. 의 트레이드마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와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나문희는 한국나이로 72세다. 나문희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74ㆍ본명 김혜자)은 금년 초 은퇴를 선언했지만 최근 들어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MC를 맡는 등 전성기 못지않은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과 필생의 라이벌인 이미자(71)도 어느덧 고희(古稀)를 넘어섰지만 청아한 목소리만은 여전하다.

22년간 방송됐던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 아버지'와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한 최불암(본명 최영한)과 김혜자는 1940년과 1941년에 태어났다.

최불암은 안방극장과 내레이터로, 김혜자는 안방극장과 해외봉사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