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견실한 플레이 덕에 '류격수(류중일+유격수)'란 애칭을 얻었던 류중일(49) 프로야구 삼성 감독. 이미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럿 달고 다니는 류 감독이 '최초'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했다.

류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지난 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를 7-0으로 누르고 최종전적 4승2패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삼성은 지난해에도 SK를 4승1패로 꺾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1982년 창단한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2, 2005, 2006, 2011년에 이어 5번째다. 또 한국시리즈 없이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1985년을 더하면 6번째 우승이다.

류 감독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감독 데뷔 이후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쌓았다. 감독 데뷔 후 2년 연속 우승은 선동열 KIA 감독이 삼성 시절이던 2005, 2006년에 이룬 이후 류 감독이 2번째다. 두 사람은 데뷔 후 2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동반우승을 이뤘다. 하지만 삼성 선수 출신 감독 중 2년 연속 우승은 류 감독이 최초다.

작년에 류 감독은 '사자' 출신 감독으로는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그래서 류 감독이나 삼성의 감격은 더 컸다. 류 감독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청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와 올해 현장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류 감독 이전에 세 차례(2002, 2005, 2006년)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김응용 전 감독(현 한화 감독)과 선동열 전 감독은 80, 90년대 '해태왕조'의 V 9(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이끌었던 '호랑이' 출신들이다.

류 감독은 "힘든 과정 속에서도 말없이 나를 믿고 따라와준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단에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더 강한 팀을 만들어 내년에도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승진 그러나 준비된 감독

류 감독은 2010년 12월30일 '벼락같이' 감독에 임명됐다. 삼성은 전지훈련 준비에 여념이 없던 선동열 전 감독에게 해임 통보를 한 뒤 류중일 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삼성에서만 선수로 13년, 코치로 11년간 몸담았던 류 감독이기에 '언젠가는 나도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류 감독은 전임 감독들의 야구 스타일, 장단점 등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등 '훗날'을 대비하고 있었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류중일 삼성감독이 선수들의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김지곤기자
하지만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더구나 전임 선 감독의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선 감독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재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1회 등 '국보급 투수'라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평소 74, 75㎏ 나가던 류 감독의 체중은 감독에 임명된 뒤 한 달 만에 5㎏이나 줄었다. '전임 감독이 가꿔놓은 훌륭한 토양 위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컸다.

당시 류 감독은 "모든 야구선수가 다 그렇듯 나 역시 훗날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다. 또 나만의 야구도 하고 싶었다"며 "단지 그 기회가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류 감독은 이어 "전임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낸 상태에서 내가 바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솔직히 부담은 백배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이겨 나갈 것"이라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

올해까지 삼성에서만 26년째 몸담고 있는 류 감독. 그런 류 감독에게는 명장들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전수됐다. 박영길 백인천 우용득 서정환 김응용 선동열 감독 등 대한민국 야구를 주름잡았던 명장들 밑에서 류 감독은 선수와 코치 생활을 24년이나 했다.

삼성 선수들이 류중일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류 감독이 명장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행운은 삼성뿐 아니었다. 류 감독은 2006년과 2009년 야구월드컵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코치로 참가해 4강과 준우승에 일조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코치로 출전해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2006, 2009년 WBC 사령탑은 '국민 감독'인 김인식 감독이었고, 2010년 아시안게임 때는 2009년 KIA의 10번째 우승을 일궜던 '지장' 조범현 감독이었다. 특히 김 감독은 1995년과 2001년 객관적으로 열세였으나 한국시리즈 제패하며 명실상부한 명장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감독 데뷔를 앞두고 류 감독은 "당대 최고 명장들을 모셨던 게 내게는 엄청난 행운이자 재산"이라며 "그분들에게 배웠던 노하우와 경험에 내 나름대로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더해가겠다"고 다짐했다.

나가수 정신은 계속된다

올해 1월9일 경산 전용연습구장에서 열린 삼성 야구단의 시무식. 김인 야구단 사장은 전년도 우승을 이룬 선수단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나가수 정신'을 강조했다. 나가수(나는 가수다)는 MBC의 대표적인 인기프로그램으로 매회 출연자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려 재미를 더해준다.

왼쪽부터 김응용, 김인식, 김재박
김 사장은 "무명의 가수가 잘해서 스타덤에 오르기도 하고 잘 알려진 스타 가수가 탈락하는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개인적인 이름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나가수가 지난해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류 감독도 김 사장의 '나가수론'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작년에 우승했으니까 올해 더 어려운 겁니다. 다들 우리를 이기려고 할 것 아닙니까?" 류 감독은 방심과 자만을 경계했다. 류 감독은 선수들이 나태해질 만하면 "아직 우승한 게 아니다"며 수시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류 감독이 이끈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다. 역대로 봐도 한국시리즈 2연패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태가 86~89년 4년 연속 우승한 적이 있지만 그 외에는 3연패도 없다.

SK가 2007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으나 그중 우승은 3번(2007, 2008, 2010년)뿐이다. 연속 우승은 2007, 2008년에 그쳤다.

류 감독이 내년에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이룬다면 김응용 감독의 4년 연속에 이어 역대 2번째 대기록이 된다. 물론 아직은 꿈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내년에는 과거 류 감독과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당대 최고의 명장들이 모두 전장(戰場)에 등장한다.

해태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만 10회를 이룬 김응용 감독은 9년 만에 한화 사령탑으로 현장에 복귀하고, 올해 KIA로 둥지를 옮긴 선동열 감독도 명예회복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지만 류 감독이 지금처럼 겸손함과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삼성의 강세는 계속될 것 같다. 삼성은 마운드에서는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타력에서도 이승엽이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안정감과 무게를 더했다.

류 감독은 "나는 명장(名將)이라기보다는 복장(福將) 또는 운장(運將)"이라며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하늘이 내게)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려 한다면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대표를 이끌라는 뜻에서 우승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류 감독은 내년에 열리는 제3회 WBC 한국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

류중일 '장수클럽' 회원 노린다
내년 재계약 유력… 임기 중 우승땐 티켓 예약 확실시

모든 감독의 공통된 꿈, 장수.

성적에 따라 목이 왔다 갔다 하는 프로세계에서 감독들에게 '보장된' 임기란 사실상 없다. 계약서에 계약기간은 명시돼 있지만 '을'(乙)인 감독들로서는 '갑'(甲)인 구단이 "지휘봉 반납하세요"라고 하면 즉시 옷을 벗어야 한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10년 말 구단과 3년 계약을 했지만 지난 30일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계약 당시 "2년 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게 양 감독 사퇴의 직접적 이유라고 한다. 사실상 경질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김응용(71) 한화 감독, 김재박(58) 전 LG 감독, 김인식(65) 전 한화 감독은 '장수 만세'를 부를 만하다. 김응용 감독은 해태에서만 18년, 김재박 감독은 현대에서만 11년, 김인식 감독은 두산에서만 9년간이나 있었다.

1983년 호랑이군단의 제2대 사령탑에 오른 김응용 감독은 2000년까지 18년 동안 팀을 맡았고, 그 기간 중 한국시리즈에 9번 진출해서 9번 모두 우승이라는 '신화'를 썼다.

김 감독은 2001년 삼성으로 옮겨서 4년간 감독 생활을 더 한 뒤 2005년부터 6년간은 사장으로 재직했다. 2010년 말 일선에서 물러나며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던 김 감독이지만 내년 시즌에는 한화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한다.

1996년 현대 창단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은 2006년까지 11년간 팀을 이끌며 한국시리즈 4회 우승, 1회 준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김 감독의 4회 우승은 김응용 감독의 10회(1회는 삼성에서)에 이어 최다우승 2위 기록이다. 김 감독은 2007년부터 3년간은 LG 사령탑을 지냈다.

김인식 감독도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간 두산에 몸담았다. 9년 동안 김 감독은 2차례(1995,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1차례 준우승(2000년)을 선사하며 팀을 명문으로 발돋움시켰다.

김 감독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은 한화를 맡아 1차례(2006년) 준우승을 기록했다. 또 김 감독은 1990년부터 3년간은 쌍방울 창단 감독으로 활약했다.

김경문 NC 감독도 '장수클럽'의 '준회원'으로 통한다.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두산 사령탑으로 재직했고, 이 기간 팀을 3차례 준우승92005, 2007, 2008년)으로 이끌었다. 김 감독은 두산 7년에 이어 올해부터는 NC 지휘봉을 잡고 있다.

김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한을 달랬다. 올림픽에서 전승 금메달은 미국 일본 쿠바 등 세계적인 야구 강국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원이었다.

작년부터 내년까지 3년간 삼성과 계약한 류 감독도 어지간하면 최소 한 차례는 재계약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삼성이 우승을 못한다 하더라도 지난해와 올해 우승 트로피는 류 감독에게 재계약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아직은 이른 이야기지만 류 감독이 내년 이맘때 재계약을 한다면 적어도 3년은 보장받을 것 같다. 그리고 3년 임기 중 한 차례 정도 또 우승을 일군다면 류 감독에게는 두 번째 재계약이 기다릴 것이다. 그게 '장수클럽' 회원들이 걸어온 '길'이었다.

사상 두 번째로 데뷔 후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린 류 감독이 김응용 김재박 김인식 감독 등 당대 최고 명장들이 회원으로 있는 '장수클럽'에 가입이 기대되는 이유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